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 (2)

by 정설모


결혼을 앞두고, 독일 관청의 전산상에 나의 결혼 상태가 이미 ‘기혼’으로 되어있어 결혼신고를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후 며칠동안, 베를린 전역의 민원업무 예약이 가능한 구청들을 나의 미혼상태를 입증하는 ‘혼인관계증명서류’를 들고 찾아다니며, 꿋꿋하게 모릅니다, 안됩니다, 기다리세요 3종세트를 무한반복하는 공무원들을 만나, 내가 미혼임을 입증하려는 웃기고 지난한 과정동안 나는, 카프카의 소설 ‘심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당시 약혼자)과 함께 마지막 관청에서 해결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대충 앞선글과 같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로 남편에게 성토했다.

사람의 정신을 조직적으로 황폐화시키는, 관료주의의 클리셰 아니냐며. 그리고 이 지루한 이야기는 온갖 장르의 뻔한 클리셰 외에는 설명을 풀어갈 길이 없다고.


독일 관료주의가 악명높긴 하지만 세상 어디를 가든, 공공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영혼 이 서서히 잠식되어가던 흔하디 흔한 경험은 누구든 갖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당시 내 심리상태의 이면에는, 관료주의에 대한 성토뿐 아니라 외국인으로서의 무능함 내지는 독일공무원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태도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고, 그래서 더욱 혼자 해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뭏튼 그간의 나의 고통을 체감하지 못한 남편은 이 모든 상황을 오히려 재미있어 했다. (사실 나도 몰랐던 나의‘기혼’사실도 편지가 아니라, 담당공무원의 전화를 받은 남편이 집에서 계단을 뛰어 올라오며 웃겨죽겠다는 목소리로 ‘시청공무원이 당신이 이미 기혼이래’ 이러면서 알려줬다.)

그는 한술 더 떠 그 김요한이라는 사람이 실제하고 사실은 범죄조직의 일원이 아닐까, 하길래 나는 여기에 받아서,

실은 그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북한 정보원이며, 알고보니 나의 배다른 오빠였고, 미래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아빠를 만나 현재의 비극을 막으려 하는데, 알고 보니 그 과거는 다른 유니버스의 과거고 아버지가(거기서는 대충 유전학자 정도가 좋겠다.) 미래김요한의 엄마를 못만나게 하려는 타이밍이 어긋나 그녀가 사고로 사망하게 되는데, 아버지는 그녀를 살리려다 좀비로 부활시켜서 그 세계의 또다른 비극이 시작되고.. 이런 막장스토리를 전개했다.



이러는 사이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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