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첫 번째 수업

by 아오리

오죽하면 이런 노래 가사가 있을까? 새 학기 첫날은 누구에게나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하루일 것이다. 개강일을 앞두고 어제부터 자기소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이것도 또 주변 분위기를 맞춰 비스름하게 하려니 완벽하게 달달 외워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봄학기 수업이 마지막이었으니, 꽤나 오랜만에 시작하는 MFA 수업이라 더 긴장이 되었고 걱정스러웠다. 작년 여름방학 때 Gallery에서 딸아이와 그림을 그린 이후에는 딱히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첫 수업 가는 길


드디어 수업 첫날, 왈랑거리는 마음을 안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바로 이때, 어리바리 아무 생각 없이 교실에 들어가 보이는 자리에 대충 앉으면 안 된다. 한 학기 동안 즐거울(!!!) MFA 수업을 위해 필요한 전략은 바로, ”어디에 앉을 것인가? “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서로가 눈에 익다 보면 서로 말 한마디쯤은 어렵지 않게 섞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첫날은 피차 낯설기에 어쨌든 옆친구랑 제일 먼저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만국 공통이다. 그래서 적당한 자리를 잘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자리‘라 함은, ’ 다정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고 계신 할머니 옆자리’이다. 보통 수업의 연령대는 다소 높은 편인 것 같은데 간혹 대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있다. 이 친구들과 내가 어르신들보다 더 가까운 세대인 것 같다는 나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접근했다가는, 랩을 하는 건지 말을 하는 건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말하는 이들의 영어를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개떡 같은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실 여유가 있으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을 짝꿍으로 맞이하기를 선호하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양 옆에 앉으신 분들이 친근하게 눈인사도 해주시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가졌다. 일단, 첫 단추는 성공!


at ‘Art of Ancient Greece and Rome’ Gallery


선생님의 수업소개, 수강생들의 자기소개가 다 끝나고 Gallery로 내려가서 Sculpture Drawing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얼굴의 비율에 대해 배웠고 그걸 각자 그려보는 시간인 건데 나는 사실 이전 수업에서 접했던 내용이었다. 그래도 이론과 실제는 항상 다른 법, 종이에 인쇄된 얼굴 비율의 정답을 실제 조각상에 적용시켜 스케치북에 2D로 다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Portrait 수업을 제대로 듣는 것 아니겠는가!!!!)


Veiled head of Drusus the Elder _Reman, early imperial period, about 19 BCE Marble


오랜만에 그리는 그림이라 그런가, 마음만 급하고 영 감을 잡기 어려웠다. 천천히 기본 형태를 잡고, 공간의 비율을 나누고 비율에 맞게 이목구비를 배치한 다음, 내가 그리는 조각상에 맞춰 이목구비 모양과 크기, 얼굴형을 수정해 나갔다. 매번 피사체를 그릴 때마다, 처음 30분은 ‘과연 내가 그릴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한 게 맞나?’라는 생각부터 ’아, 접고 다른 걸 그릴까?‘하는 생각을 거쳐 ’아… 이게 아닌데?‘하는 의아함까지, 내 그림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불안함을 수십 번 느끼게 된다. 그래도 한 부분씩 그리고 수정해나가다 보면, 조금씩 내가 그리려고 했던 형태들이 나타나는 것이 보인다. 이번에도 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려진 그림’을 만나게 되었다.


오랫만에 그려낸 첫 그림


‘인체의 비율’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는 그림을 그려내려니, 단순히 집중하는 것보다 더 앞서 챙겨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세우고 그림을 시작하는 것.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이 어렵듯이, 종이에 긋는 첫 번째 선과 뒤이어 그려지는 피사체의 볼륨을 옮긴 도형들을 제대로 그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확히 내가 본 대로 기울어진 선을, 내가 인지한 형태를 닮은 도형을 그리고, 기준이 되어 주는 다른 보조선들을 일단 정성 들여 스케치북에 그려내어야 비로소 그다음부터는 ‘집중’의 영역에만 내 그림을 맡겨도 되는 것이다. 잘못된 가이드라인 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그림을 그린들, 그 그림이 절대 목적물과 같을 수 없다.

뭐든 ’ 처음‘이 가장 어렵다. 오늘 가장 어려운 ‘첫인사‘와 ’제대로 된 첫 라인 그리기‘에서부터 시작된 ‘첫 그림’을 그런대로 잘 마쳤으니 나머지 수업들도 이렇게 하나씩 해나가면 되겠지? 물론, 새로운 주제로 매번 ’첫 수업’ 같겠지만. 뭐, 또 하면 되지. 그럼 다음에는 덜 어렵겠지, 그렇겠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요.


오늘 함께 한 수강생들의 그림들, 모두 나와 비슷한 첫 마음을 가지고 그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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