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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Apr 20. 2024

팔레스타인 영토 변천사 (8) 십자군과 오스만 제국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지 700여 년 지날 즈음 로마 교황의 권위는 중세 유럽의 세속 군주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주님이 원하신다(Deus vult)’는 교황의 호소가 세상에 퍼지자 성지 탈환의 기치 아래 수만 명의 십자군이 결성된다. 유럽 각지에서 육로와 수로를 통해 비잔티움(또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집결한 이들 원정대는 길고 험난한 여정 끝에 1099년 여름 드디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 신앙과 탐욕과 광기에 절어 있던 십자군은 잔인하고 무참했다.  


450년 넘게 이슬람이 지배해 왔지만 유대인도 공존했던 도시 예루살렘은 무슬림과 유대인들의 시체와 핏물이 산과 바다를 이뤘고 그 위에는 새로운 기독교 왕국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90년 세월이 지나자 상황은 다시 360도 뒤바뀐다. 이슬람 영웅 살라딘이 활약하며 십자군을 몰아내고 다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 살라딘과 예루살렘 


‘성을 넘겨주겠소?’ 

‘조건을 말하시오.’ 

‘깨끗이 비워주면 당신네 기독교인 모두는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십자군은 입성 때 이슬람을 학살했소.’ 

‘나는 살라딘이오. 그들과 다르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 대작 ‘킹덤 오브 헤븐’의 끝 장면이다. 중세 십자군이 1187년 하틴 전투에서 대패한 뒤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 군주 살라딘에게 넘기는 현장을 담았다. 


그 옛날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유대교 성전을 지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숨지고 묻히며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된 곳, 그리고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 하여 이슬람 성지가 됐던 성도(聖都) 예루살렘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보여지듯 십자군을 앞세운 기독교인들에게 탈환됐다가 90년 만에 다시 이슬람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영화 엔딩에선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가 3차 십자군을 이끌고 성지로 떠나는 모습을 잠깐 보여주지만, 이후 역사에서 보듯 그는 예루살렘에 끝내 입성하지 못한다. 워낙 용맹하여 사자심왕(The Lion heart)이란 별명까지 붙었음에도 살라딘과의 싸움에서 압도는 했으되 궁극적 승리는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후에도 십자군 원정은 대여섯 차례 더 진행되었지만 기독교 세력의 성지 재탈환은 모두 무위(無爲)로 끝났고, 이후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선 기독교 국가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각지의 유대인들이 모여들어 1948년 신생 이스라엘을 건국함으로써 오래전 역사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천년 전의 팔레스타인 땅은 이슬람과 기독교 간 종교전쟁의 장이었으나, 오늘날엔 무슬림과 유대인 간 생존을 건 영토 싸움의 장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 맘루크 왕조의 지배


7세기 초 예언자 무함마드가 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창시한 이슬람은 이후 중동 전체와 북아프리카를 망라하는 거대 제국을 형성한 뒤 차츰 분열 과정을 거치며 여러 지역 왕조로 쪼개진다. 그중에서 살라딘이 창건한 아이유브 왕조는 이슬람 핵심 수니파 세력으로서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시리아와 이집트 일대를 지배하게 되었다. 3차 십자군이 돌아간 후 병약했던 살라딘도 편안히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반세기 후인 1250년에는 ‘노예’를 일컫는 ‘맘루크(mamluk)’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기존 아이유브 왕조를 종식시키고 신생 맘루크 왕조를 창건하기에 이른다.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일대의 주인 역시 새로운 지배자로 바뀌고, 이런 체제는 맘루크 왕조가 거대 오스만 제국에 멸망할 때까지 250년간 유지된다. 맘루크 치하에서도 유대인들은 심한 차별은 받았지만 소수 민족으로서 공존하며 나름의 기본적인 신앙생활은 영위할 수 있었다.


▲ 오스만 제국의 흥망성쇠


이슬람 제국은 장구한 존속 기간과 광대한 지배 영역면에서 고대 로마제국에 필적한다. 7세기 초 아랍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건한 이래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패망 때까지 무려 1,300년간을 존속했다. 이 중 후반 600년이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에 해당한다. 튀르키예 제국(Turkish Empire) 혹은 오스만 튀르키예로 불리기도 한다. 


현 튀르키예 지역인 아나톨리아 반도 서북부의 군소 부족장이던 오스만 1세가 1299년에 조그만 왕국을 건국한 이래 그 후손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발칸반도를 점령하고, 이어서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수도로 삼고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하면서 거대 제국으로 변신했다. 1516년에는 이집트 일대를 기반으로 하는, 같은 수니파 이슬람 계열의 맘루크 왕조까지 정복함으로써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주인 역시 기존 맘루크 왕조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바뀐다.


오늘날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둘러싸는 4km 성벽은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슐레이만 대제가 건축한 것으로 5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슐레이만 대제는 특히 3대 종교 공통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슬람 성지 쪽으로 더 강화하는 데 노력하여, 성전산 내 이슬람 바위사원을 리모델링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7세기 초반에 기독교도와 유대인을 몰아낸 이슬람 무슬림들은 20세기 초까지 거의 전 기간(십자군 점령기 제외)을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주인으로서 대를 이어가며 터 잡고 살아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뭔가 조짐이 불길하긴 했지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점점 몰려오는 건 초기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⑨편에 계속


오스만 제국에 의한 1453년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스탄불 Askeri Museum)

19세기말 쇠퇴기의 오스만 제국이 사자인 영국과 곰인 러시아에게 먹잇감으로 전락한 모습 풍자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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