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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Sep 18. 2023

식사준비를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자유를 누립니다.

  

 저는 오랜 세월 맞벌이로 살아오면 가사분담에 대한 갈등이 자주 있었습니다. 주말에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은 남편이나 저나 마찬가지였지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TV나 보면서 배달음식 시켜 먹는 주말을 누가 마다하겠어요? 그러나 먹다 남은 반찬이 가득 찬 냉장고, 베란다에 쌓인 택배 박스, 머리카락이 뭉쳐 돌아다니는 방을 두고 편히 쉬기란 쉽지 않습니다. 메이저 리그를 보며 누워있는 남편을 재촉하게 됩니다. 마지못해 일어난 남편이 "뭘 해 줄까?"하고 묻습니다. 저는 '집안일을 해준다',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표현이 싫었습니다. 누구에게 해주고 누구를 도와준다는 말인지요. 당연히 같이해야 할 일을 남의 일 해주듯, 선심 베풀듯 하는 태도에 저항감을 느꼈습니다. 생각의 차이, 가사 노동에 대한 출발점의 차이로 많이 싸웠습니다.     




  그럼에도 식사 준비는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하고 남편에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50대들은 아버지는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고 엄마 혼자 부엌일을 비롯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어린 시절 당연하게 보고 자라 의식에 새겨진 것을 바꾸기란 남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30여 년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며 어떻게 끼니를 때워서 지금까지 왔는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저는 요리에 취미도 자신도 없었습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돌려 막기 하듯 번갈아 가며 식탁에 올렸고 양념 고기를 사 와 양파를 썰어 넣고 간장 조금 보태서 프라이팬에 볶았습니다. 주말에 장을 몰아 보고 퇴근 후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퇴직하면 여유 있게 시장을 돌며 맛있는 찬거리를 사서 특별한 요리도 해 보고 아침 햇살이 은은히 퍼지는 시간에 정갈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가족과 함께 먹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내가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퇴직 후 밥은 각자 알아서 먹자고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는 주말에만 하자고 남편에게 제안했습니다. 남편도 흔쾌히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했습니다.     


  가족이라고 항상 같이 모여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인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은 다릅니다.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먹고 싶은 시간이 각자 다릅니다. 가족을 같은 시간에 불러 모으기 위해 누군가는 가족의 시간에 맞춰서 밥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식탁을 차려야 합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습니다. 당연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차렸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립니다. 지금 그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되었습니다.     




  성인은 각자의 생활을 책임져야 합니다. 엄마니깐 아내니깐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돌아봅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 하는 일이 당연히 엄마나 아내의 몫이 아닙니다. 각자의 몫입니다. 다시 제로로 돌아가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함께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아침은 생략하고 빠른 점심을 먹는 것을 선호합니다. 하루 두 끼면 충분한 사람입니다. 제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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