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르도농부 Oct 01. 2022

포도밭에서 일하지만 마케터이자 기자입니다.

고집불통 애몬, 어렵게 얻어낸 재택근무, 보르도 와인 축제

 6월 들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5월에 왔던 세조니에들 대부분이 그만뒀고 새로운 이들로 대체되었다. 6월에 들어서도 데두블라주와 에빰프라주 작업이 계속되었지만 다른 작업이 추가되었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 채용을 늘렸고 아침에 출근해 주차장으로 향하면 차를 주차할 곳이 모자라 근처 포도밭까지도 세워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5월 초반과 다르게 중순부터는 햇볕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려 포도나무 가지는 꽤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이제는 사람 어깨높이까지 자랐고 가지에 열리는 열매와 잎사귀의 무게로 양옆으로 쳐지기 시작했다.


"팀 디디에! 다들 까미용으로 오세요! 한 사람당 장갑 한 쌍, 주머니 한 개, 그리고 아그라프 넉넉하게 챙기세요!"

"아그라프가 뭐에요?"

"이렇게 타원형으로 생겨서 양쪽을 걸 수 있게 걸쇠 역할을 하는 이게 아그라프에요. 넉넉히 챙겨요 넉넉히!"


 디디에는 세조니에들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포도밭으로 내려오자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포도밭 중앙으로 이동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흘르바주[1]라는 작업을 할 거에요. 지금 보면 포도나무 가지들이 이렇게 축 쳐져있죠? 포도나무 트렁크를 보면 그 주변으로 두 개의 줄이 지날 거에요. 이 줄에 묶여있는 아그라프를 먼저 풀고 두 줄을 양쪽으로 당겨 아래로 쓸어모아 올려서[2] 이 말뚝의 중간에 있는 못에 올려두면 돼요. 그리고 모든 포도나무 가지를 이 줄 사이로 다 모아주세요. 그래야 양옆으로 쓰러지지 않고 올곧게 자랍니다. 그리고선 말뚝 앞뒤로 아그라프를 다시 걸어서 조여주세요. 그래야 단단하게 고정이 됩니다. 다 잘 알아들었나요? 질문 없나요?"


 다른 작업과는 다르게 서서 하다 보니 작업 속도가 빨랐고 옆에서 세밀하게 감독하기가 어려워 디디에는 몇 번이고 설명을 반복하고 질문이 없냐고 물었다. 쭈그려 앉아서 일하는 것에 해방되니 다들 표정이 풀어졌고 전보다 더 수다가 많아졌다. 빠른 걸음으로 포도밭 속을 걸어가며 작업을 하다 보니 그 전 작업의 두 배 이상 걸음을 걸어 만 오천 보 이상을 매일 걷고 있었다. 허벅지나 허리는 더 이상 아프지는 않았지만 일이 끝나면 다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이 작업이 포도밭 작업 중에 가장 편한 건 사실이었다. 흘르바주만 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아쉽게도 미처 다 못 한 데두블라주, 에빰프라주 작업도 해야 했고 너무 빨리 자라는 나무 탓에 잎사귀 제거 작업도 가끔가다가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잎사귀 제거 작업을 할 거에요. 포도 열매가 보이죠? 이 열매 아래로 잎이 자랐거나 이 위로 첫 번째, 두 번째 자란 잎까지는 따줘야 해요.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따면 안 돼요 왜 그렇죠? 세 번째부터는 양분을 뺏어 먹지 않고 햇볕이 포도를 태우지 않도록 모자 역할을 하므로 따면 안 돼요. 자 알겠죠? 이렇게 좌우로 포도가 자라는 가지가 네 개, 네 개해서 총 여덟 개 자라는데 여기에 아까 말한 것처럼 잎을 제거해주면 돼요. 이렇게 열매 아래로 자라고 열매 위로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옆에 나무도 마찬가지로 네 개, 네 개, 열매 아래로, 열매 위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는 건드리면 안 됩니다. 다 알겠죠? 자 각자 자리 잡고. 출발!"


 6월 들어 해야 하는 작업의 종류가 많아졌고 잎사귀 제거 작업은 포도 열매 근처의 잎을 제거해주는 작업이다 보니 다시 쭈그려 앉아서 하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휴식하며 회복하다 보니 조금은 나아졌고 그간 작업하며 생긴 근육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반면에 이번 달에 처음 온 세조니에들은 처음에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치고 나가다가 며칠 못하고 연락도 없이 잠수타고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날이 지날수록 햇볕의 열기는 뜨거워져 갔고 무더위가 시작되며 남자고 여자고 쓰러지는 이들도 종종 나왔다. 디디에는 올해가 유난히 뜨겁다고 얘기하더니 얼마 안 있어 팀원들을 모아두고선 너무 덥기 때문에 이제부터 한 시간씩 추가 근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달했다. 조금이라도 더 벌던 수입이 없어져 아쉬웠지만 그만큼 한 시간이라도 일찍 들어가 쉴 수 있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한국과는 다르게 여름으로 가면 갈수록 비는 더 적어졌고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로 쏟아지는 햇볕과 싸워야 했다. 거기다 머리 위를 가리는 그늘은커녕 쉬는 동안 햇볕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아 까미용이 만들어준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쉬곤 했다.




 이쯤 와이너리와 이런저런 협상을 하고 있었다. 포도밭일 외에 다른 일들을 조금 더 제대로 해서 인정받고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었다. 애초에 이력서에 쓴 내용도 그렇고 면접 볼 때도 계속 강조했던 것이 한국 내에서의 브랜딩이었다. 하지만 고집불통인 마케팅팀 팀장인 애몬은 완강하고 요지부동이었다.


"말해봐요. 어떤 걸 원하죠?"

"샤또 마르키 달렘으로 한국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한국어로 메시지를 계속 보내면서 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고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 인지도를 올릴 수 있어요."

"그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아요. 내 대답은 노에요."

"왜죠?"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진행하길 원해요. 다니엘이 우리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어요? 나는 아니라고 봐요. 한국 계정을 만들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미국 계정, 이탈리아 계정, 호주 계정 등등. 그들이 모두 다른 브랜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요? 우리는 그걸 관리할 인력이 없어요.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일하고 있잖아요. 금세 컨텐츠에 대해 사전 협의를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제 대답은 노에요. 더 이상 요구하지 마세요."

"그럼 창작 컨텐츠는 만들지 않고 당신들이 올리는 이미지를 저한테도 공유해주면 그걸 올리는 것으로 계정 운영을 하면 어떨까요? 그럼 같은 방향성이잖아요."

"안 돼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쓰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중복되서 노출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안 된다는 말만 외쳐댔다.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나'라는 자원을 활용할 생각이 없는 태도에 첫 만남부터 질려버렸다.


"그럼 공식 계정의 포스팅을 리포스팅하고 한국어로 번역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그 번역이 저희가 보내는 메시지 그대로라는 걸 어떻게 알죠?"

"절 믿어요. 전 샤또 마르키 달렘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고 처음 파비앙과 면접을 보면서도 이런 활동을 더 할 수 있다고 얘기했고 그런 면까지 고려해서 저를 뽑은 거라고요. 전 글자 그대로 번역해서 올릴 거에요."

"뭐 정 그렇다면 그것까진 허락해드리죠."


 마음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누른  악수를 나누고 애몬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허락해 드리죠'라니! 내가 이런 일들을 비굴하게 얻어내야 하는 것인가. 답답한 여자였다. 되는 것보다  되는 것이  많았다. 이후에도 애몬과는 무슨 말을 꺼내든 사사건건 시비였고 부딪히기 일쑤였다. 당시 나는 라베고스와 마르키 달렘이라는 이름을 노출시키며 와인21닷컴에 포도밭과 양조 경험을 쓰고 있었고 이에 필요한 정보가 많아 당연하게도 마케팅에 먼저 문의했다. 결과는? 요청한   달이 되도록 묵묵부답이기에 사무실로 찾아가서 자료 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하니 그제야 "다니엘,  정보는 대외비이기 때문에   없어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마고에 위치한 거의 모든 와이너리들이 발효  저온 침용[3]이라는 작업을 거치는데 자신들만의 비밀 레시피이니 기사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기막힌 일들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따낸 리포스트 계정을 개설하고 그저 그런 밭일하는 잠시 스쳐 지나간 동양인으로 남고 싶지는 않아 '보르도 농부'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그리곤 처음 파비앙에게 약속했던 포도밭과 양조 기사에 지속해서 브랜드를 노출하고 브랜드 스토리 기사[4] 탈고하였다. 하지만 평일에는 밭일하고 퇴근하면 고작해야 한두 시간 정도밖에 짬이  났고 우연히 지나던 파비앙에게 이런 부분을 토로했다. 그래도  개의 기사를 썼던 터라 파비앙과의 이야기는 다소 순조롭게 흘러갔다. 처음엔 매주 금요일마다 오전 업무만   사무실로 와서 글을 쓰는  어떠냐고 물었다. 반나절이라도 육체노동에서 해방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에 냉큼 좋다고 답변은 했으나  말이 있고서도 언제부터 시작할  있는지 얘기가 없은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파비앙, 지난번에 말했던 사무실에서 글 쓰는 건은 언제부터 할 수 있나요? 이번 주부터 하면 될까요?"

"아 다니엘, 그게 지난번에 말하고 나서도 고민을 좀 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 다른 제안을 하면 어떨까 해서요."

"어떤 제안이죠?"

"집도 먼데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금요일마다 오후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것은 2주에 한 번씩 금요일에는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글을 쓰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격주로 재택근무요? 전 너무 좋죠! 글 쓰는데 들일 수 있는 시간도 훨씬 많아지구요."


 애몬과 얘기할 때와는 다르게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출퇴근 5시간이 줄어드니 잠을 더 잔다고 하더라도 글에 더 집중할 시간이 한참은 더 생겼다. 당장이라도 껴안고 비주[5]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언제부터 시작하고 싶냐는 말에 마침 보르도 중심가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와인 축제가 있기에 바로 이번 주부터 시작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날만큼은 처음 라베고스 취업을 확정 지었을 때만큼이나 기뻤다. 버스 기사는 여느 때처럼 기분 나쁜 눈길을 보내며 시비를 걸어왔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온전히 즐기고 싶어 들리지도 않는 뉴스는 잠시 끄고 위대한 쇼맨 OST를 틀고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첫 격주 재택근무를 하는 날, 충분히 자고 느지막이 일어겠다고 했지만, 눈을 뜨고 알람 시계를 바라보니 7시였다. 정원으로 연결된 창을 열어보니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태양이 일어나고 있는 시간이었다. 간단히 씻고서 주방으로 올라가 커피를 내리고 계란 스크램블을 하고 약간 단단해진 바게트를 썰어 버터와 딸기 잼을 발라 한 입 베어 물며 여유롭게 아침을 먹었다. 유튜브를 보며 30분 정도 여유를 부리고서 내려와 어제 받은 와인 축제 키트를 점검했다. 제일 중요한 입장 목걸이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카드를 챙겨 들고서 행사 장소로 향했다. 행사는 북스 광장[6] 앞, 물의 거울[7] 앞쪽으로 갸론 강[8]을 따라 조성된 길을 따라 꽤나 긴 구간에서 열렸다. 행사 시작 전날 밤에는 보르도 북쪽의 자크 샤방 델마스 다리가 아주 높이 올라가더니 조금 뒤에 영국 리버풀에서부터 온 수십 척의 범선이 다리를 지나며 성대한 불꽃놀이를 치렀다. 긴 구간에 걸친 갸론 강 양편에 범선들이 정박하며 보르도 와인 축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축제의 입구를 지나 강 쪽으로 다가가니 정박해있는 엄청나게 큰 범선의 규모에 압도되었다. 20주년을 맞은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각국 20척의 범선들이 보르도로 찾아왔다. 인도에서 온, 전체 길이 53미터로 13번의 탐험에 참여하며 2,100일 동안 39개국 74개 항구를 방문한 타란기니[9], 덴마크어로 향유고래라는 뜻을 지닌 그린란드의 얼음을 깨는 보급 목적의 범선 카스켈로트[10], 1430년 포르투갈 태생의 24미터 길이의 쾌속범선 베라 크루즈[11], 스페인 까스띠용 이 레온 지역에서 1980년에 건조되어 벌써 73,000km의 항해 기록을 보유한 아띨라[12], 19세기 트라팔가 해전에서도 활약한 1745년생의 47미터 규모로 프랑스에서 나무 범선으로는 2번째로 큰 에뚜알 뒤 호아[13], 독일 해군이 라틴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를 누비고 다닌 114.5미터의 전 세계 두 번째 규모의 크루젠슈트른[14]까지 갸론 강에 정박해있었다. 내부를 돌아 볼 수 있는 투어도 있었지만 작은 범선으로는 지롱드강까지 다녀오는 범선 투어도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태양이 가까이 떠 있었고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에 가벼운 차림의 여행객들로 축제는 붐볐다. 입구 쪽에는 보르도의 명물인, 기름지고 손가락만한 크기부터 손바닥만한 크기까지 다양하게 있는 굴을 파는 트롤리, 핫도그부터 크레프, 그리고 푸아그라가 들어간 햄버거까지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다양한 워크샵들이 있었는데 잘라서 건조 과정까지 마친 오크 나무 판들을 가져다 두고 불을 피워 손으로 직접 두들겨가며 오크 배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사용하지 못해 잘게 잘라둔 오크 나무 조각들로 불을 피워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마이크로 하나하나 작업을 설명해주며 하루에 두 개의 오크 배럴을 만들어냈다. 한 곳에는 야외에 미로 같은 벽을 세워 보르도 와인 무역의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대형 패널로 화면을 만들어둔 곳에서는 저녁에 공연도 했지만, 낮시간에 에꼴 뒤 뱅 드 보르도[15] 협회에서 다양한 주제로 소비자들에게 와인 강의를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품종 원액을 20ml씩 튜브에 담아 주고서는 원하는 비율대로 잔에 따라 어떤 스타일을 더 선호하는지 알아가는 블렌딩 세미나였다. 하루는 물의 거울을 막아놨는데 색색깔로 칠해진 오크 배럴이 세워져 있었고 어린 학생들이 유니폼을 입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잠시 연습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오크 배럴 굴리기 공연이 시작됐다. 가끔 놓치기도 했지만 줄 맞춰 빠른 속도로 오크를 굴려 가는 모습은 놀라웠다. 그렇게 물의 거울까지 지나게 되면 왼쪽으로 늘어선 부스들을 볼 수 있다. 부스의 지붕 위로는 커다란 빨간색 직육면체에 메독, 누벨-아키텐, 쌩떼밀리옹-뽀므롤-프롱삭, 그라브-쏘떼른느[16] 등의 이름들이 쓰여있었고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와인을 따라주고 있었다. 취재할 거리가 아직 남아 지나쳐가던 중 익숙한 얼굴이 보여 잠시 발을 멈췄다.


"제레미! 봉주르!"

"살뤼 다니엘! 왔구나!"

"응 어제는 그래도 금요일이라 덜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사람 정말 너무 많다."

"완전 미쳤어. 나도 하루 종일 와인 따르느라 정신없다. 안녕하세요 어떤 와인으로 드릴까요? 여기는 그라브와 쏘떼른느 와인인데 그라브 지역에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이 있고 여기에는 쏘떼른느의 스위트한 와인이 있어요. 쏘떼른느는 이런 세컨드나 써드 와인 같은 경우는 좀 가볍게 달콤하고 여기 마담 드 헨느[17] 같은 와인은 그랑 방[18]이라 묵직하면서 풍성하고 달아요. 어 다니엘 간다고? 어어 라베고스에서 보자!"


 제레미는 토요일 하루 동안 잠시 친구를 도우러 축제에 왔다고 한다. 쏘떼른느에 있는 양조학교를 졸업했고 특히 친한 친구가 쏘떼른느 와이너리의 아들이었기에 이 지역 와인들과 연이 깊었다. 손님들을 대할 때도 특유의 장난기 어린 태도를 지울 수는 없었지만 와인에 대한 설명을 할때만큼은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수백 가지에 달하는 와인들이 부스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고 입장권을 산 방문객들은 11개 지역의 부스에서 12잔의 와인을 마셔볼 수 있는 카드를 받아 보르도의 다양한 와인들을 즐겨볼 수 있었다. 행사 이틀째, 이른 오후에 찾은 부스에서는 이미 수백 병의 와인 빈 병들이 냉장고 옆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부스를 지나 더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고 특히 어린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었는데 와인을 주제로 한 놀이터가 만들어져있었다. 코르크를 던지기도 하고 로프를 던지기도 하며 카드 게임 등등 여러 가지 놀거리에 아이들은 입을 삐죽 내밀고 집중하여 열심히였다. 놀이터까지 지나게 되면 어느샌가 그 긴 축제 공간이 끝이 나고 출구가 보였다. 출구 옆쪽으로 앙가14라는 건물에는 보르도 그랑 크뤼 테이스팅이 진행된다는 현수막이 한쪽 벽을 크게 장식하고 있었다. 2층으로 향하자 100개 넘는 그랑 크뤼 와이너리들이 자리 잡고 테이스팅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보르도에 수놓아진 별들이었고 방문한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메독 뿐 아니라 그라브와 썡데밀리옹[19]의 그랑 크뤼 와인까지 대거 나와 있었기에 전부 시음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온통 뱉기 아까운 와인들만 있었기에 대부분 목으로 넘겼고 그러다 보니 탄닌이 강하고 진한 레드 와인으로 옮겨가니 힘이 들어 오히려 뱉어내기 시작했다. 호로록 소리와 함께 브리딩 해 산화를 시키고선 입 안에서 가글링하며 입안 구석구석 모든 곳에 와인을 묻히고선 옆에 놓인 통에 일자로, 주변에 튀지 않게 뱉어낸다. 조금 전까지 액체가 가득 차 있던 입 안은 빈 공간이 되며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잔향이 그 공간을 채우며 비강을 타고 코까지 흘러나온다. 백 가지가 넘는 와인을 차근차근 테이스팅 하고선 곰팡이가 슬어 귀하게 부패한, 달콤한 쏘떼른느 와인을 입 안에 넣으며 달콤함과 함께 느껴지는 짜르르한 산도로 입가심하고서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근처에서 햄버거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고서 물의 거울 앞에서 엘리와 조니, 황웨이와 함께 모였다. 취재 때문에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다 보니 따로 다녔고 저녁이 돼서야 함께 만나 크레망 드 보르도[20] 2병을 따서 돗자리를 펴고 과자를 집어 먹으며 용을 주제로 한 불꽃놀이와 함께 건배했다. 엘리와 조니는 이미 축제에서부터 와인을 거나하게 마시고 온 터라 취해 보였다. 4월에 처음 와이너리에 나가기 시작하고 5월 내내 친구들은 거의 만나지 못하다 여유가 생겨 만나게 되니 새삼 친구 좋다는 게 느껴졌다. 와이너리와 네고시앙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 셋과 곧 와인 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학생 한 명이 모였지만 우리의 삶은 비루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세조니에들에게는 물론, 퇴근길 버스 운전기사에게, 그리고 보르도 시내에서도 계속된 인종 차별이 있었지만 때로는 싸우고 무시하면서 버텼고 이렇게 모여 앉아 와인 한잔하며 훌훌 털어냈다. 내일의 삶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으로 우린 서로의 의지할 나무가 되어줬다. 여의도에서 가끔 보던 불꽃놀이보다 작았지만, 갸론 강 앞에 앉아 눈에 바로 담는 광경은 더욱 아름다웠고 잘하고 있다며 자위하면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1] 흘르바주(Relevage): ‘다시 올리다’라는 뜻을 가진 작업으로 포도나무 가지가 똑바로 자라게 해준다.

[2] 올려서: 올리다라는 뜻의 동사 Lever에서 흘르바주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발효 전 저온 침용: 알코올 발효 전 온도를 낮춘 채로 침용 과정을 거치며 섬세한 과실 풍미와 색상을 추출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레드 와인들은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4] 브랜드 스토리 기사 https://www.wine21.com/11_news/news_view.html?Idx=17095

[5] 비주(Bisou): 유럽식 볼 키스 인사. 이성간 혹은 여성 간 비주 인사는 일반적이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남성 간에는 선물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6] 북스 광장(Place de la Bourse): 보르도 중심부에 있는 광장. 과거 와인 무역의 중심지였다.

[7] 물의 거울(Miroir d’Eau): 북스 광장 앞에 있는 설치미술로 5월에서 10월까지 물이 차면 북스 광장과 그 뒤로 펼쳐진 건물이 거울처럼 비쳐 장관을 만들어낸다.

[8] 갸론 강(Garonne): 보르도 시내를 흐르는 강.

[9] 타란기니(Tarangini)

[10] 카스켈로트(Kaskelot)

[11] 베라 크루즈(Vera Cruz)

[12] 아띨라(Atyla)

[13] 에뚜알 뒤 호아(Étoile du Roy)

[14] 크루젠슈트른(Kruzenshtern)

[15] 에꼴 뒤 뱅 드 보르도(École du Vin de Bordeaux): 보르도 와인 교육 기관

[16] 와인 생산 지역 명칭

[17] 마담 드 헨느(Madame de Rayne): 쏘떼른느 그랑 크뤼 와인 중 하나의 이름

[18] 그랑 방(Grand Vin): 특히 보르도 와이너리에서 만들어내는 간판 와인. 그보다 품질이 낮은 와인들은 세컨드 와인, 써드 와인으로 분류한다.

[19] 와인 생산 지역 명칭

[20] 크레망 드 보르도(Crémant de Bordeaux): 보르도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





이전 13화 5월의 보르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