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집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배수의 진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죽으란 법은 없다고 할까요?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내심 생각했던 그 순간 결과를 받아 들었습니다. 어학시험 합격. 그리고 이제 진짜 저의 유학생활이 시작됩니다.
앞서 어학수업을 들으면서 진짜 유학생활 중에 있어서 두 번 정도 공황장애가 이건가 생각할 만큼 정신적 압박이 심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끝이 났습니다. 진짜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그 결과를 확인한 그 순간, 그 장소, 그 분위기 모두를 말이죠.
당시에 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꾸준히 기회가 되는대로 어학시험을 치러 다녔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죠. DSH 시험의 경우 자주 있다고 해봐야 분기에 한 번, 혹은 반년에 한 번씩 시험이 대학에서 치러지기에 자리를 받는 것 자체도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어학공부를 했던 도르트문트라는 도시도 TU Dortmund. 도르트문트 공대가 위치하고 있었고 해당 대학에서 DSH 시험이 치러졌는데요, DSH 시험 자리를 받는 조건에 도르트문트에 위치한 어학원에서 준비반 수업을 마무리한 경우에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지만, 도르트문트에 위치한 어학원만도 한두 개가 아니기에 자리를 받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준비반을 이미 마쳤지만 해당 대학에서 시험 응시를 못한 경우도 있었고, 저뿐만이 아니라 같은 어학원에서 공부한 많은 친구들에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도르트문트를 제외하고 다른 대학에도 시험 접수를 많이 했습니다. 대학마다 DSH 시험 응시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도르트문트처럼 해당 지역의 어학원을 수료하지 않은 경우에도 시험 응시를 할 수 있는 대학도 있었죠. 그리고 이후에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석사 수학을 했던 Leibniz Uni Hannover의 경우에는 vorläufige Zulassung (조건부 입학증명서)를 받은 경우에 DSH 시험에 응시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조건부 입학증명서는 다른 조건의 서류들은 다 충족하여 해당 대학에서 수학을 할 수 있는 증명이 다 되어 있고, 어학 시험만이 남아있는 경우 등에 받을 수 있습니다. 저도 이와 같은 경우여서 조건부 입학증명서를 받았고, 이 조건으로 해당 대학에서 DHS 시험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대학마다 문법에 출제가 되는 문항이나 자주 다뤄지는 지문의 테마 등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은 어렵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그렇게 독일어에 자신이 없었던 저의 핑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심 이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학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반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어학원이 위치했던 도르트문트 대학교에서 DSH 시험을 치르고, Leibniz Uni에서도 시험 자리를 받았습니다. 시기상으로 Leibniz Uni의 시험이 앞서 있었고 TU Dortmund에서의 시험이 시기상 조금 뒤였습니다. 그래서 Leibniz Uni에서 시험을 치르고, TU Dortmund에서 시험을 치른 후였습니다. 앞서 시험의 종류에서 이야기를 한 것처럼 DSH의 경우에는 읽기, 듣기, 쓰기, 문법이 합쳐진 시험의 유형이 하나가 있고, 별도로 말하기 시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분야에서 모두 DSH 2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야 최종적으로 DSH 2라는 어학증명을 받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먼저 치렀던 하노버의 Leibniz Uni에서 DSH 1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석사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증명서는 DSH 2입니다. 그렇기에 사실 해당 대학에서 말하기 시험을 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말하기 부분에서 DSH 2를 받는다고 해도 최종 증명서에는 DSH 1가 찍히기 때문이죠. 하지만 TU Dortmund에서 시험을 치르고 어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Leibniz Uni에서 말하기 시험을 치르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미 어학 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찾아봤는데, 일부 시험에서는 담당관이 시험자의 말하기 점수가 너무 좋다고 판단한 경우가 있었고, 그 사람의 재량으로 쓰기 부분의 점수를 새롭게 채점을 하여 통과를 하기도 하는 등 케바케 (Case by Case)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기대를 포함하여, 안되더라도 그래도 말하기 시험을 그동안 많이 치러보지 않았으니 경험 삼아 가보자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지난번 시험에서는 아침 9시에 시험이 시작이었고 총 3개 파트의 시험을 모두 치르는 데에 4시간 이상 걸리기에 아침에 출발하는 시간과 컨디션 조절 등을 고려하여 1박 2일의 일정으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오후에 시험이 있었고, 말하기 시험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기에 당일치기로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3시간가량 기차로 이동하여 하노버에 도착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말하기 시험을 보았죠. 혹시라도 DSH 2 성적을 받고, 말하기에서 감독관이 나를 좋게 봐서 다시 한번 앞선 시험지를 봐주기도 기대를 했지만 현실은 여지없이 DSH 1였습니다. 다시 말해 경험치만 쌓였을 뿐,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었죠. 슬프고 아쉬운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기에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는 아쉬움과 미련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기차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 점심을 먹으러 하노버 시내에 있는 맥도널드로 향했습니다. 위치도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정확한 주소는 모르지만 지금도 찾아가라면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그렇게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 일이 일어납니다. 주문한 햄버거 세트가 나왔고 몇 입을 채 먹기도 전에 이메일이 도착을 했습니다. TU Dortmund에서의 DSH 시험 결과가 나왔으니 확인하라는 것이었죠. 고민을 하였습니다. 지금 확인을 할 것이냐 아니면 햄버거를 다 먹고 확인을 할 것이냐. 사실 자신이 100%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떨렸죠. 자신감이 조금 더 있었던 와이프가 먼저 확인을 하였고 높은 점수로 DSH 2에 합격!!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저도 확인을 하였고, 꿈에도 그리던 DSH 2 성적을 받아 들었습니다!! 와이프와 점수차이는 크게 났지만 결과론적으로 둘 다 성공적으로 DSH 2를 획득한 것이죠. 진짜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요? 이럴 때는 저의 보잘것없는 표현력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아 들고 벅찬 마음을 진정시키고 남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는데, 아까 먹었던 한입보다 열 배는 더 맛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이제 나 대학원생이 되는구나!! 아직 갈길은 멀었지만 유의미한 첫 번째 이정표를 찍었구나!! 장하다 곽은덕 인마!!
그리고 그 감흥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남들은 어학시험 합격하면 3개월에서 반년정도 휴식기를 가지며 여행도 하고 각종 경험을 한다고 하지만 저는 좀 달랐습니다. 그럴 여유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시험 결과를 받고 학기 시작까지 겨우 2주가 남았기 때문이었죠. 그럼 2주라도 쉬었겠다고 생각하셨나요? 혹시 그 질문을 하신다면 답은 „아니요 “입니다.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집“입니다!!!!
앞서도 언급을 한 것처럼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원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세입자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세입자를 선택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보러 가는 약속도 일대일 약속은 잘 없고 대부분 다대일 약속이 대부분입니다. 다수의 세입자 후보를 함께 불러서 집 소개를 하고, 그중에서 세입자로 들어올 의향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집주인이 선택하는 것이죠.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독일에서 집 구하는 것, 예상외로 진짜 너무 어렵다는 것. 혹시 독일로 나오려는 계획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꼭 잊지 마세요.
이 집을 구하기에 2주는 길지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거주하고 있던 겔젠키르헨에서 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 또는 주변 도시들)까지는 기차로 3시간가량이 걸리기에 확실하지도 않은 집을 보러 기차를 타고 왕복을 하러 다니기에는 금액도 금액이고 시간도 너무나 맞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부부의 계획은 이러했습니다. 개강 일주일 전,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가는 날부터 일주일간 가능한 많은 집과 예약을 잡자. 그리고 그 기간 동안은 하노버에 있는 한인민박에서 머물기였습니다. 다행히도 한인 민박에서 저렴한 가격에 머물 수 있게 되었고, 겔젠키르헨의 집에서도 미리 이야기를 해서인지 쉽게 퀸디궁을 해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퀸디궁을 2달 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 기간 동안의 집세를 내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집주인아주머니는 미리 상황을 전해 들었던 만큼 흔쾌히 바로 퀸디궁에 서명을 해주었습니다. 무려 추가금액 없이 말이죠. 혹자들은 독일에 머물면서 집주인과의 관계에서 너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저희는 진짜 그런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자,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저는 Leibniz Uni Hannover에서, 와이프는 TU Braunschweig에서 입학허가를 받았고 이제 수학을 하게 되기에 해당 두 도시, 하노버와 브라운슈바이크를 포함해서 기차연결라인을 고려해서 그 중간 도시인 힐데스하임까지 3개 도시를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략 10개 정도의 약속을 잡을 수 있었고, 하루에 2~3개씩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틀차에 너무나도 천운으로 힐데스하임에 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중앙역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초역세권이었기에 수업을 들으러 각자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하는 길이 짧다는 장점이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죠.
그렇게 집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노버 한인민박에 두었던 짐들을 힐데스하임의 새 집으로 이틀에 걸쳐서 옮기고, 필요한 생필품과 가구들을 구입하며, 저의, 그리고 저희 부부의 독일라이프 STEP.2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물론 STEP.2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뒤에 그 화려한 어려움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새 가구를 채워 넣고, 새 동네를 산책하면서 기대는 한껏 부풀어있었습니다. 독일에 나온 지 1년 6개월. 직장인에서 어학원생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대학생으로, 정확히는 대학원생으로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합니다. 어느새 만으로 30이 채 되지 않았던 저의 나이는 만으로도 31살이 되었습니다. 30대에 대학원이라. 늦지는 않았지만 빠르지도 않은 나이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주저하고 포기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그리고 심적인 이유로 말이죠. 여느 책을 보면 정년 퇴임을 한 나이에 어학연수를 다니기도 하고, 다시금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들만큼 저는 늦은 시간도 아니었고,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늦은 늦깎이 고학생일 뿐입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물론 30이 넘어서 유학을 나와서 어학공부를 하고 대학원에 들어가는 저를 보면서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 공부 다 하고 언제 직장을 잡아서 언제 돈 모으고 하냐는 현실적인 이유로 말이죠. 하지만 그 질문을 위의 분들에게 한다면 어떨까요? 정년 퇴임 후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어학연수를 떠나는 그분들께 말이죠. 아마도 틀림없이 „젊을 때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살아.“ 라고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분들께 저는, 30이 넘은 저는 아직도 젊은이이니까요. 그렇기에 젊은이인 저는 여전히 앞을 보며 묵묵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달리지는 못하지만,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지만, 한 발 한 발 긴 호흡으로 앞으로 천천히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잃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떤가요? 여전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나요? 그 방향은 옳은 방향인가요? 혹시라도 큰 결정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나요? 그 결정. 당연히 신중해야 합니다. 인생이 걸린 질문이고 결정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순간이라고.
그러니
Keep Going!! 닥치고 킵고잉!! 앞으로 앞으로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