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미술에서는, ‘기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네 번째 수업

by 아오리


오늘은 수업에 가기 전부터 마음이 뒤숭숭, 걱정이 몰려왔다. 지난 시간까지 3주간 Gallery에서 조각상을 그리며 기본 연습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실제로 모델을 앞에 두고 인물화를 그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교실에 들어갔더니 수강생들보다 더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신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저분이 오늘의 모델이구나!’ 긴장했던 것도 잠시, 어디에 앉아야 오늘 나의 첫 번째 인물화가 좀 더 수월할는지 생각했다. 정면 자리는 이목구비의 형태가 정직하게 모두 잘 보이기에 무언가 너무 많이 그려야 하는 느낌이라서, 측면은 정면보다 더 연습을 많이 해보지 않은 각도라서… 결국엔 아무 곳에나 앉아도 다 쉽지 않겠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다. 세상에 쉬운 길은 어디에도 없지.


봄 맞은 아가씨 마냥 첫 모델을 앞에 둔 Mrs.는 마음이 두근두근


모델 드로잉은 모델이 20분 동안 고정된 자세로 앉아 계시고, 5분 동안 쉬시는 것을 한 세트로 하여 총 7세트 정도를 진행하였다. 그리는 중간 선생님께서 왔다 갔다 하시며 코멘트를 주시기도 했지만 오롯이 각자 앉은자리에서 보이는 대로 모델과 나의 그림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20분씩 짧게 끊어서 진행하다 보니 은근히 집중력을 요했다.


인물화를 그릴 때 내가 항상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첫째, 얼굴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 둘째, 피사체를 실제보다 약간 살집 있게 그려내는 것, 셋째, 하관을 짧게 ‘동안’으로 그려낸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초반에 그려낸 얼굴이 아무리 봐도 실제 모델보다 너무 젊어 보여 명암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선생님께 코멘트를 부탁드렸다. 역시, 이번에도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약점에 당첨! 선생님의 조언대로 코와 턱의 길이를 늘이고 얼굴의 볼륨을 줄여 모델의 각진 턱을 강조하니 내 스케치북 위의 Young Guy는 실제 모델 와 비슷한 연배가 되었다. ‘역시 어려 보이려면 얼굴의 중안부를 짧게 만드는 메이크업을 해야겠구나!’ 새삼 인스타에서 본 동안 메이크업 영상이 떠오르며….


선생님의 코멘트로, 볼 살이 빠지고 하관이 길어져 제 나이를 찾게 된 Magic


드디어 대강 그림을 마무리하고, 크리틱 시간! 같은 모델을 그려낸 다양한 인물화를 나란히 두고 보고 있자니 정말 흥미로웠다. 모든 그림들이 기본적으로 모델을 닮았지만 묘하게 그 분위기가 달랐다. 내 그림은 아웃라인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인지 묘하게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인물화라기보다는 캐릭터화처럼 보였다. 애매하게 소묘를 배웠고 더 애매하게 조각상들도 그려본 경험 때문인지(이럴 땐, ‘덕분’이 아니다.) 사람을 무형물처럼 각 잡아 빚어낸 느낌이랄까. 오히려 짧은 선과 스머징으로 개성 있게 모델을 그려낸 동료 수강생들의 그림들이 더 ‘사람을 그린 그림’ 같았다.


나도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그들이 그리는 그림만을 보고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MFA 수업에서 만난 대부분의 분들이 미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으신 분들은 아니었다. ‘이론’보다 ‘실습과 경험’을 더 강조하는 이곳의 교육 특성상, 그리고 경험한 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판단하건대 우리나라의 미술학원처럼 체계적으로 기본부터 지도하고 선생님이 직접 그림을 다듬어주는 식의 교육은 아마 미국에 드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번 수업을 들을 때마다 수강생들이 그려내는 그림들의 화풍이 매우 다채롭다고 느꼈다. 이번에도 명암을 위주로 형태를 구현해 내시는 분도 있고, 짧은 스트로크로 그려내어 자연스럽고 포근한 느낌을 내는 분도 있었다. 문지르기 기법으로 부드러운 피부의 질감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그림, 반사되는 빛과 안경의 투명함을 지워내기 기법으로 사진처럼 그려내신 ‘지우개의 달인’의 그림도 있었다.


더블 체리같이 꽉 차게 예쁜, 오늘의 마무리!


객관적으로 잘 그린 그림은 크리틱 시간에도 모두에게 주목을 받긴 한다. 그러나 매번 크리틱 시간마다 분명 잘 그린 그림이 아님에도 모두 파워 당당하게 자신의 그림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분위기에 놀랐었다. 이것은 ‘겸손이 미덕’인 대한민국 사람에게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수업을 통해 ’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얼마나 멋진 것인지, 비교해야 하는 대상은 옆 사람의 그림이 아니라 ‘내가 어제까지 그린 그림’이라는 것에 진실로 공감하게 되었다.


모두가 같은 방식의 ‘기본기’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자기 스스로 ‘직접 그려봄’으로써 터득한 자신만의 스킬에 집중하여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려내면 되는 것, 이것이 ‘취미 미술가’로서 얼마나 성취감 있고 바람직한 태도겠는가! 처음에는 항상 내가 이 수업에서 그래도 제법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개성’을 가진, 스스로 이만큼 잘 그려낸 나의 그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싶은 욕심 더 커졌다.


매 시간 수업을 마치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무얼 배웠지? 어떤 부분들은 잘 그려냈지?’ 아쉬운 점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갈 때보다, 더 기쁘고 더 다음 수업 시간이 기대되는 것은 보너스로 두 배가 되어 따라오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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