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나의 특기는 참기다.
좋은 말로 다시 표현하면 인내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뻥 터지는 스타일이다.
그 고집 있고 우둔함이 때론 나의 강점이 되기도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자주 숨구멍을 터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삶의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더 먼저 하려는 나를 위해 배려하려고 한다. '괜찮아요'라는 말 대신 '괜찮지 않아요'라는 표현을 하려고 한다. 말로는 좋다고 하지만 정말로 좋지 않다. '싫어'라는 말이 너무 강하다면'No, thanks'라는 말로 대체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함에도 한계가 왔는지 마음보다 몸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팍팍한 삶의 긴장이 끊어질 듯 팽창하다가 드디어 끊어질 것 같았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는 계속하지 못하겠다고. 그런 나의 몸에게 미안했다. 너무 혹사한 나 자신의 가혹함에 고생하는 나의 몸의 외침을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겠다.
모든 일로부터 STOP이라는 푯말을 들었다. 한동안 계속된 무리한 일정과 피곤은 나에게 일상 밖으로 나오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한편 그냥 이대로 주저앉고 싶다는 내 안의 속삭임이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 나는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침대와 소파를 오가며 누워있을지, 집 밖을 나가 자연을 만나는 나만의 여행을 시작할지를 말이다.
이렇게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할 때가 있다. 머릿속 상상에 마음이 부풀어 올라온다. 그러다 그 상상이 현실의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될 때 두려움이 올라온다. 정말 해도 될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다시 자신을 현실을 피해 상상 속에 가둔다. 이것이 반복이 된다면 삶은 이중적이 된다. 잦은 짜증이 난다. 상대에 대한 짜증은 사실 자신에 대한 짜증이다. 무덤덤해진다.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다. 원하는 것이 아닌 손에 있는 행복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물론 현재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너무 현명하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과거와 미래에만 머무른다면 어리석다. 그럼에도 현재의 나의 방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면 스타트 버튼을 눌러야 되지 않을까 또는 다시 리셋을 눌러도 되지 않을까
명확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이 더 와닿는다.
'내가 지금 훌쩍 떠나보지 않는다면'이라는 질문에 내 안의 슬픔이 느껴졌다.
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맞는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 떠난다는 두려움은 내려놓고 그냥 나서보자고 마음먹었다.
'떠나길 잘했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럴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일상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