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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Dec 28. 2023

엄마와의 통화를 녹음한다


나를 사소하게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친정 엄마와의 전화통화였.

엄마가 전화를 끊지를 않아. 아주 미치겠어 .
어제 통화로 했던 얘기를 오늘 다시 시작해서 똑같이 하시는데 아주 환장하겠더라니까.
별 얘기도 아니야. 집에 있던 쌀로 떡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 둔다는 얘기인데, 한 달 전에 떡 했던 얘기부터 작년 재작년 했던 생일 떡까지 맛있었고 맛없고 고명이 어떻고 저떻고를 하염없이 되풀이하시는데  따따다다 하시니 끊을 타이밍도 없고, 나는 일하는 중인데 난감하다니까. 안부를 묻는 간단한 통화를 좀 하고 싶어도 무서워서 전화 못할 지경이야. 블루투스 이어폰도 손이라도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 샀다니까.

듣고 싶은 속 얘기는 잘 안 하시는 분이 사소한 일상은 찰나 찰나 다 엮어 내어 말로 푸시니 하루하루 쪼개 살고 싶은 바쁜 자식이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나이 들어 고향 친구라도 옆에 없었다면 울 엄마 벌써 알츠하이머 걱정도 했겠지만 다행히 주변에 속 터놓고 말하는 역사적인 친구분들이 계시니 참 다행한 일다. 엄마가 풀어주는 옛날이야기들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곁에 계시고 가끔 밖에 나가 식사라도 하시니 떨어져 있는 자식 입장에서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들어주는 이가 있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다는 것이 노년에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맘껏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부모님과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가끔 친정에 가서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아 있는 엄마의 눈빛을 보곤 한다. 이 시간이 엄마를 계속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엄마와의 통화를 가벼이 할 수가 없다.


사실 일찍 집에서 독립하는 것이 소망이었고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이자 돈 벌고 싶은 이유였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도 싫었고 빠듯한 현실에만 급급하게 살아가는 우리 집이 늘 답답다.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저 깊은 곳에서는  늘 집으로부터 조금 멀리 있기를  원했던 것 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 내 감정이 뭐였는지 부모님 입장과 상황은 어땠는지 재생시킨 지 좀 되었다. 묵은 감정을 꺼내 되새김질하며 이제야 소화시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면 또 묵직한 것이 여전히 올라오기도 한다. 사랑과 원망. 사랑하는 사람인데 원망하게 되고, 원망하지만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야 죄책감을 덜어내고 관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내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싫었던 적도 있다. 한 집에 계시는 두 분이 떨어져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서로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도 있었다. 옛 일들을 모조리 기억하시며 탓을 하시는 엄마와 아무것도 모른다 하시는 아빠는 언어를 달리 쓰는 외국인 사이 같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힘든 것은 언제나 엄마였다. 마음 고생하시는 게 늘 죄송하지만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았다. 딸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잠시 내 방패로 삼았다. 엄마의 남편복, 자식복이 이것 밖이거니 하며 엄마를 챙기지 않은 딸의 죄책감으로 30대를 맞이했고  그 죄책감 또한 나를 묶어두는 족쇄였다.


부모님의 생활패턴이나 사고방식은 변함없이 어린 시절 그대이다. 그래서 한 번씩 친정 갈 때마다 울화가 치밀 때도 있.  여전한 두 분의 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절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아주 없진 않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은 거두고 나 자신에게 쏘는 화살도 거두었다.

40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스스로의 족쇄를 풀 수 있게 된 듯하다. 내가 밀어둔 숙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생기자 같은 상황도 해석이 달라졌고 태도도 달라졌다.


엄마와의 통화 주제를 조율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추억하고 싶은  옛날이야기를 물어 드리면 역시나 책 한 권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통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엄마의 모든 말들을 이야기로 담고 싶어 한다. 박완서 님의 <엄마의 말뚝>을 읽으며 우리가 살던 옛 집이 생각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게 희미해져 있던 시절과 장소와 이야기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6.25 이후의 엄마의 어린 시절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우리 엄마 알츠하이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어서 하늘이 주신 엄마의 재능에 재차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고 말로 전할 수 있는 엄마가 달리 보인다. 엄마가 내가 살았던 시대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MZ세대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젊게 사는 방법을 진즉에 함께 고민했어야 했는데 무지했다.



내가 나이 든 만큼 나이가 드신 부모님을 보자니 자식이 철나는 시기가 너무 늦었구나 싶지만 두 분이 곁에 계시니 이제라도 너무 다행이다 싶다. 그래도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갚을 기회를 주시는구나 싶어서 원망하던 마음들도 눈 녹듯 사라졌다. 책 덕분이다. 책은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하는 숨겨진 지도다. 미로 찾기 같지만 나가는 문을 찾을 수 있다. 


엄마와의 녹음된 통화 기록을 이어폰으로 들어본다. 40분 파일. 30분, 20분 파일. 한국역사가 들기도 했고 사회의 부조리에 떠밀린 47,48년생 남자 그리고 여자의 이야기가 들었다.

그들이 낳아 기른 76,79년 아들과 딸도 있다.

어떤 책 보다 내게 소중한 오디오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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