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프로젝트] 23년 9월 11일 아침의 글
퇴고 프로젝트를 통해 느끼는 것이 있다면 :
5년 전의 글, 1년 전의 글은 스스로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 내용이 낯설다. 사실 전날의 글마저도 다음날 다시 들여다보면 새롭다. 그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퇴고를 하는 일은 그래서 무척 재밌다. 다른 사람의 글을 손봐주듯 내 글을 손본다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 짐작하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페이지 하나를 골라 스캔을 떠놓는다. 스캔 이미지를 대강 잘라놓고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다. 이 과정에서 나는 과거의 글에 담긴 당시의 감정을 캐내어본다. 고치고 싶은 부분도, 강조하거나 더 풀어낼 지점도 확인해 둔다. 다 받아 적은 뒤에는 첫 문장으로 돌아가 문장을 하나씩 손본다. 글쓰기 선배로서 비문을 수정한다거나, 쉼표를 추가하거나 제거하는 작업 등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당시의 이상은에게 몰입하면서 투박한 글에 살을 찌우고 그 모양새를 다듬는다. 와중 신기한 것은, 손보고 싶은 지점이 많은 만큼 '이대로도 좋은' 단어 조합이나 문장도 꽤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맨 윗줄에서 맨 끝줄까지, 마치 조각상을 파내는 사람마냥 하나 둘 문장을 검토하고 완성시켜 내면 그 결과물은 이전보다 수려한 모습으로 쏟아진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 적힌 글이란 점에 꽤 감동받는다.
써둔 글이 많은 것은 그만큼 펴낼 글, 즉 총알과 쌀로 주머니와 곳간이 두둑한 것과 같다. 그래서 퇴고를 하고 있는 요즘은 마음이 넉넉하다. 글은 언제든 고치고 다듬고 다시 쓸 수 있다는 사실과 그 과정 속의 재미를 알게 되고 나서는 노트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아 졌고, 그래서 나는 글이 더 좋아졌다. 재채기하듯 글을 써내던 과거의 나 그리고 글이라면 언제든 얼마든 행복하게 써낼 수 있는 현재의 나 덕분에 단장해 드릴 문장의 대기줄이 꽤 길다. 행복한 일이다.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