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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가는 스터디 카페

내가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일상

by 김혜신

여행배낭을 가능한 가볍게 하고 싶었다.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하듯 짐의 무게도 그러고 싶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하나의 아이템은 노트북이었다. 가방에 단출한 옷가지와 더불어 챙겨 온 책과 노트북은 나의 여행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껏 걷고 보고 느낀 것을 적어보자'라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배낭 속에 소중이 노트북을 챙기게 했다.


여행 시작과 더불어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숙소를 정하는 것이 낯설었다. 외지에서 혼자 숙박을 해결한다는 것의 시작이 익숙하지 않았다. 더우기 제법 10km 이상을 걷는 하루의 일정이 저녁이 되면 노곤해지면서 여행 첫날은 아무것도 쓰지를 못했다. 식사하고 카페에 가서 글을 써 봐야지 라는 예상과는 달리 적당한 장소를 찾지도 글을 쓸 여력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째 되던 날 나주 혁신도시에서 갑자기 스터디 카페가 떠 올랐다. 조용히 글쓰기에 마땅한 카페도 없었다. 그러다 떠오른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던 스터디 카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예약한 숙소를 가기 전 가서 조용히 책도 읽고 글도 써 보고 싶었다. 현대적 신도시의 모습을 갖춘 혁신 도시에는 다양한 상가들도 많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스터디 카페를 가 보았다. 회원 등록을 하고 정한 시간만큼을 결제한 후 스터디 카페 안을 들어갔다. 내가 선택한 좌석은 창문 밖 드넓은 평야를 쭉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따뜻하고 조용한 실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밖의 풍경은 그림처럼 느껴졌다. 자연을 배경 삼아 지정된 좌석에 앉으니 제법 편해졌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공부하는 그곳의 분위기는 집중도를 높였다. 나의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인 카페 안의 자그마한 소리로 들렸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아닌 오로지 내가 창조한 세계 속으로 내가 들어가게 이곳은 하나의 플랫폼이 되었다.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 해진 다리를 쉬게 하고 배낭의 무게로 눌려진 어깨를 펼 수 있는 이곳은 옛날 여행객들이 잠시 들리는 주막과도 같았다. 그곳에서 목을 젖시던 막거리 대신에 제공된 커피를 마시고 다른 이들과 주고받는 이야기 대신 노트북의 인터넷 세상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수 백 년의 시간은 우리의 삶의 모습도 삶을 대하는 방식도 바꿔 버렸다.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것보다 SNS로 소통을 하고 함께 여행하는 것보다 다양한 편리 시설로 혼자 여행도 수월해졌다.


제법 몰두하다 보니 세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황금색의 평야가 일몰로 물들더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여행에 대해 나의 마음을 적어보고 여행 계획도 해 보며 보낸 시간이 이제는 숙소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살짝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니 얼굴에 부닥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해야 한다는 것을 하고 숙소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을 떠난 여행지에 스터디 카페를 가는 신선한 경험이 즐거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선택한 여행지에서 해 보는 경험은 여러 명이 있을 때보다 혼자일 때가 더 편하다. 그래서 혼자 여행에 더 맘이 가는 것 같다.


여행의 목적은 일상에서의 벗어남이다. 일상 속의 불순물이 더 이상 여과되지 못할 때 떠나고 싶다. 일상의 규칙은 나에게 단련된 힘과 숙련함을 가져다준다. 그것을 느낄 때 행복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그 조화가 깨지고 피곤도가 누적이 되면 일상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이다.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설레게 해야 할 시기이다. 그런데 새로운 경험에 나의 일상의 한 부분을 더하니 특별해진다. 여행지에서는 늘 새로운 음식과 장소를 방문하는 것 외에도 일상의 한 부분을 더하는 것이 나에게 또 다른 기쁨을 허락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상의 글쓰기 시간을 나주와 해남에서는 스터디 카페에서 보냈다. 그 조용한 나만의 시간이 여행의 한 부분인 것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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