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걸 하는 게 맞는 겁니까? (정답은, 응!)

여섯 번째 수업

by 아오리


두 번의 인물화를 그리고 나니 이것이 절대 나에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섣불리 이 세계에 뛰어든 것들 후회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동시, ‘그래도 더 잘 그리고 싶다 ‘는 욕심이 생겼다. 주말 동안 유튜브에서 인물화 튜토리얼을 찾아보기도 하고, 지난번에 서점에서 사 온 책도 들춰보았다.

손은 그대로 두고 눈만 열심히 굴리면서, 마치 공부도 안 하고 시험을 잘 보길 바라는 게으른 학생 마냥 어떻게든 지난 시간보다는 더 나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참 예쁜 미술관앞! 저 미술관 앞 멋진 말도 제가 이전에 ‘동키’로 그려버렸더랬지요;;;

이번 시간 모델은, 얼굴의 반을 가리는 큰 안경을 쓰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스타일 좋은 여자분이었다. 이번에는 굴절율이 큰 안경과, 얼굴 옆에 살포시 갖다 붙인 손까지 묘사해야 하는 것이 또 다른 복병이었다. 매번 새로운 도전 과제를 세팅해 주시는 우리 선생님, 덕분에 비약적인 자체 발전을 매 시간 시도 중이다.


주말 동안 생각해 보니, 사실 초반에 제대로 방향을 잡고 비율을 잘 나누고 시작한다면 그 이후의 디테일을 표현하여 인물의 특징을 살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정확히 인물을 관찰하고 정확한 비율로 스케치북에 옮기는 일에 정성과 시간을 더 쏟아야 했다. 옆에서 쓱쓱 그려나가시는 실력자들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말고 내 페이스에 집중해야 했다.


마치 달리기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야 더 잘되는 일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아이러니하게도 협력해야 할 때 혼자 달려버리는 게 더 쉽고, 나에게 집중해야 할 때에는 왜 남에게 더 시선이 가는 건지.

동그라미를 그리며 언제쯤 나는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직도 ‘어쨌든’ 뭐라도 그려내는 내 자신이 신기합니다.

집중하는 정성을 들여서인지 이번에는 얼굴의 방향과 비율을 모두 잘 캐치했다. 연필 스케치를 마치고 브라운 콩테로 넘어가며 얼굴 전체의 완성도를 고르게 올리며 작업하려고 애썼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선 위주의 스케치보다 명암과 하이라이트를 함께 쓰는 스케치를 하고 싶었다. 그러면 좀 더 자연스러운 인물의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이론과 실습에는 너른 강이 존재하는 법, 한참을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낑낑거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내가 이걸 계속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불쑥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아니, 잘하는 걸 더 즐겁게 해. 어차피 인물화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잖아.’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러게, 나 인물화 왜 그리고 있는 거니? 이 열 번의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고 어차피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은데.‘라고 대꾸했다.

이때 메타인지를 탑재한, 나의 제3의 자아가 말했다. ’ 도망가려고 핑계를 찾는구나? 그래, 그게 과정이지. 조금 애썼는데도 생각보다 쉽지 않으면 포기의 수순으로 가게 되지. 그러고 나면, 알지? 그냥 전과 똑같아져. 그래도 뭐든 안 하는 것보다는 낫더라 (토닥토닥)’


중간 과정 사진들을 못찍었습니다. 왜냐, 콩테랑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이렇게 마음속으로 수많은 자아가 싸우는 와중에 열심히 손을 놀려 오늘도 인물화 한 장을 완성했다. 두 시간 반 동안 집중하며 스스로를 괴롭게 한 오늘 그림으로, 나는 어제와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을 좀 해보자.


첫째, 콩테나 차콜을 사용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음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내 선은 인물화를 그리기에는 다소 거칠고 무겁다. 좀 더 섬세한 표현이 필요하다.

둘째,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기회가 생기면 눈의 비율, 코와 입꼬리까지의 각도, 귀의 크기를 눈으로 재고 머릿속의 스케치북으로 옮기고 있다. 사람 이름,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던, 나였는데 어쨌거나 ‘사람’이라는 피사체에 관심이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다.

셋째, 다시 한번 느낀다. No pain, No gain.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무언가 얻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힘든 일을 어느 정도 견뎌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하루에도 수십 번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을 만난다. 달리기를 하다가 힘이 들 무렵 내 앞에 나타난 집으로 가는 샛길에서, 배달앱에서 할인 쿠폰이 날아오는 순간 냉장고에 잔뜩 쌓인 식재료를 외면하며, 가장 흥미진진한 쇼츠를 보고 있을 때 핸드폰에서 영어공부 하라고 알람이 디링디링 울리는 순간, 지금처럼 글을 쓰다가 막히는 순간 바로 옆에 있는 핸드폰에 눈길을 주며… 그럴 때마다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고 가던 길을 묵묵히 갈 때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시간당 네다섯 개쯤의 pain을 coin처럼 쌓아,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매일 ‘그래도 오늘은 gain이 있는 보람찬 하루였네!’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이 그래도 행복하고 뿌듯한 하루일 수 있겠구나 싶다. 역시나 오늘도 잔잔한 pain들을 gain으로 적립한 나와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똑땅할 때는 재미있는 ‘아프리카관’ 한 바퀴… 누가 아름다운 것만이 예술이랬나요?
그림같은 Courtyard, 멍때리기 참 좋은 곳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