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만남의 필연
늘 변치 않는 사람이 있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묵묵히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다.
인생의 큰 이상보다는 자신이 정해 둔 울타리 안에서 희로애락을 받아들인다.
차분한 목소리와 정돈된 행동이 늘 안정적이고 믿음이 가는 이들이다.
내가 결혼하고 인사를 드린 시할머니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 전통 여인처럼 비녀를 하고 계셨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에 잔잔한 주름이 있는 얼굴이지만 정이 느껴지는 말과 모습에 반해 버렸다.
늘 쉬지 않고 움직이시는 모습과 말씀에는 자녀에 대한 보살핌과 다른 이들에 대한 헌신이 느껴졌다.
자신의 삶은 오로지 끊임없이 생산하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데에서 기쁨을 느끼시는 듯했다.
가끔 찾아뵙는 할머니댁은 따뜻한 집밥과 시골이라는 나의 마음속 정서를 충족시켜 주었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담근 김치를 보내 주시고 농사지은 고춧가루와 참기름 등을 신문지에 잘 싸서 보내주시곤 했다. 그리고 난 늘 받고만 지냈다.
할머님은 손재주도 좋으시다.
손수 만드시는 수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늘 부탁하곤 하셨다. 하루 만에 뚝딱 만드는 것뿐 아니라 바느질 솜씨도 좋아 할머니 손에는 늘 일감이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나에게도 한벌을 손수 만들어 보내셨다. 나의 친정어머니의 수의라고 미리 준비해 두셨다.
처음에는 담담했다. 친정 엄마의 당뇨가 혈관성 치매로 이어지며 엄마의 마지막을 예상하기도 했지만 직접 수의를 입는 날까지는 상상이 안되었다. 그런 엄마가 3년 전 고관절 골절에서 코로나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가 보내 주신 수의를 펼쳐 보게 되었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옷감으로 만들어진 정성스러운 수의는 멋진 한복 같았다. 그 수의를 코로나로 인해 엄마는 비닐팩 위에 걸치듯 입고 누워 계셨다. 엄마보다도 열 살은 많으신 나의 시할머니가 만드신 수의를 입고 잠자듯 누워 계셨다.
나이 드신 분의 마음은 보지 않아도 알고 계시는 것이 많은 듯하다. 할머님의 준비로 난 엄마를 예쁘게 떠나보내게 되었다.
2년 전 시할머니가 넘어져서 고관절에 금이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원을 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다시 걷게 되시지는 않으셨다. 늘 부지런하게 움직이시는 분이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생활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답답할 실까 생각이 되었지만 바쁜 나의 일상에서 감히 시골 할머니를 뵈러 갈 염두가 나지 않았다. 최근 엄마의 임종을 못 지킨 나의 아쉬움과 엄마의 그리움이 요즘 계속 올라오곤 했었다. 그래서인지할머니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떠났다. 할머니를 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훌쩍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 버스를 타고 할머니가 계신 곳을 향해 갔다.
네비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가다 보니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쌍화차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10만이 채 안 되는 정읍의 한산한 거리를 거닐며 할머니가 계신 곳을 향해 걸었다. 걸쇠가 걸린 문을 손으로 돌리니 문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할머니"라고 불러 보았다. 작은 방에 누워 계시는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셨다. 여러 번 부르니 눈을 뜬 할머니가 날 쳐다보신다.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시는 것을 보니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 저예요. 할어미 딸 며느리" 그 말에 할머니가 놀라신다. 나 또한 놀랐다. 90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깨끗한 자태와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누워만 계시는 분 같지 않으셨다. 따뜻한 방에 내복을 입고 계시는 모습이지만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결혼할 때 뵙던 모습이나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으신 모습이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속에는 늦게까지 살아서 자식에게 미안해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최근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이 돌아가셨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최연장자라고 하신다. 그 말에 오래 살아 남은이의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늘 누구에게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신 마음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분이 계신다. 동네에 사시는 여자 목사님이시다. 80대 중반의 목사님은 늘 자전거를 타시고 전도를 하신다. 시어머니가 사다 주시는 사탕을 동네 어르신들께 드리며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신다. 그 목사님은 매일 할머니를 만나러 집에 오신다. 내가 도착한 날에도 오셨다. 전에 뵌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또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아직도 늘 하루에 두 번씩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그 목사님은 우리 온 가족의 이름 모두를 아신다. 몇 십 년을 한결같이 기도하시는 그 목사님과 한결같으신 할머니는 보자마자 함박 웃음을 지으신다. 육신은 늙지만 깨끗한 영으로 하루하루를 사시는 두 분의 모습이 참 청년 같아 보였다. 엄마의 가슴처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두 분의 모습에 한기가 난 마음이 따뜻해졌다. 잠시 만나 이야기를 하지만 두 분과의 만남으로 발걸음에 힘이 찬다.
잠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살고 죽는 문제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는 날까지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은 참 축복이다. 그 삶의 끝자락까지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두 분의 모습이 집을 나선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그러다 눈에 띄는 글이 보인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할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간 그곳에 생각지도 못한
또 한 분을 뵙게 되었다.
더 사는 것이 미안한 할머니와 엄마가 그리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목사님과 함께 잠시나마 기쁜 시간을 가졌다. 서로 연결된 실처럼 한날에 만난 만남이 뜻밖이지만 그것은 필연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