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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도농부 Oct 03. 2022

지롱드 강변에서 와인메이커 친구들과 피크닉

 포도밭 업무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6월의 흘르바주와 잎사귀 제거를 거쳐 6월 말부터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에끌레르시사주, 혹은 방당주 엉 베르트라고[1] 부르는 작업으로 마지막으로 포도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다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이제부터 에끌레르시사주라는 작업을 할 거에요. 에끌레르시사주는 불필요한 포도를 따서 버리는 작업입니다. 자 앞으로 조금 와보세요. 여기 나무를 보면 좌우로 1년생 가지가 있고 한 개에 3~4개의 과일 가지가 달려있죠. 과일 가지에 포도는 2송이가 제일 적당해요. 여기 아래에 첫 번째 포도, 그리고 두 번째 포도, 그 위로 세 번째 포도 보이죠? 이 포도를 없애주는 작업이에요. 왜 없애냐? 언제나처럼 영양분을 집중하기 위해서에요. 생산량을 적게 하고 품질을 높이려면 세 번째 포도를 없애서 첫 두 개의 포도만 양분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 나무 보면 세 번째도 있지만 네 번째에 이렇게 작은 송이도 있죠? 이것도 다 따줘야 해요. 명심하세요. 가지당 두 개만 남겨놔야 해요. 이게 기본 원칙이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어요 하나하나 설명해줄게요. 여기 보면 옆의 과일 가지에서 난 포도 두 개가 뭉쳐서 자란 게 있어요. 분리를 해주는 게 가장 좋지만 잘못 건드렸다가 둘 다 떨어질 수 있어요. 이때는 하나를 전지가위로 잘라서 제거해주는 게 좋아요. 포도가 가운데 말뚝 근처에 자라면서 포도나무에 눌려있는 경우에 어차피 잘 자라지 못하므로 잘라주세요. 병에 걸린 포도는 당연히 잘라줘야겠죠? 포도송이에서 옆으로 자란 날개 같은 작은 포도가 있는데 이것도 잘라주세요. 포도가 땅에 거의 닿을 듯이 자란 것도 잘라주세요. 이런 작업을 해주면 됩니다. 복잡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싶으면 저나 산드린을 불러서 맞는지 확인을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 먼저 손으로 포도를 너무 많이 만지지 마세요. 부패할 수 있어요. 두 번째로, 제거한 포도는 나무 아래에 버리지 말고 무조건 이랑과 이랑 사이에 버리세요. 이렇게 버리면 포도는 썩을 거고 벌레가 먹을 텐데 나무 바로 아래에 버리면 버려진 포도를 타고 포도나무까지 올라와서 멀쩡한 포도를 먹어 치울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이랑과 이랑 사이에 버려야 합니다. 이해했죠? 질문 있어요? 자 그럼 각자 자리 잡고. 출발!"


 새로운 작업은 여태껏 해왔던 작업과 비교했을 때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말해 준 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제거해줘야 하는 상황이 갈수록 늘어갔다. 포도가 충분히 많이 달리면 끝 쪽 과일 가지에 달린 두 번째 포도를 제거해줘야 하고 얇은 가일 가지면 두 번째 포도를, 밀헝다주라고 부르는, 포도송이에서 중간중간 덜 자란 포도들이 함께 자란 송이를 제거해주라는 등 갈수록 복잡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포도 중에서 쁘띠 베르도[2]라고 불리는 품종은 굉장히 까다로웠는데 우선 과일 가지에 5송이씩이나 열매가 맺혔고 세 번째 포도부터 제거하기 위해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가지가 부러져버렸다. 그래도 여태껏 하던 작업 중 가장 품질 관리와 가까운 작업이었고 그것도 포도밭에서 하는 마지막이라는 말에 더 집중했다. 5, 6월 동안 단련이 되었는지 이제는 쪼그려 앉아 작업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여전히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다른 세조니에들과 많은 차이를 내며 뒤처지진 않았다. 이제는 많은 세조니에들과 친분도 쌓이고 프랑스어로 가끔 대화를 나누곤 했다. 에끌레르시사주 작업을 하면서 팀원들이 고정되어 꽤 오래 같이 작업했다. 스페인 삼총사 중 파블로는 허리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고 로라와 미겔은 남았다. 또 다른 스페인인 루이자와 마리아, 포르투갈에서 온 유쾌한 페드로, 양조학과를 전공 중인 이제 갓 18살이 된 마농,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세상 쿨한 마리옹, 그리고 독특한 영혼을 가진 마르샬까지, 디디에와 산드린과 함께 포도밭을 돌아다니며 포도를 따고 다녔다. 로라는 여전히 모두와 잘 지냈고 미겔과 함께 프랑스어가 약한 루이자와 마리아는 스페인어로 대화하며 작업을 해나갔다. 페드로는 언제나 장난칠 기회만 보고 있었고 스페인 세조니에들 보다는 프랑스인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 마농은 어린 나이에도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하는 맏언니 같은 느낌이 강했다. 육체적으로 힘들 텐데도 가장 불평불만이 없었다. 마르샬은 독특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같은 남자였지만 목소리와 프랑스어 억양에 반했었다. 마르샬이 말을 할 때마다 고개가 돌아갔고 그런 말투를 배우고 싶었다. 페드로보다 더 한 장난꾸러기였고 단체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어디선가 해괴망측한 털이 달린 연두색에 꽃장식이 알록달록 장식된 카우보이모자를 쓰더니 포도 나뭇잎 하나를 잘라서 입에 물고 포즈를 취했다. 출근할 때 항상 거대한 캠핑카를 끌고 왔었다. 지금은 없는 파블로도 그렇고 세조니에들 중에 가끔가다 캠핑카로 출근하는 이들이 있어 항상 궁금하던 차에 마르샬에게 물어봤다.


"마르샬,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거에요?"

"응 맞아. 저게 내 집이야."

"그럼 보르도나 다른 지역에 집이 없는 거에요?"

"응 그렇지. 저기서 먹고 자고 다 하는 거지."

"나는 상상이 안 돼요. 한국은 무조건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안하지 않아요?"

"뭐가 불안해? 저 차 하나만 있으면 행복한대."

"어떤 게 행복해요?"

"상상해봐.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가 됐든 나는 그곳에서 아침을 맞을 수 있어.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오면 바다가, 강이, 눈 덮인 설산이, 푸르른 산이,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광경이, 단풍 진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거야. 얼마나 자유로워.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 그 어디든 갈 수 있는 거야. 오늘은 이렇게 보르도에서 포도를 다루는 일을 하지만 내일은 노르망디에서 치즈를 다룰 수도 있어. 프랑스뿐만이 아니지, 10월까지 일하고 3개월 동안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곤 하지. 그리고 또다시 캠핑카를 몰고 9개월 동안 일을 하지. 집이 있으면 가질 수 없는 자유야. 캠핑카가 작으면 불편할 수는 있지. 샤워실도 없고 주방도 없으니. 그래도 여기에도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전자레인지도 있잖아. 나는 4년 전에 돈을 모아서 내 사랑스러운 캠핑카를 샀지. 이따가 인사시켜줄게 '소피'라고 해. 그녀는 샤워실도 있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도 있지. 널찍한 침대도 있어서 잠도 아주 편하게 잘 수 있어. 너도 한번 경험해 봐.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걸?"


 캠핑카 얘기가 나오자마자 만면에 행복감이 떠오르며 눈을 빛내며 말을 뱉는 것을 보고 매료되었다. 여태 살면서 단 한 번도 집이 없이 캠핑카로만 지낼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집은 당연히 있고 주말에 놀러 갈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캠핑카로 알고 있었다. 마르샬은 물론이고 다른 세조니에들도 캠핑카로 비슷한 생활을 해왔고 같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어디서든 일어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커피와 빵을 마시며 아침을 맞을 수 있다니,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한국식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라났고 자유로움도 안전망이 없을 때 완전히 느낄 수 없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다만 한 달이라도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캠핑카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꼭 한 번은 해보고 들어가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었다. 이때쯤 영국에서 온 세조니에 커플이 있었다. 이들은 경차를 타고 2000년대에 나온 폴더 폰을 갖고 있었으며 그마저도 요금을 내지 않아 먹통이었다가 최근에 다시 개통했다. 경차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고정된 집이 없었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푸른 눈이 아름다웠던 에릭 또한 마르샬 못지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삼시세끼 빵에 잼만 발라 먹고 샤워는 와이너리에서 해결했고 일이 끝나고 나선 근처 숲으로 들어가 텐트도 없이 잠을 청하곤 했다. 영국인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며 친해진 내게 언젠가 한 번 숲으로 놀러 오라며 초대하기도 했다. 그곳에 마르샬을 포함해 다른 캠핑카로 생활하는 세조니에들도 다 같이 모여 저녁마다 불을 피우고 노래를 부르며 와인을 마시며 그렇게 즐겁게 생활한다고 했다. 캠핑카도 내게는 이미 어느 정도 두려움의 존재인데 에릭이 말하는 생활은 호기심이 일기도 했지만, 겁이 나는, 집시의 삶 같았다.


 마지막 팀원인 마리옹은 내겐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잠시 제레미가 우리 팀에 왔을 때 또 한 번 오지랖을 부려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살고 있던 마리옹에게 부탁해 출퇴근을 거의 한 달간 함께하고 있었다. 그 전에 루이 때보다도 더 여유롭게 다녔는데 쌩-또귀스땅 트람 역에서 3 정류장만 더 가면 있는 아흘락 분수 정류장에서 만나 함께 왔기 때문이었다. 마리옹을 7시 15분에 만나 출발했으니 집에서 6시 50분에 나와도 되는, 5시 조금 넘어 출발하던 것에 비해 엄청난 삶의 질 개선이었다. 만날 때마다 보르도 제팬 마켓에서 파는 초코파이, 쌀과자, 쌀로 뻥 같은 한국 과자를 선물로 줬고 처음 차를 탔을 때는 여전한 불어 울렁증에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지만, 며칠 함께 다니다 보니 프랑스어로 슬슬 대화를 시작했다. 원래는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마리옹은 나와 함께 다니기 위해 차를 끌고 다녔다. 프랑스에서 차를 몰지 않은 내게 마리옹과의 한 달이라는 시간은 꽤나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비매너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주었다. 마르샬이나 에릭만큼은 아니었지만, 마리옹 역시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쿨내 나는 멋있는 여자였다. 어리게 봤지만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였고 남자친구와 함께 보르도 외곽에서 동거 중이었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 가끔씩 꺄늘레[3]와 쿠키를 수십 개씩 구워와 팀원들과 같이 나누어 먹기도 했다. 꺄늘레는 사 먹어보기만 했지 집에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던 내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과자라며 레시피를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여름에는 해변가에서 몇 주를 보내기도 했고 겨울에는 알프스산맥으로 스키를 타러 간다고 했다. 이번 겨울에도 길게 스키 여행을 가게 되면 꼭 연락 주기로 했다. 포도밭에서는 로라와 함께 에이스로 불릴 만큼 빠르게 작업을 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산드린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산드린이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아무리 더워도 민소매는 절대 안 된다고 정색을 하며 경고를 주고 갔다. 부팀장의 권력 남용일까, 산드린은 바로 전날까지도 민소매를 입었었지만, 세조니에들은 못입게 금지했다. 이런 이상한 텃새에도 어깨 한번 으쓱하더니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갔다.


 마리옹은 와인에도 관심이 있었고 종종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제레미가 양조장에서 새로 인턴을 시작한 막심이라는 친구와 함께 와인 한잔하자고 했다. 제레미는 여전히 라베고스 기숙사에서 지냈고 막심도 인턴이었기에 기숙사에서 지낸다고 했다. 와인이야 마시고 싶었지만, 보르도로 돌아가는 버스가 5시쯤 일찍 끊기는 탓에 쉽지 않다고 하자 마리옹도 초대하면 어떠냐고 했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마리옹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재밌겠다며 함께 하기로 했다. 제레미와 나와 마리옹은 3시 30분에 퇴근이었지만 막심은 조기 퇴근이 적용되지 않는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므로 5시 퇴근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마리옹과 나는 와이너리 샤워실에서 샤워하고서 제레미를 만나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옆 동네 깡뜨냑[4] 마을로 가 생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다시 라베고스로 와 막심을 태운 뒤 한참을 외진 길로 꼬불꼬불 들어가더니 강 앞에 멈추어 섰다. 오래 방치되어 지저분한 피크닉 테이블을 닦아내고 술과 안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제레미와 함께 산 라베고스 2010년 빈티지를 꺼냈고 꼬냑 지방 출신인 막심은 삼촌네서 가져온 싸구려 VS 등급[5]의 꼬냑을 꺼내더니 슈웹스를 함께 꺼내 섞어서 한 잔씩 돌렸다. 안주로는 쏘씨쏭[6]을 가져왔는데 제레미가 칼날이 잘 들지 않는 접이식 칼로 썰다 보니 종잇장처럼 얇게 썰려야 하는 쏘씨쏭이 손가락 한 마디 두께는 족히 돼 보이게 잘렸다. 경악하는 마리옹에게 이게 최선이라며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함께 가져온 과자까지 꺼내어 두고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교과서로만 배우던, 와인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는 지롱드강인데 그 옆에서 이렇게 평일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크닉을 하다니. 새삼 프랑스에 왔구나, 접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하게 됐다.


 마리옹 덕분에 편하게 출퇴근하고 있었지만, 업무는 여전히 고되었다. 특히 7월 초부터 혹서기가 시작되며 포도밭 일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점심시간이 바뀌었다. 원래는 12시에는 주방으로 들어와 전자레인지로 도시락을 돌려먹고 디저트에 커피까지 마시고선 여유롭게 쉬다가 1시에 다시 오후 일과를 나갔었다. 바뀐 시간표는 30분이라도 일찍 퇴근시키기 위해 점심시간을 30분으로 줄였고 이동시간을 줄여야 식사가 가능했으므로 12시쯤 작업하던 그곳에서 30분 만에 점심을 먹고 작업을 시작해 3시 30분에 퇴근하는 일정이었다. 그전까지는 김치볶음밥이나 돼지고기 덮밥, 불고기덮밥을 해가거나 전자레인지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볼로네제 파스타, 라비올리, 크림소스 치킨 등 제품을 가져와서 돌려먹었었다. 이제는 포도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싸가야 했는데 선택지가 많진 않았다. 그저 테두리 없는 식빵에 칠면조 고기 슬라이스 두 개, 토마토 슬라이스 한 개, 염소젖 치즈 슬라이스 두 개를 올리고 마요네즈를 발라 덮은 보잘것없는 샌드위치와 미니 감자 칩, 그리고 콜라. 기껏해야 2유로 될까 말까 한 차가운 점심뿐이었다. 그마저도 돈을 더 아껴보겠다고 바게트 반 개에 작은 빠떼를 가져와 발라먹으며 0.5유로라도 더 아껴보겠다고 발버둥 쳤다. 먹는 속도가 빠르지도 않았던 나는 20분을 넘게 오물거리고 나서야 식사가 끝이 났고 휴식은 거의 취하지도 못한 채 밭으로 나가 일했다. 30분 일찍 퇴근하는 것은 좋았지만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더 노예처럼 돼버렸다. 에끌레르시사주 작업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한 줄을 끝냈을 때 시간이 많이 지나가 버리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었다. 온도는 심각하게 올라 37도까지도 올랐고 퇴근하려고 차에 타면 달궈진 차량 외부 온도는 47도를 가리키기도 했다. 일교차는 여전했고 오전에는 밤사이 맺힌 이슬로 생긴 습기로 온갖 벌레들이 들끓어 한 달 내내 벌레 기피제를 바르고 싸워야만 했다. 나름 익숙해진 밭일과 한 팀으로 친해진 팀원들끼리 의지하며 버텨내다 보니 그 더운 여름도 지나가고 있었다.


[1] 에끌레르시사주(Éclaircissage), 방당주 엉 베르트(Vendange en Verte): 적포도가 아직 청색을 띠고 있을 때 양분 낭비를 막기 위해 불필요한 포도를 제거해주는 작업.

[2]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보르도 5개 전통 레드 품종 중 하나

[3] 꺄늘레(Canelé): 보르도 전통 과자

[4] 마고-깡뜨냑(Margaux-Cantenac): 라베고스가 있는 쑤쌍(Soussans)의 옆 마을

[5] VS 등급: Very Special의 줄임말로 2년 이상 숙성한 꼬냑에 붙는 등급으로 가장 아랫등급이다. 알코올이 거칠어 다른 음료와 섞어 먹는 편이다.

[6] 쏘씨쏭(Saucisson): 건조한 소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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