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수업
주말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일요일 늦은 저녁 비행기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어서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부담스럽긴 했지만, 비행기 연착까지는 생각지 못했었다. Boston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한 시 반, 집에 가서 대충 정리하고 자려고 보니 새벽 한 시였다. 여독에 잠까지 못 자면 탈이 날까 싶어 아이는 월요일에 학교를 하루 쉬기로 했지만, 남편은 밀린 일 때문에 더 일찍 나가야 했고 나는 MFA 수업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MFA 수업을 하루 빼먹어도 납득이 갈만한 나의 결석 사유는 이렇게나 많았다. 첫 번째, 여행을 다녀오면 그다음 날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많다. 비워두었던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장도 보러 가야 하고 밀린 빨래도 해야 하고, 캐리어도 정리해서 치워두어야 한다. 두 번째, 비행기가 지연되어 한 시에 잠들었기에 정상범위 이상으로 피곤하니 쉬어야 한다. 세 번째, 아이가 학교에 안 갔기 때문에 집에서 점심을 챙겨주어야 한다. (숨겨진 네 번째, 지난 시간에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가기 싫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조금 더 쉬었더니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갈까? 말까?’를 머릿속에서 계속 빙빙 돌리다가 후다닥 아이의 아침과 점심을 만들어두고, 가방을 싸서 나왔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결석의 모든 이유들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던 것.
막상 집에서 나와 수업에 가니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자료들도 딱 내게 필요했던 것들이었고, 다른 수강생들도 결석 없이 열의에 가득했고, 지난 두 번의 수업에서 서로 맞은편에 앉아 계속 눈을 마주쳤던 분과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만나 강의실로 이동하며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핸드아웃의 내용을 숙지하는 것만으로 조각상의 눈, 코, 입을 아주 그럴듯하게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의 그림도 그려냈고!
아이는 혼자 점심을 잘 챙겨 먹고 잘 쉬고 있고, 수업을 잘 마친 나는 수업 후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간단한 빵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날씨가 좋으니 눈누난나 신이 났다. 가지 않으려던 수업에 잘 다녀오니 마이너스였던 것이 플러스로 전환되는 기분이랄까. 사실 오늘같이 특별히 피곤한 날이 아니더라도 수업이 있는 날은 어쨌든 귀찮음을 무릅쓰고 꾸역꾸역 길을 나서는데, 사실 항상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 뭐라도 그려냈다!‘라는 성취에 발걸음이 가볍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항상 생각하면서도 매번 까먹는 그것, 갈까 말까 할 때는 그냥 가자!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