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벌써 Museum of Fine Arts Boston(이하 MFA)에서의 여섯 번째 수업이다. 2022년 여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딸아이를 MFA 여름캠프에 보내놓고 프로그램 목록을 찬찬히 훑어보던 중, 우연히 아이의 수업 시간과 같은 시간에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을 발견했다.
‘아, 맞다. 나도 미술 좋아했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오래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걸 신청해? 말아? 아직 영어로 미술수업을 들을 자신은 없는데…’ 이제 막 미국에 온 지 4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비루한 영어 실력은 물론, 아직 많은 것들이 낯설었다. 오랜 고민 끝에 ‘밑져야 본전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등록했다. 4일간 하루 4시간 동안 나는 아주 오랜만에 오롯이 집중하며 Gallery에서 그림을 그렸다. 눈으로 조각들의 형태를 읽고 이해한 후, 실로 오랜만에 도화지를 채워나갔다. 오래전 소묘를 처음 배웠던 때의 감각과 기억이 천천히 살아났다. 그리고 그 수업을 시작으로 MFA의 성실한 학생이 되어 버렸다.
2년 반 동안 Drawing in the Galleries, Drawing Foundation, City Painting with Watercolors, Pen and Ink 등의 수업을 들었다. 여러 수업을 들어보니 Painting 수업보다 한 가지 재료로 풍부하게 사물을 그려내는 Charcoal Drawing이나 Ink Drawing 수업들이 더 재미있었다. 이번 학기에 어떤 수업을 들을까 고민하는데 지난번부터 고민했던 Portrait 수업에 자꾸 눈이 갔다. 그동안 다른 수업들을 통해 Gallery에 있는 많은 조각상들을 그렸다. 매번 미끈한 조각상들을 약간 더 살집 있는 통통이들로 그려내긴 했지만, 전체적인 형태들을 이해하고 스케치북으로 옮겨오는 것은 그래도 어찌어찌할만했다.
그런데 마지막 화룡점정, 얼굴을 그려내는 것은 정말 까다로웠다. 선의 두께, 각도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인상이 달라 보이고, 표정도 달라졌다. 이건 단순히 비율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이 있는 것은 모두 똑같은데 어찌 이렇게 모두 생김이 다를 수 있는지!! 덕분에 청년의 앳된 얼굴을 완숙한 아저씨로, 귀여운 아기 얼굴을 호러물로 옮겨오기도 했었다. 얼굴을 그리는 일이 이렇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Portrait 수업을 피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모르는 척하려니 너무나 뒤통수가 찝찝한 것… 도대체 선을 어떻게 써야, 특징을 어떻게 잡아 내어야 ‘그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며칠을 두고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심연의 이끌림을 믿고 등록을 해버렸다. 항상 ‘미래의 나’는 생각보다 잘 내가 벌린 일들을 마무리해 주었으니까.
Boston에서의 마지막 일 년을 맞이하며, 이번 수업을 글로 옮기고 나누고 싶어졌다. 내 글을 읽고 그림 그리는 것에 누구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해외생활을 하며 이런 미술관 수업도 들을 수 있구나 생각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진다면, 나의 이야기에 그저 공감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