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유조이 Sep 12. 2023

젊음보다 좋은 나이를 살아갑니다.

삶은 언제나 새로운 현실과의 조율이라는 것을 나이가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저는 6개월 후에 퇴직합니다. 33년 공립유치원교사의 옷을 벗습니다. 따뜻하기도 했고 갑갑하기도 했던 옷입니다. 학교 담장을 벗어나 평일 낮의 세상을 자유로이 누릴 생각에 설렙니다. 젊은 동료 A가 저의 퇴직을 부러워합니다. 자기 앞에 남겨진 일해야 할 세월을 세며 한숨을 쉽니다. "선생님은 아직 젊잖아? 내 퇴직과 자기 젊음을 바꿀래?" 부러워하던 A가 배시시 웃습니다. 저도 따라 웃습니다. A가 그렇듯, 저 역시 젊음과 지금의 나이를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서 얻은 지금의 '나이'인데요. 

수영장에 가면 크고 작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한쪽 어깨에는 물놀이 튜브를, 다른 쪽에는 수건을 걸치고 샤워장을 향하는 젊은 엄마를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하지 않고 뛰어다닙니다. 아이를 주의시키고 얼른 어린 자녀의 손을 잡습니다. (아, 그때는 저도 그런 체력이 있었겠지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그 시간을 지나와서 얼마나 기쁘고 마음이 가벼운지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스스로만 책임지면 됩니다. 혼자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갈아입고 물에 들어갑니다. 누구를 돌보거나 즐겁게 해 줄 필요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수영을 즐깁니다. 30대와 40대를 지나왔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물에 혼자 떠다니는 자유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이가 좋습니다. 주렁주렁 매단 짐가방 같은 의무들로 가득 찬 젊은 날들을 벗어나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자유롭고, 퇴직했다고 일하지 않고 여행만 다니며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불안한 존재입니다. 건강과 돈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나이가 주는 혜택은 있습니다. 불안함에 조바심을 내는 대신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 감사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불안한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을 돌아보며 깊은 만족과 평온을 느끼려고 합니다. 삶은 언제나 새로운 현실과의 조율이라는 것을 나이가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지금, 젊음보다 좋은 나이를 살아갑니다.

이전 02화 쿨한 척하지 않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