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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Jan 04. 2024

이벤트적인 삶을 소망한다



어릴 때부터 이벤트라는 개념이 없는 분위기로 자랐다.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해가 되어도  부모님에게서는 좀처럼 흥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부모님은 전 세계가 기념하는 모든 날들에 대해서도 무감각했다. 새해맞이에 의미를 갖거나 일출을 보러 가족이 함께 나서본 적은 없다. 모두가 특별하다고 말하는 모든 날들마다 조금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족의 생일은 찰밥과 미역국과 조기구이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생일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엄마지만 어쩌면 가장 부담스러운 날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현실이다. 좋은 일을 기뻐하고 감탄하며 즐기는 일에는 우리 모두 서툴렀다. 그것은 부모님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고 우리에게 없는 언어와도 같았다.



친구들 앞에서 "내 생일이야~ "하고 떳떳하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딱 한번 부반장을 하던 6학년 생일이던 5월에 반친구 12명 정도를 초대해 우리 집이 가득 찼던 적이 있다. 엄마가 생일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엄마에게도 자식들 생일 파티에 대한 간절한 로망이 없었던 것이 아닌걸 그때 알았다. 나보다 더 들뜬 엄마와 작은 걱정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학부모가 되고서 딸아이 반친구들의 뷔페 생파를 꾸준히 가고 치렀던 마음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생파는 물론 감사하고 좋았지만 시간을 지나며 폭죽가루들이 내려앉았다. 내가 좋은 것보다는 부모님을 더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것은 얼마간의 부담을 내 마음에 안겼다. 그래서 생일파티가 없는 것이 오히려 좋은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거창한 생일 선물 같은 건 없어도 되는데 진심으로 축한다는 말은 많이 듣고 싶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의 감동이 엄마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추억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엄마에겐 남매의 출산기가 모두 큰 아픔이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날 때, 그 당시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괜한 미안한 마음은 순수한 기쁨을 방해한다. 사랑할수록 미안하겠지만 어쩌면 사랑할수록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또 아프기 때문이다.



생일파티의 왁자한 분위기를 커가면서 드라마나 영화로 알아갔다. 그런 것들은 가짜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어느 날 보았더니 나 역시 모든 기념일을 등한시하는 어른이 되어 있다. 세계가 각종 축제를 즐기는 모습도 언제나 남의 일이었다. 어린 마음은 그 후로도 쭈욱 의구심으로 가득했고 축제의 희열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나는 점점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 같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미친 사람들 같아 보인다. 



 맛집을 찾아 전국을 다니시는 분들이 내게 얼마나 새롭게 비치는지 모를 것이다. '그 짬뽕이 그 짬뽕일 텐데, 왜 그렇게 찾아다니는가?' , ' 어떻게 그것을 찾아다닐 수가 있는가? 울타리 안에서 같은 풀만으로도 만족하며 지내는 내게 그들의 여행은 미지의 세계이다.  온갖 기념일을 많은 이유로 자축하고 화려하게 서로를 축하하는 사람들 역시 내게 미지의 세계. 화려한 장식과 드라마틱한 연출이 돋보이는 SNS 속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라면 내 창의력이나 열의는 제로에 가까웠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일과 감정은 서툴기만 했다.


남편도 9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어서 이렇다 할 생일에 대한 추억이 없다. 나라도 이벤트적인 사람이었다면 내가 만들어줬을 텐데 피장파장이었다. 생일 축하한다고 돈은 오고 갔지만 다른 감동의 포인트는 잘 만들지 못했다. 돌아보니 그런 것들이 매우 아쉽고 딸을 생각하니 그러지 말아야겠다 싶다.



이벤트를 상상해보지 않는 인생은 그만큼 삶에도 무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벤트는 모방이 아니라 창의력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멋진 맛을 그려보지 않고서 멋진 요리를 만들기 어렵고, 소원하지 않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듯이 기쁜 마음이 없이는 기쁜 날을 기획하기가 어렵다. 내게 없던 언어를 책에서 만나고 찾았듯이 이벤트적인 삶도 이제는 소망해 본다.




내 머릿속에서 양들은 울타리 안에 있거나 밖에 있더라도 언제나 울타리 근처에 있었다. 오래도록 같은 모습이었는데 올해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울타리 안의 양이 늘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양이 왜 울타리 안에서만 안주한다고 생각했을까? 양은 양치기를 따라 광활한 지대를 옮겨 다니는 유목생활을 했다는 것을 잊었다.  내가 책을 통해 여기저기를 오갈 수 있는 것을 즐기는 이유를 이제야 알듯하다. 그래 양띠인 나의 천성은 변화무쌍한 초원지대를 끝없이 여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변화를 그려보던 그즈음에 삶에도 이벤트를 마련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책 읽으며 보낸 날들 덕분에 이달의 블로거도 어보고, 네이버에서 선물 키트도 오고, 인플루언서도 되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시는 책이 있다는 것은 매번 황홀하다. 그런 일은 어떤 날들보다 이벤트적이었다.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내겐  이벤트다.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세리모니가 있다. 드라마틱한 장면이 아니라도 각자에게 큰 의미가 있는 세리머니...


마음속엔 뭔가가 있는데, 표현하기가 힘든 답답함을 어쩌 못했다. 나는 지금 뻔한 것이 싫다며 뻔한 것조차 표현하지 않고 지낸 시간들을 반추하고 다.  내가 할 수 있는 세리머니를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른 얼굴.

나는 양인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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