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것’이 맞나요?

두 번째 수업

by 아오리


잘 아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익숙할수록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숙련된 행동이 뒤따르게 되니까. 관찰을 많이 해서 보지 않고도 대상이 떠오르는 것은 좋은 그림을 위한 가장 기본이 되기도 한다. …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일찍 가면 이렇게 한가한 Gallery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어 좋은데… (일찍 가는게 쉽지 않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얼굴 골격, 안면 근육의 분포 등이 인쇄된 자료를 나눠주셨다. 물론, 나눠주기만 하고 ‘이 근육은 이렇고 광대가 이러니 요렇게 그려야 해’라는 식의 기대했던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취미수업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국 스타일이 대체로 이론이나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는 항상 ‘일단 해봐라’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Gallery로 내려갔다. 겨우 구구단까지 배웠는데 바로 이차함수 문제를 받은 기분이랄까… 일단, 받은 문제는 풀어내야 하니 오늘 나의 희생양이 될 masterpiece를 골라야 했다. 정말 여신같이 단아하고 우아한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미인이 그렇듯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조화를 가진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저 정직하게 내 스케치북으로만 옮긴다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정면은 너무 쉽게 그려질 것 같아서 살짝 옆얼굴이 보이는 쪽으로 의자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십여분이나 지났을까, 오늘도 큰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요단강보다 멀게 느껴지는 이론과 실습의 격차


이제껏 사람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지낸 날이 과연 있을까? 종일 혼자 있는 날이라고 해도 화장실을 오가며 거울 앞을 지났을 것이다. 하물며 거울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속 인스타, 유튜브에서도 사람 얼굴을 보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매일 보는 얼굴인데 막상 그리려고 하니 정말 이것보다 더 어려운 피사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큰 규칙성 안에서 너무 다양한 변주가 많다고 해야 하나? 이상적인 얼굴에 대한 비율, 기본 모양은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따르는 얼굴은 없다. 얼굴의 기울어진 각도, 방향, 얼굴의 비율에 맞춰서 이목구비의 위치를 잡는 것도 만만찮은 일인데 여기에 모든 피조물에 잔뜩 개성을 부여해 주신 신의 뜻을 따라 섬세하게 눈, 코, 입을 그려나가야 한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왜 이리 안 옮겨지니…’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보며 한참을 낑낑거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인물화가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눈에 너무 익숙하고 잘 아는 피사체이기 때문에 조금만 어긋나도 그 어색함이 눈에 잘 보이는 것이라고. 이런 아이러니라니!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 어려운 거라고? 이미 잘 아는 것인데, 뭘 더 해야 하는 거지?


과연 그려낼 수 있을까, 계속되는 의심과 불확실성의 순간들


‘잘 안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다. 사람 얼굴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바로 나의 ‘눈’이었다. 지금까지 인물화를 잘 그려보고자 시간을 내어 연습해 본 적은 있었던가? 눈이 열심히 얼굴들을 바라보는 동안 내 손은 그저 쉬고 있었다. 나의 눈이 아는 것만큼 나의 손은 얼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형태가 이해가 되면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내가 기본적인 연습이 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선생님께 근육과 뼈가 맞물려 어떻게 움직이는지 충분히 설명을 들었더라도 직접 눈으로 관찰하고, 손으로 선을 그려보고 지우고 다시 그리며 ‘눈‘과 ‘손’이 사람의 얼굴을 함께 그려내는 과정을 수없이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Drawing Faces’라는 책을 한 권 샀다. 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봐야지. 이제 겨우 두 번째 수업을 마쳤을 뿐… 출구가 아직도 저 멀리 있구나.

크리틱 마치고 봄이 오는 길을 따라… 그나저나 책을 샀으니 펴보긴 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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