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프로젝트] 23년 4월 11일 오후의 글
문득, 사랑은 형체가 없어서 재밌다고 느낀다.
어느 영화 여주인공의 대사처럼,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아서 도무지 어디 있는지,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몇 마디 말로 쉽게 표현하기엔 무척 공허하게 느껴질 만큼, 사랑은 크다.
없지만 큰 것. 이 인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열심히 사랑을 논한다. 모순을 납득하기 위해 사랑의 궤적에 대한 단서를 찾고, 사랑을 물건에 글에 그림에 담는다. 그래서 세상은 사랑을 닮은 것, 사랑으로 태어난 것, 사랑을 논한 것, 사랑을 묘사한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사랑스러운' 것들에 어느 정도는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스러움'을 어떤 모습으로 그리며 이해할지는 개인의 몫이겠지만.
누군가는 심리학을 들먹이며 사랑을 보는 방법을 알린다. 이 방법엔 분명한 학문적 근거가 있다는 말은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사랑에 불안감을 느끼는 자는 그의 말에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이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과 말투가 비슷해진다면, 발끝이 당신에게 향하고 있다면, 상대가 얼굴과 허벅지에 자주 손을 가져간다면 사랑이란다. 어렴풋한 장면들을 떠올리던 나는 문득 이 모든 것이 처절하게만 느껴졌다.
사랑이 머물던 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킁킁대고 있자면 꽤 대단한 단서를 포착할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불투명할 무언가라면 이 모든 탐사가 무슨 의미인가. 모호함에 재미를 찾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결과의 허탈함은 충분히 각오해야 한다. 불안이 낳은 추측과 이로 파생되는 또 다른 불안은 형벌과 엇비슷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사랑스러움'이란 통상적인 의미의 그것이 아닐 테다. '사랑스러움'은 '알쏭달쏭함'이다. 가끔 그 모호함이 잔인한 결과를 낳기도 하는, 답이 없는 상태.
감각하지 못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우리는 분명 불안하다. 하지만 그 불안이 누군가에겐 행동과 표현의 방아쇠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때 이른 포기를 하게 하고, 나름의 법칙과 매뉴얼을 세우게도 하고. 이렇게나 복잡한 사랑, 그래서 더 재밌다고들 한다면 이해를 못 하겠지도 않다. 각자의 사랑을 머금고 사는 사람들과, 가끔은 그들 주위를 유유히 산책하며 질문을 던지는 나는 세상을 이룬다. '사랑스러운' 세상이다.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