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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성공

투자자가 보는 글

by 가리느까

비가 오면 두려워집니다.


기온이 내려가 잠시 시원한 여름 한때를 보낼 수도 있지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기습적인 담배 냄새로 잠을 설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베란다도 아니고 작은 창문이 하늘과 직접 맞닿은, 엄마와 막내 아이가 있는 큰방에서 잠자는 무려 중2 딸내미의 방인데 말입니다.


불과 이삼일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 한 바가지 물을 부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비만 오면 우울해집니다.


아파트 창문으로 담배를 피우는 '그놈'도 우울해서 그랬겠죠.


해마다 여름이 가까워지면••• , 그래요. 처음에는 창틀에 팔을 걸친 채 대놓고 피우더니 그다음부터 한 모금 피우고 미꾸라지처럼 빠지는 게릴라전을 펼치는가 싶다가 급기야는 비 올 때만 노려서 피우더군요.


그때마다 고함 치거나, 비 맞고 경비실을 찾아가거나, 물총을 쏘거나, 엘리베이터에 호소문을 걸거나, 직접 만든 호소문을 창문 밖으로 내려 걸거나, 기타 등등 '그놈'에게 경고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건만 매사가 허사였습니다.


설핏 잠들었는데 매캐한 공기에 잠이 깰 때의 그 기분이란.


어느 날 웬일인지 그가 하루를 건너 뛰는 은혜를 베푸신 다음 날, 출근길에 막내 아이 배웅에서 돌아오던 길에 마주쳤다가 방금 헤어진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왜?"


"꿀물! 아래층 이사 가나 봐."


"뭐, 진짜? 층수 확인했어?"


"진짜라니까."


아아•••,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요.


지성이면 감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도 아닌 것 같고, 기적?

뭐가 됐든 아무튼 기분이 날아갈듯 좋았습니다.


딸내미가 "아빠가 민원 넣어서 이사 간 거 아냐?"라는데 에이, 설마요.


아파트 관리실에 '신고'는 몇 번 했지만 한 번도 찾아가거나 고함칠 때 욕설은 하지 않았습니다(애들이 들으니까, 112에 물어 보니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하니까).


부디 '그놈' 분이 단독주택 가셔서 비가 오든 말든 마음대로 담배를 맛있게 피우며 남은 인생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연초 냄새가 독하던데 이왕이면 담배도 양담배를 많이 피우셨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 이래 봬도 알트리아(MO) 주주거든요.


사람들이 말보로나 필립모리스를 피울 때마다 저의 주머니는 나날이 부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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