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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의 점 Sep 12. 2023

클래식 FM을 들으시나요?

[퇴고 프로젝트] 23년 7월 27일의 아침의 글

요즘 집에서는 좋아하고 즐겨 듣는 음악보단, 제목을 추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클래식을 듣는다.

애플 뮤직에서 골라들을 만큼의 조예도, 최소한의 지식도 없는 분야인지라

주로 라디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존재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클래식에 젬병이었다.

피아노를 7년을 넘게 배웠어도 음악 이론은 공부하지 않았다.

이론 공부가 싫다고 떼를 쓰는 나를 선생님은 쉽게 포기하셨다.

체르니, 바이엘 다 모르겠고 싫어서 혼자 재즈 피아노 악보집을 들고 다녔다.

이러한 전적은 고등학교 때 그 여파를 드러냈는데,

클래식 음악을 듣고 제목을 맞춰야 하던 시험의 결과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최악이었으며

헨델이고 바흐고 모차르트고 내겐 다 긴 파마머리 아저씨들일 뿐이었지

그들의 음악이 서로 어떻게 다르고 음악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 클래식 FM을 듣는다면, 그것은 이제 와서 고상해지려는(상식적이어지려는) 의도는 아니다.


내게 클래식이란 음악 장르는 이해해 볼 의지가 딱히 생기지 않는 분야다.

그런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라면, 나는 이에 별다른 이입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는 것 마냥 귀를 열어놓는다.

그럼 선율이 귀에 들어오고, 나는 매우 수동적인 자세로 그 속에서 겉돈다.

모든 것에 의미를 쏟고, 적극적이어질 필요가 없음을 그 순간 배운다.


내게 들어오는 모든 시청각적 자극들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 같았던 과거가 있었다.

문화 예술을 좋아하고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감각에 세밀히 집중하는 습관은 분명 이롭다.

그러나 24/7 집중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 집중과 집중 사이에는 공백이 필요하다.

투명도 20%쯤의, 공백을 채우는 무언가. 그것은 내게 클래식 FM이다.

알 수 없는 작곡가. 들어봤자 기억날 리가 없는 제목. 큰 웃음 없이 잔잔하기만 한 청취자들의 사연.

이 모든 소리들이 참 '미음'같다는 생각을 한다.

별 맛도 향도 없고 딱히 느끼고 싶지 않지만 언젠간 꼭 필요한, 공백을 채우는 무언가.

클래식 FM은 오늘도 참 인간미 없게 평화롭고 고급스럽다.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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