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은의 점 Sep 25. 2023

가설 검증을 거쳐 촘촘히 직조하는 나만의 자유

[아침 글쓰기] 23년 8월 23일 아침의 글

(8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는 인월 지리산 자락의 작은 오두막에서 일하고 먹고 잤다.)


바빠질 일상을 앞두고 지리산 풀벌레 소리를 듣는 마지막 시간. 세 번의 밤을 지낸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나는 문득 '정처 없는 삶을 원한다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무거운 것들이 많이 쌓여있어 훌쩍 행동에 옮길 수는 없지만. 굳어진 일상이 다시금 지루해졌다. 난 언제나 이래왔다. 싫증이 쉽게 나고, 환경을 뒤엎어버리는 성격. 하지만 그 과정을 제법 치밀하게 생각하는 사람.


결국 현재에 집중해야 모든 게 편해진단다. 현재라.


내 능력과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있다. 그 니즈가 공적인 영역이든, 사적인 영역이든 날 행복하게 한다. 내가 공들여 갖춰둔 편안함도 그 도시 어느 한 구석에 있다. 운동을 못하면 뻐근한 사람이라 운동 시설이 많고 다양한 서울이 좋다. 언제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흥밋거리가 많은 도시.


그러나? 공사 소음이 싫다. 사람 수만큼 쌓이는 쓰레기와 그 악취가 싫다. 낯선 살갗과 원하지 않더라도 밀착해야 하는 비좁은 공간이 싫다. 내 집 외에 안정감, 소속감을 느끼는 곳은 없다. 번지르르한 회사 이름이나 멋진 사옥이나 어깨가 으쓱해지는 소속감은 도시에서 얻어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탐나지 않는다. 당장은 일한 만큼 돈이 벌리고 돌아다니는 만큼 알아봐 주는 프리랜서의 삶이 만족스럽다. 엄청난 자유다.


지리산에서 지낸 3박 4일 동안, 나는 도시의 좋은 점이 그립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의 미운 점이 모두 해결되는 시골에서 굉장한 편안함을 느꼈다. 또, 나는 굳이 어딘가에 발 묶여 지내지 않고도 꽤 잘 살아내는 인간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난 삶 속 작은 혁신을 꿈꿔본다.


Q. 일주일 중 3일을 시골, 4일을 도시에서 지내는 삶은? 서울에 고정된 거처를 구하지 않는다면? 짊어지고 사는 것이 캐리어 하나,  차 한 대뿐이라면? 현재의 편안함, 도시에 갖추어둔 모든 시스템과 틀을 벗어난다면? 규칙이 없는 삶을 살아본다면? 최대로 자유로워진다면? 그런 내 모습은 어떨까?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A.1. 나를 공적인 이유로 찾는 사람들은 '올해까지' 서울에 있다. 그리고 내년에도 있을 거란 보장은 아무도 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은 조금 답답할지라도 훌쩍 떠나지 않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다. 대신 답답하면 다시 지리산에 오자. 너무 급하고 절박하다면 11월 즈음 떠나자.

A.2. 무한한 자유가 불안한 사람도 있다. 나는 시스템과 규칙이 필요한 사람이다. 틀이 답답해서 뚫고 나올지라도, 나는 잠깐 숨을 고르다 더 촘촘한 틀을 엮어 그 안에 기꺼이 들어간다. 어떠한 시각에서는 강박으로 불릴지라도, 나는 통제된, 정돈된 삶 속에서 가장 자유롭고 편안하다.


방금 위 질문에 답을 해보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롭단 생각을 한다. 싫증에서 비롯된 개선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그 순환이 거듭될 때마다 나는 성장했다. 하지만 과정에선 분명한 아픔과 불안도 있었다. 혁신에는 자주 실패가 따른다. 그리고 세심한 고찰은 실패를 줄인다.


어쨌거나 가장 귀중하게 남을 사실은,

나는 한적한 지리산에서 완전한 이완을 경험했다는 것. 떠날 준비만 되었다면 걱정과 두려움 없이 떠나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

나만의 자유를 알고 그를 만끽하는 방법을 깨달아가는 이 시간 속에서 난 더 건강하게 성장하리란 사실이다.



(원본)


이전 06화 우리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퇴고할 수 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