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프로젝트] 23년 9월 15일 아침의 글
오늘의 아침은 미세하게 구워 겉만 바삭한 식빵에 무화과 크림치즈, 그 위엔 세일하던 마늘햄 슬라이스. 옆엔 아이스 드립 커피가 있다. 달달한 약배전 원두로 내렸다. 묘한 맛을 이루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다.
세상은 아침을 먹는 사람과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부동의 후자였던 내가 요즘은 매일 아침을 챙긴다. 보통은 먹어도 그릭요거트에 냉동과일 정도로 간단히 끝냈으나, 아침을 먹는 사람이 집에 잠시 머물면서 아침 먹거리가 늘어났다. 재료가 있는데 굳이 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침밥을 차리며 드는 재미는, 그리 많지 않은 카테고리와 옵션 중 하나씩을 골라 조합해 가며 매일 슬쩍씩 새로운 맛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필수) 보컬 : 크림치즈 / 과일크림치즈 / 과일잼 / 땅콩잼 / 치즈 등
(필수) 일렉 기타 : 드립 커피 / 캡슐 커피 + 물과 얼음 / 캡슐 커피 + 우유와 얼음 / 과일 주스 등
(필수) 드럼 : 부드러운 식빵 / 바삭한 식빵 / 베이글 / (아주 가끔) 쌀밥 등
(선택) 베이스 : 슬라이스 햄 / 계란 프라이 / 비엔나 소세지 / 스크램블 에그 / 오믈렛 등
(선택) 코러스 : 과일 / 그릭 요거트 + 잼 / 그릭 요거트 + 과일 등
만들어질 결과물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랜덤으로 멤버들을 영입한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적당히 둥글고 넓은 접시 위에 하나씩 얹어진다. 욕심을 부려 차린 아침상에 식탁이 과하게 화려한 날도 있지만, 그런 날이라면 그런 날인대로 멋진 식사를 한다. 확실한 것은, 각각의 카테고리는 확실한 본인들만의 역할이 있으며, 웬만해서 옵션은 중복 선택을 하지 않아야 적당히 차분한 아침을 보낼 수 있다. 가끔은 일탈도 서슴지 않는데, 예를 들면 크림치즈나 잼 대신 옆에 있던 그릭 요거트를 푸욱 떠서 식빵 위에 발라보는 것이다. 그 위에 계란이나 소세지를 얹어서 한 입 베어 물면 그 맛은 또 다르다. 그러면 위대한 발견을 한 것 마냥 아침 시간이 더 웅장해진다. 아침 식사는 어쩌면 하루를 즐겁게 열기 위해 인류가 고안해 낸 방법일지도!
어쨌거나 식사 챙기는 것을 자주 미루는 나에게 눈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음식을 차려 먹는 일은 꽤나 이롭다. 과정도 결과도 무척 산뜻하다. 아침을 먹는 사람이 되리라곤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 사람 일은 참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된 거 언젠가는 최고의 아침메뉴를 발견하리라 다짐해 보며, 오늘 아침도 나는 빈 접시를 치운다.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