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프로젝트] 23년 10월 3일 아침의 글
요즘은 초면인 사람들보다, 오랜 기간 만나온 누군가로부터 나이 질문을 받는다. 대뜸 나이를 묻는 게 꽤 조심스러운 사회가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주로 손윗사람들과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나는 처음부터 어린애였지만, 5년이 흐른 지금도 어린애다. 만나면 언제나 그래왔듯 연신 깔깔댄다. 근데 잠시 이성이 그들의 머리에 침투한 순간이 찾아오면 '더 이상 이 어린애가 마냥 어리지만은 않구나'하는 생각을 하나보다. 내 입에서 숫자가 뱉어짐과 동시에 '(탄식)와..' 혹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우'하는 소리가 나온다.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시기에 있을 때, 주변의 오래 알고 지낸 아이들이 이제 아이가 아니게 되었다면 우리는 세월의 흐름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그 모습은 대부분 이렇다.
아가가 벌써 이렇게나 컸다니..
엇.. 혹시 그럼 나는? 잠깐, 내 나이가 몇이더라?
내가 벌써.. 00살?
아직 젊어서 좋겠다.
내 젊음은 사라졌는데!
어쩌면 짱구, 도라에몽과 진구, 루피가 주름살을 얻지 않는 이유도, 언제나 귀엽고 천진난만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그들과 친하게 지내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굳이 깨닫고 싶지는 않으니까.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은 불쑥 나타나 가슴을 후벼 파곤 해서,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다. 그걸 나도 모르지 않으니, 내 나이를 알아내고서 여러 복잡한 생각과 마음이 떠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입을 닫거나 '하하'하고 웃는다.
20대의 중반이나 끝, 그 사이 애매한 자리에 걸터앉아 있다. 제법 드러나는 내 어른스러움에 생경함과 뿌듯함을 느끼는 날이 잦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은 미숙할 거라 여겨지는, 그래서 말에 신뢰감이나 힘이 얹어지려면 쥐어짜는 노력이 필요한 지금의 나이에 진절머리가 날 때도 많다.
나이라는 것, 시절이라는 것은 묘하다. 자글자글한 주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어, 아직 숨 쉬고 걷고 말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축제를 열게 된다면 늙은 걸까? 노약자석을 양보받는 게 아직 그리 반갑지 않다면 젊은 걸까? 내 학번을 듣고 학과 후배들이 슬슬 날 피하고 놀아주지 않는다면 늙은 걸까? 젊고 늙음의 기준은 명확한가? 이렇게나 상대적일 것이라면, 스스로가 젊다고 믿는 삶이 곱절 행복할 테다. 모든 이들은 '좋은 때'를 살거나 '뭐든 해낼 수 있을 시절'에 놓인다. 이 아름다운 삶의 측면에 상식과 현실성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이다.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다 한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게 된다면? 이 또한 본인의 선택이지만, 딱히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직 인생의 쓴 맛을 몰라 이런 말을 쓰고 있다면 그냥 쓴 맛 평생 모른 채 살고 싶다. 평생을 차오르는 늙음보다는 남아있는 젊음에 집중하며 살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고 자유로운 미래를 꿈꿔본다. 제도적 차원, 체력적 한계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못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나는 새로운 무언가에 언제든 막힘없이 도전하고 싶다. 아쉬울 일은 없는 청년기의 중후반대를,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이길 바란다.
새파랗게 젊어서 패기롭지만, 마냥 어리지는 않아 심지가 단단한 지금의 나이를 긍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