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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도농부 Oct 09. 2022

계약서 제2항: 2018년 빈티지 양조 작업

 8월 20일, 3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다시 새벽 버스를 타고 라베고스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와이너리는 고요했다. 세조니에들의 계약 만료와 나와 제레미의 휴가가 시작되고서도 정규직들은 1주일 더 근무했기에 첫 1주 동안은 나와 제레미, 그리고 새로 온 와인 양조 기간직 파니라는 친구까지 세 명이 근무했다. 파니는 22살 나이에 키는 아주 작고 금발 머리에 항상 머리를 질끈 묶고 안경을 쓰고 다녔다. 다른 와이너리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포도밭과 양조장에서의 경험이 있어 합류하자마자 능숙하게 일을 해냈다. 영어는 울렁증이 있는지 나와 제레미가 영어로 대화하면 프랑스어로 대화하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휴가를 다녀오면 바로 양조장으로 일하러 가게 될 것이라는 파비앙의 말은 또다시 달라져 있었다. 잠깐동안 포도밭 업무를 하고 있으면 곧 양조장 업무를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동안 양조장 갈 날만을 기다려왔던 터라 그 일이 좌절되었을 때 분노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제레미가 팀장이 되고 파니와 나는 포도밭으로 향했다. 고요한 포도밭에서 하게 될 업무는 휴가 가기 전 한창 했던 에끌레르시사주[1] 작업이었다. 그 작업 하나만 한 것은 아니고 여태껏 해오던 작업을 복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3주간의 휴식기간이 충분했었던지, 그동안 또 몸이 단련되었던지, 무슨 이유에서든 다시 허리를 굽히며 일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속도가 느리기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세조니에가 아닌, 몇 달간 함께 일할 기간직들끼리 함께 있으니 조금 더 여유로웠다. 점심시간은 아직 8월인 관계로 여전히 포도밭에서 30분 만에 짧게 먹어야 했다. 이런 여유로움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는데 3일 차 되던 날, 가장 늦게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산드린이 가장 먼저 복귀했다. 산드린은 어려운 존재였다. 말투도 툭툭 내뱉어 기분 상하는 이들이 많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고 짚어냈다. 모두에게 공정하지만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이 산드린을 불편해했고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기도 했다. 딸을 키워서 그런지 20살 언저리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좋아하고 실수에 대해서도 허허 웃으며 넘어갔지만 조금 더 나이가 있었던 마리옹에게도 심한 질책을 했었고 무슨 이유에선지 남자들을 특히 싫어했고 나도 당연히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수요일에 돌아오자마자 산드린의 세상이 시작되었지만, 세조니에들이 없으니 예민한 것이 줄어든 것인지, 아니면 3주간의 휴가를 아주 잘 보내고 왔던 것인지 예전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태도에 한층 일하기가 수월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땐 이미 베레종[2]이 끝난 시기라 그린 하베스트[3]라고 부를 순 없었지만 어쨌든 양분을 집중할 수 있게 불필요한 포도를 계속 제거하는 작업을 했고 첫 주가 끝나는 금요일에는 그렇게 제거하는 포도를 테이스팅하고 싶다고 했더니 산드린이 흔쾌히 가져가라며 지퍼백 봉투까지 구해줬다. 그날 작업을 했던 포도밭이었던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2개 품종을 실하게 잘 익은 포도를 따서 집까지 무사히 가져왔다. 아직 수확시기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나게 달진 않았다. 보르도에서 가장 유명한 2가지 포도 맛이 다르다는 것을 포도를 직접 수확해 느껴볼 수 있어 신기했다. 다음날 엘리네에 훠궈 파티가 열려서 함께 나눌 겸 그대로 농장 산지 직송 포도 품종 비교 테이스팅을 했다. 이번 주에 모인 이유는 미국에 있던 황웨이의 남자친구가 잠시 프랑스에 온 김에 다 같이 훠궈 파티를 하는 자리였다. 인원이 꽤 되기도 했고, 푸짐하게 차려 먹는 걸 좋아하는 중국인들이라 테이블 위에는 어마어마한 재료들이 쌓여있었다. 고기 완자부터 양배추, 두부, 불린 표고버섯, 불린 연근, 불린 목이버섯, 게살, 새우 완자, 각종 버섯, 건두부, 유부 튀김, 숙주, 고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나 싫어하는 오이가 테이블이 터져나가도록 쌓여있었다. 엘리는 훠궈 맛은 재료의 신선도로 좌우된다며 멀리까지 가서 구해온 질 좋은 재료들이라며 생색을 냈다. 방에 들어왔을 때 지난번에는 못 보던 룸메이트가 생겼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털을 가진 모모라는 이름의 성묘 한 마리가 모인 이들 다리 사이를 지나가며 냄새를 묻혔고 이런 모습에 모두의 이쁨을 받고 있었다. 품종은 따로 없는 고양이었지만 그동안 귀염받고 살아왔는지 애교가 엄청 많은 개냥이였다. 모신 지 며칠 되지 않은 집사 엘리도 그렇고 가장 가까이 지내는 조니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놀아주다가 고쎄 샴페인[4]을 따르며 파티를 시작했다. 와인은 또 엄청나게 꺼내놨는데 내추럴 오렌지 와인[5]과 화이트 와인부터 그레잔 샤르도네, 샤또 브라운, 샤또 캡 생 조르주, 그리고선 달콤한 쏘떼른느 와인인 카름므 드 리유섹, 샤또 리유섹, 샤또 꾸떼, 샤또 시갈라 라보[6]까지 10병의 와인이 올려져 있었다. 매콤한 훠궈는 엘리 말대로 재료가 좋아서인지 맛있었고 친구들과 나누는 와인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뜬금없이 달콤함의 대명사인 쏘떼른느[7] 와인이 그것도 네 병씩이나 있었는데 네고시앙[8]에서 일하는 황웨이가 판매가 부진한 이 달달이 와인들을 어떻게 하면 팔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마셔봐야겠다고 전부 사 온 것이라고 했다. 꼬냑처럼 슈웹스도 타보고 더 강한 술과 칵테일도 만들어봤지만 딱히 손이 가진 않았다. 섞어 먹기보다 그냥 마시는 게 가장 좋았지만 한 잔만 마셔도 다음 잔에 손이 가지 않는 이 달콤한 와인을 어떻게 마시게 할 것인가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다. 이내 고민은 접고 먹고 떠들기 바빴는데 얼마 전 휴가 때도 봤지만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즐거웠고 어째서인지 낮부터 시작했던 자리는 밤 11시가 되어 다들 만취 상태가 되서야 끝났다.




 월요일이 밝았고 디디에, 아메드, 플로랑스, 노에미, 프레데릭까지 휴가를 떠났던 정규직들이 모두 돌아왔다. 제레미와 파니는 디디에, 프레데릭과 한 팀이 되어 다녔고 나는 아메드와 산드린, 플로랑스, 노에미와 한 팀이 되었다. 수확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포도밭에서 나무 분류작업이 시작되었다.


"자 다들 모여봐. 오늘부터는 이 빨간색 케이블 타이로 나무를 구분하고 다닐 거야. 여기는 까베르네 소비뇽 밭인데 메를로나 까베르네 프랑, 아니면 백포도가 심겨있으면 그 나무에 표시해주면 돼."

"대장! 다른 품종은 뭘로 알 수 있어?"

"잎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어. 메를로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모양을 가졌고 까베르네 소비뇽은 삐쭉거려. 그리고 까베르네 프랑은 잎 사이에 이런 동그란 구멍이 생겨. 알겠지?"

"아니 모르겠는데."

"우선은 시작하고 의심되는 나무가 있으면 나와 산드린에게 물어봐. 혹시나 지나쳐도 나와 산드린이 말해줄 테니까 우선 시작하자."

"아메드 저 질문 있어요."

"다니엘, 얘기해봐."

"왜 다른 품종이 있는거에요?"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묘목 업자가 처음 우리에게 까베르네 소비뇽 묘목이라고 보내준 것에 잘못 섞여서 들어온 게 아닐까? 저렇게 자라는 백포도도 그렇고."


 까베르네 소비뇽 밭에 자라는 메를로나 까베르네 프랑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온통 적색 갑옷을 입은 포도밭에 샛노랗게 화려한 옷을 입은 백포도라니, 신기하기도, 내가 글로 보던 와이너리의 설명보다 허술한 것들이 많구나 생각하며 어이없기도 했다. 흘르바주 처럼 걸어 다니며 하는 작업이라 힘들진 않았지만, 잎의 모양만으로 품종을 구분한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 조금 전 설명하며 보여준 까베르네 소비뇽 잎은 뾰족한 느낌이었는데 어떤 나무는 부드러운 테두리를 가진 잎이 나기도 했고 한 줄기에서도 잎의 모양이 다르기도 했다. 눈치껏 분류를 하고 있으면 뒤따라오는 산드린이 놓쳤다며 다시 와서 메고 가라고 말해줬다. 다른 팀원들도 구분을 잘하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였다.


"대장! 이거 메를로야 까베르네야 뭐야?"

"그거 까베르네야"

"대장! 이거 뭐야?"

"그것도 까베르네야"

"대장! 이거는?"

"그건 메를로야."

"이제부턴 아니야."

"응? 무슨 소리야?"

"얘는 까베를로[9]야."


 플로랑스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아메드와 이런 대화가 한창일 때 저 멀리서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파비앙이 내렸다.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더니 내게 와 오늘 끝나고 10분 정도 사무실에 들를 수 있는지 물었다. 끝나고 가겠노라 답을 하고 분류작업을 계속했다.


 9월이 되고선 모든 게 다 정상 시간으로 돌아왔다. 점심시간도 예전처럼 식당에서 1시간을 사용해 여유롭게 먹을 수 있었고 4시에 퇴근하여 4시 20분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보통은 차고에 까미용을 타고 가 퇴근했지만, 오늘은 라베고스 사무실에 내려다 주었다. 파비앙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버스 시간은 괜찮냐고 묻더니 앉으라고 권했다. 내 앞에는 이번 달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내 고용 상태는 CDD[10]라고 부르는 기간직이었다. 고용 형태가 독특하여 매달 이렇게 계약서를 썼고 매달 서명했던 계약서에는 그달에 해야 할 업무에 대해 적혀있었다. 5월에는 데두블라주와 에빰프라주[11]가, 6월에는 흘르바주[12]가, 7월에는 에끌레르시사주가 적혀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곧 양조하게끔 해주겠다는 말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파비앙이 운을 뗐다. 그동안 했던 포도밭 업무는 이제 거의 끝났고 앞으로는 12월까지 양조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 9월 동안은 포도밭에서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양조 준비를 하게 될 것이라며 아직까지 샤또 라베고스에서인지, 샤또 마르키 달렘에서 와인을 만들지 결정되진 않았지만, 곧 알려주겠다고 했다. 믿기지 않는 기쁜 소식에 계약서를 다시 살펴봤다.


"제2항 - 계약의 목적

본 계약은 다음의 이유로 체결한다: 양조장 준비, 수확물 입고, 그리고 2018년 빈티지 양조 작업"


 4개월 동안 했던 매일 5시간의 출퇴근, 허벅지와 허리 근육 통증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때려치울까 고민했던 그 시간을 모두 보상받았다. 솔직히 육체노동 업무보다도 출퇴근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10분에 한 대씩 있는 교통수단으로 5시간을 다녔으면 모를까 하나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최악의 시나리오로 와이너리에서 보르도로 돌아가는 5시 막차를 놓치면 묵을 곳도 없이 길거리에서 자야 했었다. 매일 신경을 곤두세운 채 출퇴근을 하는 게 큰 스트레스였기에 다니는 중간에도 진지하게 그만둘까 생각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 면접을 볼 때는 양조만 고집하면 채용이 안 될까봐 포도밭만 시켜줘도 열심히 하겠다고 했었다. 막상 업무를 하다 보니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었고 양조를 하게 되는 이 순간 하나만을 바라보고 이 악물고 버텼다. 한국에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며 막연하게 기대만 했었던, 양조 업무를 정말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서류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길에 몇 번씩이고 다시 읽어봤다. 당장의 업무에는 변화가 없어 에끌레르시사주 작업과 포도나무 분류 작업을 계속했고 가끔씩 다른 와이너리의 포도밭에 FD[13] 검사라는 것을 나가게 되었다. FD라는 질병에 걸린 포도나무를 찾으면 신고하게끔 되어 있었다. 포도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질병으로 감염된 포도나무가 3개 이상이 발견될 경우 해당 구획의 모든 포도나무를 뽑아내야 했다.


 그렇게 1주일을 더 포도밭에서 보내고 월요일이 밝았을 때 평소처럼 포도밭으로 나가지 않고 양조장으로 향했다. 샤또 라베고스에는 2개의 양조장이 있었다. 하나는 샤또 건물 바로 옆에 있는 공간으로 처음 와이너리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었던 오래된 양조 공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매일 출근하던 차고 옆에 있는 공간으로 나중에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디디에와 파니, 내가 한 팀이 되어 샤또 옆에 있는 공간으로 가게 되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샤또 라베고스에서도 좀 더 낮은 등급의 세컨드와 써드 와인을 만드는 공간이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와인을 만드는 것이 어딘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양조장 문을 열었다. 당분간 우리 팀이 할 일은 양조장이 수확한 포도를 받아 양조를 시작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마치는 것이었다. 우리의 몸에 들어가는 와인이 닿는 모든 곳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양조장 창고에 처박아 놨던 모든 기구를 가지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왔다. 거대한 수조, 포도 껍질을 거를 수 있는 거름망, 양조통 뚜껑에 꽂는 정체불명의 원통, 과학 실험실에 있을 것 같은 실린더, 플라스틱으로 된 양동이, 펌프 기계에 연결하는 모든 관, 수세미 등을 전부 가져와 수조에 이산화황을 희석한 물에 담가 세척했다. 그리곤 카쉐[14]라고 불리는 노란색의 고압 세척기를 가져와선 콘크리트 양조통의 외벽을 닦아 댔다.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은 양조통 내부였다. 몇 개 없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는 이산화황을 희석한 액체를 뿌려주고 물을 뿌려주는 것으로 세척을 끝냈지만, 콘크리트는 조금 더 주의 깊은 청소가 필요했다. 특히 탄닌이 많은 레드 와인을 만들어왔고 콘크리트 내부에 에폭시 코팅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타르가 붙어있었다. 장화와 상·하의로 구분된 우의를 입고 1만 리터 이상의 무식하게 큰 콘크리트 통 안으로 들어가 카쉐로 1차 내벽 세척을 하고 이산화황 희석액을 열심히 뿌려준 뒤 카쉐로 2차 청소를 해주는데 타르가 모두 다 떨어질 때까지 나오지도 못한 채 박혀있어야 했다. 경험이 없던 내게 청소를 맡긴 사이, 디디에와 파니는 양조 용품 세척을 하더니 밖으로 나가 포도 선별대를 설치했다. 선별대도 1년에 딱 한 시즌만 사용하다 보니 사용하기 전 여러 차례 세척을 해줘야 했다. 아직 본격적인 양조가 시작되지 않았기에 양조장에도 커피 휴식 시간이 있었다. 잠깐씩 바깥으로 나가보면 프랑스도 가을이라고 쨍하게 맑은 날이 이어졌고 서늘해진 바람이 불며 몸을 식혀주었다.


 어느 정도 세척이 끝나갈 때쯤 디디에와 파니는 다른 업무를 시작했다. 포도 성숙도 분석이라는 작업이었다. 그날 정해진 구획으로 나가 구획을 돌아다니며 포도알을 랜덤하게 따 오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구획 전체에 포도나무가 수백 그루가 넘게 있다보니 지나가며 랜덤으로 포도송이에서 위에서 한 알, 아래에서 한 알을 따서 한 봉투를 채울, 대략 400알 정도만 따는 방식으로 여러 구획을 돌아다니곤 양조장으로 온다. 가져온 포도는 양조장에 마련된 실험실에서 분석했다. 따온 포도를 거름망에 넣어 손으로 즙을 낸 뒤 전체 무게, 당 밀도, 잠재 알코올, 산도 등을 분석한다. 거름망으로 추출한 포도즙을 실린더에 넣고 당 밀도를 측정하는 기구를 넣어 온도계 같이 생긴 유리로 생긴 도구에는 촘촘하게 숫자가 그려져 있는데 포도즙 높이의 숫자를 읽어 당 밀도를 파악한다. 그리고 작은 잔에 옮겨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섞어가며 산도를 측정한다. 용액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며 액체를 섞는데 포도즙의 색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순간의 용액 주입기 숫자가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선 알코올 분석기에 액체를 떨어뜨려 잠재 알코올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며칠 내내 여러 구획들을 돌아가며 하게 되는데 이는 최적의 수확 날짜를 잡기 위함이었다.


"포도는 햇빛을 받으며 당을 축적해가고 산도와는 반비례 관계를 갖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산도는 떨어지게 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도와 산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매일 모니터링해서 아, 이때쯤 수확하면 당도가 충분하구나, 우리가 원하는 알코올을 달성하면서도 좋은 산도를 지녀 와인에 신선함을 줄 수 있겠구나 라는 판단할 수 있는거지.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


 옆에서 궁금해서 기웃거리는 내게 디디에가 어떻게 분석을 하는지 하나하나 가르쳐주며 이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었다. 실험실 같은 곳에서 이런 분석을 하고 있으니 무언가 정말 흥미로운 일을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거의 퇴근 시간이 다가왔을 때 디디에는 갑자기 한쪽에 있는 와인잔을 꺼내더니 조금 전까지 분석하고 남은 까베르네 프랑 즙을 따라주더니 테이스팅해보라고 권했다. 아직 수확시기가 되지 않은 포도즙이었지만 내게는 충분히 달았고 산도가 높게 느껴졌다.


 그 뒤에도 며칠간 포도 성숙도 분석 작업은 계속해서 이뤄졌고 나는 오랜만에 보는 인턴, 막심과 함께 양조통 준비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작업인데 콘크리트 탱크에서 발효할 때 나무의 풍미를 부여하기 위해 오크 나무판을 탱크 안에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거대한 오크 발효조는 워낙 오래 사용하다 보니 오크의 풍미를 부여해주는 효과가 다소 부족해 이렇게 외부 열을 차단한 채 나무판으로 오크 풍미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준비가 다 되었을 때, 9월 19일 목요일에 첫 수확이 시작되었다.


 처음 수확이 시작되고 양조통에 포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는 온통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깨끗이 세척해둔 관을 통해 수천 리터의 포도가 콸콸 쏟아지고 머스트와의 균형을 위해 거름망을 통해 일부 껍질을 제거해주는 작업을 해준다. 그리곤 바로 포도가 발효를 시작할 수 있게 효모가 필요했다. 많은 보르도 와이너리가 그렇듯 라베고스 또한 상업 효모를 사용했늗네 가루를 바로 부어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온도의 물에 먼저 효모를 풀어 활성화한 뒤 위층으로 올라가 포도즙에 섞어주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탱크 하나가 와인이 만들어질 준비가 끝이 난 것이었다. 탱크에서 750mL 정도만 즙을 빼내어 외부 기관에 분석을 의뢰하기 위해 375mL 병 2개에 나눠 담는데 라벨에는 '알코올, 당도, 총산도, pH, 말산, 포도즙 내 질소'를 분석해달라고 체크해놓았다. 가장 가까운 분석 기관은 뽀이약 마을에 있었다. 정신없는 수확과 양조는 이어졌고 버스로 통근하던 나는 1시간 연장 근무를 하고서도 아직 끝나지 않는 작업을 뒤로하고 막차를 타고 와이너리를 빠져나왔다.


[1] 에끌레르시사주(Éclaircissage): 적포도가 아직 청색을 띠고 있을 때 양분 낭비를 막기 위해 불필요한 포도를 제거해주는 작업.

[2] 베레종(Véraison): 적포도가 백포도와 마찬가지로 껍질 색이 초록색이다가 적색으로 바뀌는 과정을 의미한다.

[3] 그린 하베스트(green harvest): 프랑스어로는 방당주 엉 베르트(vendange en verte) 혹은 에끌레르시사주라고 부르는 작업으로 포도가 아직 초록색일 때 불필요한 포도를 제거해주는 작업이다.

[4] 고쎄 샴페인(Champagne Gosset Grande Réserve Brut)

[5] 오렌지 와인: 화이트 와인 중 일부 와인들을 레드 와인 만들듯이 껍질 침용을 할 경우 오렌지색으로 만들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6] 그레잔 샤르도네(Grézan Chardonnay), 샤또 브라운(Château Brown), 샤또 캡 생 조르주(Château Cap St George), 카름므 드 리유섹(Carmes de Rieussec), 샤또 리유섹(Château Rieussec), 샤또 꾸떼(Château Coutet), 샤또 시갈라 라보(Château Sigalas Rabaud) 모두 와인 이름

[7] 쏘떼른느(Sauternes): 보르도 남부 그라브 지역에 있는 아펠라씨옹으로 아주 달콤한 명주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8] 네고시앙(Négocinat): 와인 중개상으로 대부분의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쎄는 중개상을 통해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9] 까베를로: 까베르네와 메를로를 합성해 까베를로라고 하는 말장난.

[10] CDD(Contrat à durée déterminée): 계약직

[11] 데두블라주(dédoublage)와 에빰프라주(épamprage): 데두블라주는 중복으로 자라는 순을 제거해주는 작업으로 5월 초, 에빰프라주는 나무에 자라는 모든 싹을 제거하는 5월 중순에 하는 작업이다.

[12] 흘르바주(relevage): ‘다시 올리다’라는 뜻을 가진 작업으로 포도나무 가지가 똑바로 자라게 해준다.

[13] FD(Flavescence Dorée): 직역하면 누르스름하고 금빛이 나는이라는 뜻으로 포도나무가 비정상적으로 누런색을 띠는 질병이다.

[14] 카쉐(KARCHER): 독일 청소기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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