제안을 받으시겠습니까?
외국계 회사 15년 차 부장인 친구가 고민이 있단다. 새로운 팀이 생기는데 팀장 자리에 추천하려고 한다고, 목요일까지 답을 달라고 했단다. 회사는 다르지만 회사가 인근에 있어 종종 점심을 먹는 친한 친구라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 회사 분위기를 알고는 있었다.
회사의 규모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5년쯤 근무했으면 어느 회사에서나 팀장은 하고 있게 마련이다. 40대 초 중반 또래 남성들이면 거의 모두가 팀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만 해도 이미 입사 동기들 중 남자들은 90%가 부장 진급을 했고, 그 중 40% 이상은 팀장이나 해외 지점장을 하고 있다. 여자 동기들 중 부장이 된 경우는 IT 전공한 동기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팀장은 더더욱 없다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율이 35%를 넘는데도 그렇다.
그런데, 이것을 여성 차별이라고 말하기에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한참 일에 대한 성과를 발휘하는 시점에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라는 산을 넘게 된다. 육아 휴직으로 1년씩, 2년씩 쉬고 나오면, 또 그 공백만큼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력 관련 부서의 책임자들의 종종 어려움을 호소하는 바, 책임있는 자리나 새로운 기회가 생겼을 때 여성들 중 대다수가 육아 등 가족 돌봄의 이유로 고사한다고 한다.
다른 통계 갖다 쓸 것도 없다. 긴 회사 생활 동안 나 역시 몇 번 그랬다. 좋게 봐주셨던 팀장님이 다른 부서 가셔서 좋은 자리를 추천했을 때, 아픈 엄마와 아이들 돌봄으로 부서 옮기는 것이 두려웠다. 가장 가고 싶어했던 부서인데도 근무지가 변경되고 새로운 업무와 책임을 맡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돌봄의 일이 너무 크게 다가오니, 회사 일이라도 변화가 없었으면 했다. 그렇게 두 번 고사한 후로는 어떤 제안도 받은 적이 없다. 그 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솔직히 매우 후회한다.
친구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부분이 두려운 건지도 물어봤다. 친구는 친정엄마가 같은 집에 상주하며 아이를 봐주셔서 솔직히 아이 돌보는 데는 걱정은 없는데, 팀장이 되면 책임이 늘어나고, 출근도 매일 해야 하고 (외국계라 재택에 대한 선택이 더 넓다), 퇴근도 늦어지면 아이와 놀 시간이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솔직한 반응이었다. 누구라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현상 유지를 하고 싶으니까.
남에게 하는 충고는 객관적일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친구에게 "남자 부장이면 이런 고민 했을까?" 월급도 더 올려주고, 또 다른 도전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부디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30대도 아니고, 우리가 이런 기회를 놓치면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한 줄 더하는 셈이 된다. 우리가 하는 결정이, 혹은 포기가,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나이가, 위치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금쪽같이 여기는 딸이 보고 있으니, 딸을 생각해서라도 꼭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과거에 비해 확연히 증가했다. 우리는 곳곳에서 똑똑한 여성들을 많이 만난다. 신입사원 채용하는 부서 직원으로부터 여성들이 너무 뛰어나서 요즘은 남성들 비율 맞추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도 남성의 비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출산 육아로 인한 이탈 때문이란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조직에서는 책임의 역할을 더여성에게도 배분하고, 기회를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부디 그 기회가 왔을 때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도 연습과 경험이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