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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Jan 07. 2024

나를 써보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나의 욕구 들여다보기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철학책을 수없이 만났었는데 누구를 만나든 맞는 말들만 해 보인다. 그러다 나중에 가서는  모든 답이 희미해진다. 나의 답은 아니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칸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의 질문과 답은 나와 다. 나는 신과 자연과 나의 관계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에 대해 알고 싶었다. 생물학적이고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답이 아니라 진짜 내가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단순한 답이 필요했다. 아주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한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엔 니체의 사상에 끌렸었다. 니체가 왜 현대철학의 시조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다음 철학과 사상가들을 몰라서였던 것 같다. 근대의 시작이었다는 소설 돈키호테의 존재감도 듣기만 했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나를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고 무엇을 보고 읽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숙제를 못해서 아직 끙끙대는 마음이 편해지지가 않더랬다. 그 뒤로 실존주의를 알게 되었고 실존문학을 접했다. 내 책장에 나란히 줄 서 있는 책들의 저자들 이름이 실존주의라는 카테고리를 가지고 줄줄이 엮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이 책들을 향해 손을 뻗은 이유가 있는 거겠지.  책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자극받고 위로받고 뜨거워지는 나를 계속 만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알베르 카뮈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 외할머니에 대한 애증, 가난과 절망, 사회적 부조리 등에 관한 고찰, 시지프 신화를 비롯한 에세이들과 그의 대표적인 소설 이방인, 페스트 등을 지나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해란 무엇인지 표현하긴 힘들지만 알베르 카뮈는 내 마음 깊은 곳을 가장 아프게 했고 동시에 해방과 자유도 주었다. 살면서 많이 되짚어가며 자주 만나고 싶은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나의 욕구를 이해하게 되면서 나를 더 알게 되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 그것은 사랑하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엄마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엄마 옆에만 앉길 원하던 어린 나는 엄마에게 분리불안이 있었구나. 집에 잠깐 놀러 온 막내삼촌이 명절에 고향 내려가기 전에 들른 누나네에서 조카가 이쁘다고 시골로 함께 데려가버린 날이 있다. 어린 나는 갑작스레 엄마와 떨어져 1년단절을 겪었다. 부산에서 전남으로 내가 삼촌을 따라나서긴 했다지만 그게 어떤 일인지 모르던 때였다.


일하느라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누나를 위한 삼촌의 마음으로 나를 외갓집으로 데려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일하고 먹고살기 바빴던 엄마는 나를 다음 해에 찾으러 왔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전혀 없다. 기억을 못 할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4~5살, 다시 엄마를 만났을 때는 엄마라는 말도 엄마 얼굴도 낯설어했다는 말만 들었다. 그날 이후 엄마와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각인을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안전망에 많이 의지했다. 다정하지 않은 아빠 때문에 엄마 뒤로 숨은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이전에 각인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이다. 훗날에 엄마의 껌딱지였던 나를 상기하게 된 것은 내 껌딱지인 딸을 키우면서였다. 낯도 많이 가리고 매사가 조심스러운 예민한 아이였다.




어릴 때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들을 성인이 되어서 찾아 해 본다. 한동안은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마음속 실타래다. 근본적인 갈증이 남아있다. 무엇에 대한 갈증인가? 착한 아이일 때 사랑받는다. 이유가 있는 조건부적인 사랑을 받은 것 같다. 특히 아빠는 아이들의 불완전함이나 순수함 같은 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부모의 사랑이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수용이었으면 했다. 사랑받았으나 사랑은 늘 고팠다. 애착형성이 중요했던 시기에 부모와 떨어져 있던 기간 때문일까? 부모님이 싸우시면 모두 나 때문인 것 같아 눈치를 보았다.



나는 왜 나에게 늘 한계를 두나? 이런 의문만큼 답이 없는 질문이 없다는 걸 알지만 계속 벽이 느껴진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똑똑하지 않아서일까? 하는 자책을 하게 된다. 늘 되는 이유보다 안 되는 이유부터 생각해 보던 나이다. 그런 나와 멀어지고 싶다. 내가 원하지 않는 나와 멀어지는 것으로  나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기에 긍정확언들을 써보며 나를 다독이지만 내면 깊은 곳까지 나를 긍정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여전히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부족함도 사랑하라는 말이 가장 어렵다. 지금은 조금 깨달은 바가 있다. 본래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없다. 다만 그렇다고 생각한 나만 있다는 것을 알겠다고는 하지만 또 나를 끌어내린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가족 탓을 많이 했었다. 사랑한 만큼 미안한 것들이 많다. 또 서로 미안해하는 마음만큼 서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많다. 엄마도 당신보다 자식의 행복이 우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힘들었다. 우린 내내 서로 미안하기만 하고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조금 달라져야 한다. 생각을 뒤집어 이제는 내가 먼저 행복하고 그것을 통해 엄마도 행복해지는 것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엄마의 행복은 엄마의 몫이다.

똑같이 내 행복도 내 몫이다.

아이의 행복도 아이의 몫이다.


행복이 누구의 책임이 아니게 되니까 돌고 도는 풀리지 않는 문제도 없어졌다. 아주 돌고 돌아 이제야 얻은 결론이다. 서로 미안할 일이 아니라 각자 두 발로 서서 열심히 살아갈 일이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과 동시에 모든 것이 무관할 수 있다. 행복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행의 이유도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무관계성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없다. -들뢰즈



마흔이 넘어서야 변화를 그리게 되었다. 지금껏 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왔다면 이제 내가 방향을 정하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으면서 나를 믿고 가고 싶다.


나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행복을 떠올리면 친정 부모님과 시아버님과 함께 가족들이 깔깔 웃는 모습,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마음의 등 없이 여유 있게 사드리고 만족해하는 모습,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감사해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또 혼자 오롯이 앉아 나와 마주하고 싶다. 후회와 질문으로 가득한 회상이 아니라 추억으로 가득한 회상을 하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시간도 여유롭게 쓰며 내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삶을 살고 싶다.



'용기도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만이 힘이 있다.

다른 별을 보고 손뼉 치는 일이

자기가 별처럼 빛나는 일은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자기한테 매우 분명할 때

별처럼 빛날 가능성이 커진다.' -최진석


동물은 진화를 선택했지만 인간은 문화를 선택했고 문화적 인간으로서 진화한단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란다. 그런 인간의 행위가 문화가 된단다. 나는 먹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나의 행위를 통해 나 자신과 주변의 변화를 야기하는 것을 꿈꾸고 싶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이렇게 안 살고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것이 내 안의 진짜 욕망이다. 단지 변화였다.


이제 '다르게'가 무엇인지 또 물어야 한다.  괜찮다. '다르게'도 뭔지 알아가면 된다.




내가 나를 알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표지가 되어준 책들이 있다. 하나씩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by 열쇠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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