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수업
지지난주는 자체 결석, 지난주는 Memorial day로 휴강이었으니, 3주 만의 수업이다. 마지막으로 그린 인물화가 브라운 콩테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음을 자각했다. 아직은 응용을 하고 새로운 재료에 도전하고 뭐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께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그림들을 참고로 해서 오마주 해 보라고 하셨기에 과감하게 시도했었던 것인데, ‘콩테’라는 낯선 재료를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점토가 믹스된 재료이다 보니 스머징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얇은 선으로 더 정교하게 시작했어야 했는데 또 그러질 못했다. (취미미술인의 한계… 연필을 제대로 깎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오마주의 시도‘같은 느낌으로 마무리…
그래서 오늘은 ’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재료도, 방법도, 구도도, 내 마음가짐도… 이런 생각으로 스튜디오에 들어갔더니 내가 가진 오늘의 목표에 아주 잘 부합하시는 모델분이 계셨다. 안경도 안 쓰셨고, 장신구도 없으셨고, 수염, 머리카락도 없으신 남자분이셨다. 이론으로 배웠던 얼굴의 비율을 바탕으로 도화지에 차근차근 옮겨내는 것에만 집중하는데 아주 적합한 모델분이었다. 내가 가진 4B와 6B 연필, 블랙과 화이트 차콜 펜슬, 콩테 펜슬 중에서 4B 연필을 일단 골랐다. 요행 없이 -기본 재료로, 비율을 정확하게 측정해서, 명함을 섬세하게 넣어서- 성실하게 오늘의 그림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며 느꼈다. 복잡한 헤어스타일과 안경을 포함한 장신구들이 추가되면 그림 난이도가 얼마나 높아지는 것이었는지를. 이 분은 내가 조각상 드로잉을 마치고 첫 모델 수업 때 뵈었어야 했었다! 왜 선생님께서 인물화를 집에서 더 연습하고 싶다면 두개골 모형을 여러 각도에서 그려보라고 말씀하셨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없으니 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부분의 근육들, 두개골의 곡선들, 움푹 들어간 관자놀이, 귀가 붙어있는 각도까지 꼼꼼하고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각 부분들이 연결되는 모습이 명확하게 보이니 얼굴의 선들과 명암들이 논리적으로 보였다. 이렇게 ‘기승전결’이 명확할 수가!!! 복잡한 부분들이 가려져 있다고 그리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안 보이는 부분을 유추하여 다음 단계를 채워 넣는 것은 원래 기본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뵌 모델분은 오늘 나를 구원해 주러 오신 것이 분명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를 잃어버리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있어!‘라고 가르쳤었다. 아이들이 길을 잃으면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으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방향감각도 없이 그저 앞으로, 앞으로. 지난 시간 폭풍 같았던 콩테 드로잉을 하면서, ‘와,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허둥지둥 그저 도화지만 채워 나갔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나의 긴긴 인물화 여정에서 벌써 엄마랑 멀어져서는 안 되었기에, 엄마랑 멀어지기 전에 어쨌든 그 자리에서 멈추고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오늘의 ‘Back to the basics’가 나에게는 꽤나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첫 시간 그린 인물화와 도대체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비밀인데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더 멀리 머나먼 광야로 혼자 경주마처럼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때로는 달리다가도 그 방향이 맞는지, 여기가 중간지점이 맞는지 확인하느라 잠깐 멈춰야 할 때도 있으니까. 돌고 돌아 잘못된 길로 들어가느니 한번 더 같은 길을 다지며 걷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이제까지 ’ 합리화/자기만족‘ 끝판왕의 장황한 상황설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