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행 버스에서 내려 시간을 보니 정오였다. 작은 시외버스 터미널 안 대합실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몇십 년 전 과거로 이동한 듯한 모습이 낯설기도 해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 나주 향교부터 갈까 박물관을 갈까 하는데 현재 위치를 보니 이동 버스 시간을 알아둬야 했다. 버스 배차 시간들이 있으니 이곳을 여행하는 동안은 여유를 가지고 다녀야 할 듯싶었다. 차를 가지고 이동했다면 고민하지도 않을 일들이지만 다양한 버스 터미널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는 행운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마침 20km 정도 떨어진 나주 국립 박물관을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고 해서 급히 버스를 탔다. 광주 때처럼 처음 가는 곳이 박물관인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 도시의 얼굴인 박물관으로 향하는 내가 마치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주 하면 드넓은 평야가 떠오른다. 나주 배가 유명한 곳이기도 한 이곳에 목적지인 박물관에 다다르니 쭉 펼쳐진 평야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고급스러운 건물과 옛 정서가 가득 담긴 곳곳의 모습을 보는 것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따뜻한 햇살과 황금물결의 평야 속에 있는 박물관은 그 지역 전체와 너무 잘 어우러져 있었다.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다시 나주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나주 혁신 도시로 정한 숙소를 향하기 위해 향교는 다음날 오전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주는 여러 공공 기관들과 신도시로 구성된 혁신도시와 옛 모습이 잘 간직된 구도시로 나눠져 있다. 현재 위치한 곳에서 나주 혁신도시로 향하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 운전사님은 내 또래의 여자분이셨다. 혼자 여행 왔냐는 질문에서 나주에 대한 소개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버스 안에서 나누게 되었다. 몇 명 안 되는 한가한 버스 안에서 여행자인 나에게 나주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 버스 운전사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서울에서 살다가 몇 년 전 내려온 이곳에서 시작한 버스 운전이 자신에게는 힐링 같다고 한다. 그래서 시댁이 있는 나주에 온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했다. 사계절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하루에도 다양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 가는 그분의 하루가 그려졌다. 동내 골목도 지나가고 나주에 흐르는 잔잔한 호수와 강을 지나가기도 했다. 바오바브 나무처럼 생긴 배나무들을 보며 달리는 버스 안은 마치 관광버스와도 같았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보고 들으며 느끼는 것이 힐링하는 것 같다는 말에 동감이 되었다.
아주 편안하고 착한 사람과 같은 나주의 첫 느낌을 가지며 혁신도시에 다 달았다. 멋지게 조성된 신도시의 모습에는 넓은 호수 공원과 전망대까지 혁신적이었다. 현대화된 건물과 깨끗한 도시에서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트 골프를 치는 무리, 한가히 공원 산책을 들기는 이들, 그리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의 피크닉까지 여행객인 나도 살며시 그들의 삶에 발을 들여놓았다. 주변을 돌아보며 잠시 이곳에서 살면서 과거와 미래의 시간 여행을 하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혁신도시와 과거의 모습이 듬뿍 담긴 도시까지 모두를 누릴 수 있는 나주가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Al까지 합세한 기술이 우리의 삶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편리하게 한다. 기술력으로 새로운 창조는 엄청난 시간의 단축을 가져오고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결과물을 우리들에게 가져다준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는 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는 오감의 정서를 통해 그것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로 인한 감정과 감성이 AI는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매체로 통해 이곳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이곳을 와야지만 느낄 수 있다. 나의 마음을 촉촉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느낌이다. 새벽녘의 모습과 저녁노을이 진 모습, 새소리로 울려 퍼지는 숲길과 얼굴에 와닿는 바람, 사람들의 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 그리고 무직한 내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무게. 이곳의 한적함에 그동안 나의 바빴던 시간을 내려놓으니 여유로움이 올라온다. 과거의 생각보다 지금 당장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먹을 곳, 쉴 곳을 실시간으로 찾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내 발걸음도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