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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를 가고자 하는 이유

by 김혜신

대학 졸업 후 호주 배낭여행을 갔을 때였다. 시드니에서 서퍼스 파라다이스는 버스로 8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이다. 그곳을 가고자 한 것은 해변으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수영도 잘하지 못하던 내가 그곳에 가고자 한 것은 유명하다고 해서였다. 다행히 함께 간 이들과 즐거운 기억이 유명세와 더불어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넓고 넓은 호주 대륙에서 8시간 버스 여행은 우리나라의 서울에서 춘천정도의 이동에도 못 미치는 거리다. 하지만 그것으로 호주는 내가 가 본 여행지의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완도를 여행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라도 최 남도에 위치한 곳까지 가고자 한 것은 아마도 일상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완도의 해산물이 너무 먹고 싶거나 완도의 관광지를 몹시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조용히 그곳까지 가는 여정을 나는 즐기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해남을 거쳐 완도에 도착한 것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숙소를 정하고 식사를 하는 것이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누군가 함께 할 때 더 까다로웠다.

완도의 남파랑길을 함께 걷고 싶다는 친구가 합류해서 우리는 의견을 조율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그녀의 발랄함은 여자들의 수다로 이어지고 많이 웃게 했다. 하지만 숙소에 대한 민감도가 나보다 높은 그녀로 숙소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신지면으로 이동해서 묵게 된 펜션이 생각보다 시설이 낙후되고 사람들이 없어 마음이 심란해졌다. 문의 잠금장치도 믿을 수 없어 빗자루로 이중 문고리를 만들 생각도 했다. 에프킬러나 프라이팬을 옆에 두고 침입자에 대한 가상 방어 아이템도 생각해 두었다. 어쨌든 친구와의 이런저런 모의는 그날의 저녁수다에서 잠으로 이어져 무사히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전날의 심란함은 아침에 들려오는 파도소리로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여니 쭉 펼쳐진 바다가 우리 눈앞에 놓여 있었다. 비록 호텔식 시설은 아니지만 바로 앞에서 파도소리와 파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3월 중순의 시기는 성수기가 아니었다. 더구나 월요일이었기에 해변은 한가했다. 사람들의 발자국 주위에 새들의 작은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작고 아기자기한 조개들이 예쁘게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파란 스머프와 하얀 건물이 그리스의 산토니니를 생각나게 했다. 쭉 펼쳐진 모래사장을 거닐며 오전 시간을 보내는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으니 참 운이 좋았다. 밝은 햇빛과 조용한 파도소리는 잔잔한 바다의 모습을 순한 아이처럼 느끼게 했다. 하루를 바삐 보내고 온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아온 시간에 조용한 시간이 조금씩 나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관광지를 찾아 카메라 셔터를 찍어대지 않아도 그냥 좋았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은 무언가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을 전해준다. 나는 온전히 자연과 그것을 느끼고 싶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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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비빔밥만큼 바다의 짠내가 싱그러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완도 시내만큼 동네 구석구석의 작은 집들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다양한 해산물을 구경하는 것만큼 구수한 전라도 말씨를 듣는 것이 좋았다. 완도의 한가한 시내를 거닐면서 구경하는 것이 택시나 버스를 타며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보다 좋았다. 호주의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추억처럼 전체의 작은 일부분의 여행이지만 그냥 느끼는 여행이라 좋았다. 조용히 완도의 숨겨진 동네를 걸어보는 것과 해변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시간이 좋았다.


내가 완도를 선택한 표면적 이유는 일상에서 가장 먼 곳까지의 여정을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지나 깨달아지는 여행의 진짜 목적은 조용히 나를 정화하고 싶어서였다. 자연의 치유의 힘에 나를 맡기고 싶었던 것이었다. 20대의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먼 곳에서의 혼자 여행으로 스스로를 시험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번 완도까지의 여정은 그냥 내맡김이었다. 곳곳의 경유지로 전라도의 다양한 맛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허용한 여행이었다. 관광지나 맛집 투어가 아니라도 여유롭게 스스로의 발걸음을 따라간 여행이라 깊은 인상이 새겨져 있다. 또한 그곳의 한적함과 평화로움에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다는 기대와 용기를 안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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