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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도농부 Oct 06. 2022

5일만에 마고 그랑 크뤼 투어 완주하기 1부

705번 버스타고 발품 팔아가며 다닌 와이너리 투어

 두 달 넘게 일했지만, 수중에 남는 돈이 거의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수준의 생활을 하는 내게 라베고스에서는 처음 구두로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3주간 무급 휴가를 다녀오라고 통보했다. 당장에 돈이 나올 구석이 없어 이대로 3주를 버틴다면 집에 박혀 삼시세끼 바게트와 파스타 아니면 라면만 먹어야 했고 그마저도 휴가가 끝나고 복귀했을 때 다음 월급 때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돈을 꾸었다. 마고에 있는 모든 와이너리에 대한 책을 쓰면 출판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걸 팔아 조금이라도 빨리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을 품고 마고 지역에 있는 그랑 크뤼 클라쎄 와이너리들에 방문 요청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마르키 달렘의 휴가가 다른 와이너리의 웰컴팀보단 빨랐고 덕분에 휴가 첫 주 동안 대부분의 와이너리 방문을 잡을 수 있었다.


[7월 30일 화요일]

샤또 말레스코 쌩-택쥐페리(3등급)

샤또 마고(1등급)

[8월 1일 수요일]

샤또 프리우레-리쉰(4등급)

샤또 보이드 깡뜨냑(3등급)

샤또 푸제(5등급)

샤또 디쌍(3등급)

샤또 데스미라이(3등급)

[8월 2일 목요일]

샤또 라스꽁브(2등급)

샤또 뒤포르-비방(2등급)

샤또 페리에르(3등급)

[8월 3일 금요일]

샤또 시랑

샤또 도작(5등급)

샤또 지스꾸르(3등급)

샤또 뒤 떼르뜨르(5등급)

[8월 7일 화요일]

샤또 마르키 드 테름므(4등급)

샤또 브란 깡뜨냑(2등급)

샤또 깡뜨냑 브라운(3등급)


 다행히 많은 와이너리에서 방문 허락을 해주었고 2개 와이너리를 제외하고선 마고 그랑 크뤼 클라쎄 와이너리는 전부 방문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하루하루의 일정은 휴가 전과 다를 바는 없었다. 보통 이르면 열 시에 첫 방문이 시작되는데 차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타던 705번을 타고 가는 것이다 보니 시간표를 지켜야 했다. 게다가 방학 스케줄로 변경이 되어 첫차인 6시 20분을 타지 않으면 첫 방문 약속 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원래 스케줄인 네시 반에 일어나 마고 마을로 향했다. 많은 짐 없이 매일 먹던 샌드위치와 콜라가 담긴 보냉백만 달랑 들고 버스에 올랐다. 첫날인 7월 30일에는 샤또 말레스코 쌩-택쥐페리[1]가 첫 약속이었는데 오전 11:30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마고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녔다. 마르키 달렘 바로 앞에 있는 시청 건물도 기웃거리고 라베고스 가는 길에 있는 마고 마을 특산 초콜릿을 판다는 마드모아젤 드 마고[2]도 가봤다. 와인 샵이 오픈할 시간이 되어서는 이 작은 마을에 왜 두 개나 있는지 모를 와인 샵[3]에 들러 와인 구경을 하다가 마르키 달렘에 가서 그동안 못 찍었던 사진을 열심히 찍고서야 약속 장소로 향했다. 길만 건너면 있는 말레스코 쌩-택쥐페리는 작은 와이너리였고 다른 직원들 모두가 휴가를 간 탓에 건물에는 인기척도 없이 오너인 장-뤽 쥐제르[4]가 직접 맞아주었다. 그는 간단히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는 급한 일정이 생겨서 30분 정도 테이스팅만 할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찬밥 신세로 대우하는 것 같아 조금 실망했지만 미안해서 그런지 와인은 원하는 빈티지를 말해주면 다 따주겠다고 하는 말에 적당히 올드 빈티지와 새로운 빈티지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세컨드 와인인 르 담 드 말레스코[5]는 2009년 빈티지를 가져오고 그랑 방인 샤또 말레스코 쌩-택쥐페리는 2009년과 2011년, 2014년까지 가져와 그 자리에서 펑펑 따주었다. 세컨드 와인은 그레이트 빈티지 덕인지 흠잡을 곳 없이 좋았고 그랑 방은 의외로 서늘한 빈티지였던 2011년이 가장 좋았다. 테이스팅하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장-뤽은 어떤 빈티지가 가장 좋냐고 물어봤고 내가 2011년이라고 말하자 옅은 미소를 띠며 자신도 지금 마신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2011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아쉽지만 짧은 약속 시간은 끝났고 초조해하는 주인장 아저씨를 위해 일찍 자리를 떴다.


 근처에 지난번에 작업하던 마르키 달렘의 포도밭이 있고 그곳에 큰 나무가 있던 것이 기억나 그곳에 가 싸 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약속은 2시에 1등급 와이너리인 샤또 마고[6]였다. 이 투어를 기획하며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가장 중요한 와이너리였다. 이곳 하나만으로도 이번 투어가 의미를 가질 정도로 내게는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메독[7]의 중요한 와인 생산 마을이 4곳이 있는데 그중 뽀이약[8]이라는 마을에만 1등급 와이너리가 3개가 있고 나머지 2곳에는 없으며 마고 마을에 단 한 개가 있는 것이 바로 샤또 마고였다. 그리고 마을 이름을 와이너리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보르도 유일 와이너리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관심이 많던 곳이었기에 물 떠 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메일을 보냈고 다행히 7월 30일 하루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다른 약속을 조정하고 이곳에 오기로 했었다. 마리라고 소개한 담당자는 홍보팀 소속으로 기자들 방문만 전속으로 한다며 약간은 귀찮은 말투로 나를 맞았다. 마을 내 최고라고 불리는 와이너리답게 시설 투자는 최고였다. 다른 와이너리에서는 구획 별 양조[9]를 한다고는 하지만 발효조 사이즈가 일관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가진 포도밭의 최대 수확량에 정확하게 맞춰서 발효조를 주문 제작하여 구획 별로 완전하게 구분하여 양조하고 있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그런 곳이었지만 그들 나름대로 또 어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전체 건축물 자체가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있기 때문에 와인의 품질을 위해 건물의 구조를 바꾸거나 할 일이 있더라도 서류 처리 느리기로 유명한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2~3년이 넘어서야 처리가 될 때도 있다고 한다. 포도밭과 양조시설을 돌아다니며 와이너리 역사와 포도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선 마지막 테이스팅을 하기 위해 시음 공간으로 이동했다. 시음장에는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고 위로 길쭉한 조명 하나가 유유히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가 불을 켜자 통창 유리 너머로 샤또 마고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올드 빈티지 병들이 끝을 모르고 건물 2층 높이로 적치되어있었고 그 끝자락에는 샤또 마고의 상징적인 샤또 건물이 빛으로 새겨져 있었다. 테이스팅 룸 하나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 마리는 세컨드 와인인 파비용 후즈 뒤 샤또 마고[10] 2009년과 샤또 마고 2004년 빈티지를 가져왔다. 화이트 와인은 없냐는 말에 생산량이 아주 적어 시음에서 제외되었다고 했다. 조금 전에도 세컨드 와인 2009년 빈티지를 마셨지만 파비용 후즈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집중도와 파워가 달랐다. 여느 집의 그랑 방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품질이었다. 다음으로 두근거림과 함께 샤또 마고 2004년이 담긴 와인잔을 잡고 코에 가져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다. 기대가 실제 품질보다 훨씬 못했나 보다. 잔을 코에 가져다 대는 순간 만면에 큰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스월링하지도 않았는데 붉은 꽃이 만발한 밭 한가운데 누워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에 취해 있는 느낌이었다. 폭발적으로 나는 꽃과 과일 향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여태껏, 그리고 앞으로 방문할 여러 마고 와이너리와 비교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다른 와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이 샤또 마고만 동떨어진 세상에 있었다. 마고 와인이라는 카테고리라기보단 샤또 마고라는 장르였다. 약간은 거만한 자세로 일관하던 마리의 태도에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와인잔에 코를 한 번 빠뜨리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져버렸다.




 둘째 날은 가장 바쁜 날이었다. 평소 내리던 것보다 두 정거장 전인 깡뜨냑 마을에 내려 오전 약속 장소인 프리우레-리쉰[11]으로 향했다. 독특한 곳이었는데 마고 와이너리 중 가장 큰 규모의 기념품 가게를 보유한 곳이었고 기념품을 파는 이 원형 건물의 옥상에는 오너의 헬리콥터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정원을 따라 걷다 보니 건물 한쪽 벽에 잔뜩 쇠판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오너 가문이 대대로 오븐에 달려있거나 벽난로에 붙어있던 쇠판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종류도 다양해 성직자, 어느 가문의 문장, 나무 아래에서 밀회하는 남녀, 한쪽에는 하프를 쥐고 반대쪽 손으로는 활을 쥐고 있는 어느 신, 근육질의 남자 둘이 한 손에는 포도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와인 잔을 쥐고 대치하고 있는 모습 등이 새겨진 판들이었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리셉션 건물로 돌아와 연결된 발효 공간으로 데려가자 2013년에 도입했다는, 얼마 전에 키르완에서 봤던 볼링핀 모양의 콘크리트 탱크가 쭉 늘어서 있었고 과거에 사용하던 사각의 콘크리트 탱크도 그대로 있었다. 숙성 공간은 다른 곳보다는 덜 흥미로웠다. 양조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선 테이스팅하기 위해 조금 전 담당자를 만났던 기념품 파는 곳으로 나왔는데 길쭉한 테이블에 와인이 올려져 있었다. 화이트 와인인 르 블랑 뒤 샤또 프리우레-리쉰[12] 2016부터 오-메독[13] 아펠라씨옹[14]으로 등급을 낮춘 써드 와인, 르 클로쉐르 뒤 프리우레[15] 2015, 마고 아펠라씨옹인 세컨드 와인, 꽁피덩스 드 프리우레-리쉰[16] 2012, 2014, 2015 빈티지가, 마지막으로 그랑 방인 샤또 프리우레 리쉰 2014와 2015 빈티지까지 총 7가지 와인을 꺼내 놓았다. 이번 투어 중 가장 다양한 종류와 빈티지의 테이스팅을 한 와이너리였다. 


 와이너리를 나와 종종걸음으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한참 답장이 없다가 투어 바로 직전에 연락이 와 예약을 잡은 곳이었다. 다행히 깡뜨냑 마을 와이너리를 돌아다닐 때로 예약이 잡혀 점심을 거르면 잠시 방문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프리우레-리쉰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샤또로 보이는 건물이 아닌 맞은편에 낮은 1층짜리 건물이 있었고 건물 벽에 '샤또 보이드-깡뜨냑'[17]과 '샤또 푸제'[18]가 적혀있었다. 사진을 찍고 서성이다 보니 오너인 루씨앙 귀유메[19] 씨가 직접 맞아주었다. 다소 후줄근한 셔츠 차림으로 수줍어하며 와이너리 소개를 해주었다. 두 개의 그랑 크뤼 와이너리를 동시에 소유하고 있었는데 4등급인 푸제를 1906년에 먼저 인수했고 26년 뒤인 1932년에 3등급인 보이드-깡뜨냑까지 인수한 것이다. 두 와이너리 모두 작은 규모로 유기농 방식으로 우직하게 농사꾼처럼 와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국 내 인지도도 낮았고 나조차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작은 양조장과 숙성고를 보여주고선 실험실 같은 곳으로 내 팔을 붙잡고 데려가더니 순서 없이 세워져 있는 와인들을 하나씩 보더니 한 잔씩 주기 시작했다. 별다른 생색도 내지 않고 '아, 이거' 같은 짧은 말만 내뱉으며 준 와인은 라벨도 전혀 없는 누드 병이었다. 어떤 와인이냐고 물었더니 코르크를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샤또 보이드-깡뜨냑 1970'이라고 쓰여있었다. 숙성에서 오는 가죽과 간장 풍미가 꽤나 진하게 올라온다고 생각했더니 50여 년 전의 빈티지였다. 내가 기자였기에 잘해주는 것일까?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엄청난 빈티지를 따주었다. 충분히 감상할 시간도 없이 바로 2017 빈티지를 따라주었고 뒤이어 푸제 2014, 2015, 2016년 빈티지까지 차례로 따라주었다. 다른 와인들과는 다르게 두 와인 모두 라벨에 샤또 건물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게 독특한데 푸제는 병 모양도 일반 보르도 와인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고 라벨에는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데 닭과 사자와 하트가 있다. 이 문장을 만들어준 공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만약 이 감미로운 와인을 마신다면 당신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사랑에 힘을 더해 줄 것이고, 당신의 말은 수탉의 울음처럼 맑을 것이고, 사자와 같이 겁이 없고 용맹해질 것이다."


 쑥스러워 말이 별로 없던 루씨앙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하고선 뒤돌아 다음 장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샤또 디쌍[20]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생겼다. 이쌍[21]은 마을을 기준으로 반대편에 있어 30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20분 정도를 걷자 입구가 나왔는데 돌로 만들어진 아치형 문에 17세기에 지어진 문화유산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문을 지나고도 10분 이상은 더 걸어야 본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 성은 작은 물길로 둘러싸여 있어 성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특이하게도 작게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담당자를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성의 정원 쪽으로 향했다. 분명 내가 오던 방향과 반대편의 뒤뜰 같은 곳으로 왔는데 이곳이 건물의 정면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마을과 반대편으로 지롱드강이 흐르고 당시에는 물길이 샤또 앞까지 지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을 오크 배럴 채로 배애 손쉽게 실어 강까지 가져가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쌍의 항구'라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건물에 대한 역사를 설명해주던 담당자는 손가락으로 나무 문 위쪽으로 석판에 쓰여진 글씨를 가리켰고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라틴어로 쓰여있었기에 모른다고 답하니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조제프[22]가 샤또 디쌍 1899 빈티지를 마시고 와이너리에 하사한 모토 '왕의 만찬, 그리고 신의 재단에 올릴 와인'이라는 말이라고, 라벨에도 쓰여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쌍 와인은 꽤나 유명한 터라 라벨을 볼 기회가 자주 있었고 몇 번 마시기도 했지만 그런 글귀가 있다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양조장과 숙성고를 지나 테이스팅 룸에서 보여준 와인 라벨에서 아까 문에서 봤던 그 글귀가 쓰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와인은 그랑 방인 샤또 디쌍과 세컨드 와인인 블라종 디쌍[23] 2가지 모두 2014 빈티지를 테이스팅했다. 와이너리 투어 중에는 처음으로 코라뱅[24]으로 테이스팅을 경험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쌍의 원래 스타일인지 신선한 과일 풍미가 그전에 마셨던 기억보다 더 짙게 드리우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일정을 위해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샤또 데스미라이[25]로 이동했다. 리셉션 건물에 들어가 기다리니 오너인 드니 뤼르통[26] 씨가 직접 나와 맞아주었고 가벼운 인사만을 나눈 뒤 바로 양조장으로 이동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데스미라이 와이너리의 이미지는 라벨에서 보이는 모던함이었지만 양조장으로 가자 아주 작은 목조 건물에 빼곡하게 들어찬 양조통들로 어쩌면 클래식한 느낌을 줬다. 다른 가문에서 관리하다 뤼르통 가문의 손으로 97년에 오게 되며 줄기차게 포도밭과 양조 시설에 투자해 어둡고 삐걱거리며 곰팡내까지 나는 그런 정겨운 목조 건물이었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오크 탱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2층의 다락 같은 공간과는 다르게 1층으로 내려가니 훨씬 더 정돈된 모습이었다. 숙성고까지 둘러본 뒤 리셉션 건물로 다시 돌아와 와인을 맛봤다. 와인을 가져오는 동안 뤼르통 씨는 자신을 포함한 현세대의 가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했다. 10명의 형제자매가 있는 대가족이었다. 모두가 와이너리를 하나씩 운영하는 가문이었다. 와인을 가져온 그의 손에는 독특하게도 로제 와인이 있었다. 데스미라이 로제라고 간단하게 쓰인 와인과 함께 세컨드 와인인 이니시알 드 데스미라이[27] 2012, 그리고 샤또 데스미라이 2011 빈티지를 테이스팅했다. 사실 품질 적인 혁신이 되고 있는 최근 빈티지와는 동떨어져 있었고 서늘했던 기후를 그대로 반영하여 두 개의 레드 와인은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로제 와인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주머니 사정도 뻔한 상태였기에 로제 와인 한 병 사가겠다는 말에 뤼르통 씨는 선물용 박스에 넣어주더니 선물이라며 내 손에 쥐여줬다. 투어 내내 손자 바라보듯 미소를 띠고 있던 뤼르통 씨와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가장 바빴던 이튿날의 투어가 끝났다.


[1] 말레스코 쌩-택쥐페리(Malescot St-Exupery)

[2] 마드모아젤 드 마고(Mademoiselle de Margaux): 포도나무 가지에서 영감을 받은 사르망(sarment)이라는 특산 초콜릿을 판다.

[3] 꺄브 뒬리쓰(Cave d’Ulysse)와 꺄브 라방 갸르드(Cave l’Avant Garde)

[4] 장-뤽 쥐제르(Jean-Luc Zuger)

[5] 르 담 드 말레스코(Le Dame de Malescot)

[6] 샤또 마고(Château Margaux)

[7] 메독(Médoc): 보르도 좌안이라고 불리는 지롱드 강의 왼편에 있는 와인 생산 지역

[8] 뽀이약(Pauillac): 메독 내 와인 생산 마을로 진한 탄닌과 풀바디 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유명

[9] 구획 별 양조(Parcellaire): 포도밭을 구분하는 최소 단위인 구획마다 영향받는 떼루아의 영향이 달라 섞지 않고 각각 따로 양조하는 방식

[10] 파비용 후즈 뒤 샤또 마고(Pavillon Rouge du Château Margaux)

[11] 프리우레-리쉰(Prieuré-Lichine)

[12] 르 블랑 뒤 샤또 프리우레 리쉰(Le Blanc du Château Prieuré-Lichine)

[13] 오-메독(Haut-Médoc): 메독 지역의 세부 아펠라씨옹 중 하나. 각 마을 단위 아펠라씨옹보다는 낮은 등급이라고 볼 수 있다.

[14] 아펠라씨옹(Appellation): 와인 생산 지역 등급 명칭(한국으로 따지면 '나주 배', '청송 사과'와 같은 개념)

[15] 르 클로쉐르 뒤 프리우레(Le Clocher du Prieuré)

[16] 꽁피덩스 드 프리우레-리쉰(Confidences de Prieuré-Lichine)

[17] 샤또 보이드-깡뜨냑(Château Boyd-Cantenac)

[18] 샤또 푸제(Château Pouget)

[19] 루씨앙 귀유메(Lucien Guillemet)

[20] 샤또 디쌍(Château d’Issan)

[21] 이쌍(Issan): d’는 ~의를 의미하는 de의 뒤에 모음인 i가 와서 e가 탈락하고 연음으로 붙어 ‘디쌍’이라고 읽기 때문에 샤또를 빼고는 ‘이쌍’이라고 부른다. 샤또 디쌍이 ‘이쌍의 성’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22] 프란츠 조제프(Franz Josef)

[23] 블라종 디쌍(Blason d'Issan)

[24] 코라뱅(Coravin): 코르크를 제거하지 않고 얇은 바늘침과 질소를 사용해 와인을 추출하는 기계. 산화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25] 샤또 데스미라이(Château Desmirail)

[26] 드니 뤼르통(Denis Lurton)

[27] 이니시알 드 데스미라이(Initial de Desmi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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