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하는 이들은 사실 알지 못한다

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아직 그 길을 가보지 않은 이들이 말한다.

by 꽉형 헤어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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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의 후유증은 꽤나 컸습니다. "척"으로 이어지던 악순환은 결국 시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독일은 케바케(Case by Case)의 나라라고 합니다. 같은 조건의 일이라도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인데,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학시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시험을 준비한 대학은 TU Dortmund에서 주관하는 DSH였고, 해당 학교에서는 동일한 지역에 위치한 어학원에서 DSH 시험 준비반 이수증이 있어야 등록이 가능했습니다. 이수증을 받기 위한 요건은 꽤나 까다로웠습니다. 수업 중간중간과 마지막까지 총 6번의 모의 DSH 시험을 치르고, 그중 3번 이상 합격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어학원 내 레벨 테스트처럼, 담당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점수를 올려줄 수 없는 시험이었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맞고 틀리다만 결정되니까요. 그래서 점수는 그대로 나왔고, 변명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제 실력은 사실 높지 않았고, 어학원에서 레벨 테스트에 통과했다고 너무 안심했던 과거의 저를 탓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수업마다 6번의 모의 어학시험을 치렀고, 단 한 번도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해당 수업을 3번이나 들은 끝에야 이수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결국 대학 입학을 위한 어학시험 합격이 아니라, 어학원 코스를 이수한 결과에 불과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12번의 시험 중 10번은 낙방한 셈입니다. 실력 부족과 기대했던 만큼 쉽게 오르지 않는 점수는 저를 점점 괴롭게 만들었고, 이때부터 저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독일에 나온 지 1년이 넘었고,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제자리걸음, 때로는 퇴보하는 느낌을 받게 하는 독일어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는 타인과의 비교도 한몫을 했습니다. 비록 어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반년 만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저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수증을 받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점점 회의감이 커졌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쌓여만 갔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계속 버텨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한국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나온 선택들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고, 그동안 보낸 시간들이 너무 아까운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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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때 깨달은 것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선택을 해서 잃은 것만 생각하고, 선택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 것까지 모두 잃은 것처럼 느낍니다. 저는 그때 그런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 독일행은 무모했다기보다 도전이었습니다. 그 도전은 확실히 힘들었고, 많은 불안과 고통을 동반했지만,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고민은 이제 지나갔고, 지금은 다행히 잘 풀렸지만, 당시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 조금 더 흔들리고, 투정 부렸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때는, 조금 더 쉬어가도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방향만 잃지 않으면, 그 과정에서 잠시 멈춰서 하늘을 한번 바라봐도 괜찮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길이 비록 돌아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길도 옳은 길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보지도 않고, 그 길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길이 잘못된 길일까요? 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이, 그 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때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 길을 끝까지 가보고 나서야 진정한 답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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