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Mar 12. 2021

내 생애 첫 고양이, 또기

서툴고 무지했던 그 시절의 만남

또기는 '또 다른 기쁨'의 줄임말이다. 내가 지어주었다. 또기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가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깨게 되었고, 3-40대의 내 삶을 한층 풍요롭게 했고, 수많은 고양이의 친구가 되게 해주었다.




우리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4년 어느 봄날에 시작되었다. 남편이 아기 고양이가 건물 바깥 화단에 묶여 있는 걸 보고 사무실로 데려왔다. 남편은 그때 지하 1층에 사무실을 열어 일을 하고 있었다.

"애들이 자꾸 만지더라고. 사람 손 타면 어미가 죽인다고도 하던데... 3일 지켜봤는데도 어미가 안 나타난 거 같아서 굶어 죽을까 봐 일단은 데리고 왔지."


아기 고양이가 신기하기도 해서 얼굴 한 번 보려고 해도, 또기는 구석에 숨어 좀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이 없을 때만 나와 물과 먹이를 먹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고양이 몸 상태가 걱정되어 일단 집으로 데려가기로 하고 동물병원에 들렸다. 의사 선생님 말로, 아기 고양이는 두 달쯤 되었고 건강한 편이며 주사 놓는데도 이렇게 얌전한 고양이는 드물다며 아주 순하다고 했다.

"고양이는 초반에 접종을 해야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총 3회 백신 접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린 보호자가 되었고,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또기는 집에 와서도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대체로 책장 구석에 숨어 지내거나 내가 없을 때 집안을 돌아다니는 정도였던 거 같다. 남편 말로는 자기 배 위에서 잠을 잔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는데, 내심 질투가 나긴 했지만 어차피 떠날 아이라는 생각에 무심해지려고 노력했다.


난 그 당시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또기가 건강해지면 다시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일부러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고 밥과 화장실만 마련해주었을 뿐 무신경해지려고 애를 썼다. 고양이의 습성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알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 아픈 행동을 몇 번 하고 말았다.


한 번은 열린 현관문으로 냅다 뛰어가는 걸 보고 얼떨결에 고양이 꼬리를 잡았는데, 그때 나를 보며 하악 거리는 걸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나를 얕잡아보는 줄 알고 무척 화를 냈다.

'야! 이게 어디 나한테!"

놀라고 무서웠던 건 아기 고양이였는데, 그 행동의 의미를 날 무시한다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 한 번은 고양이 버릇을 고치겠다며 매를 든 적도 있다. 내가 그때 살던 집이 주택 1층이었는데 마당에 어떤 고양이 한 마리가 자꾸 창문 아래 앉아 울자, 우리 집 고양이도 매일 창가에 앉아 함께 울어댔던 것이다. 그만 울라고 시끄럽다고 내가 매를 들었다. 고양이가 납작 엎드리기는 했지만 그 서글픈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고양이에 대해 어찌나 무지했던지 또 한 번은 또기가 마당의 새끼 고양이 목덜미를 물고 가는 걸 죽이는 줄 착각한 적도 있다. 지나가던 사람도 "어머, 새끼 고양이를 물어 죽이려나 봐요." 하고 소리를 지르길래 나도 모르게 우리 집 고양이를 혼냈는데, 나중에서야 그 행동이 위험에서 아기 고양이를 구하려는 어미의 행동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난 정말 무지했고, 고양이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아니 동물과 집안에서 함께 지낸다는 걸 잘 상상하지 못할 때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그렇게 평생 함께할 자신이 없었기에 늘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또기 없인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살던 동네가 단독주택가였고, 잔디가 있는 마당 있는 집 1층에 세를 살고 있던 때여서 난 가끔 또기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나가자고 하도 울어대길래 문을 열고 같이 나갔더니 낯선 세상이 무서웠는지 몇 발짝 떼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동네 애들이 와서 신기한 듯 쓰다듬어줄 때면 몸은 거의 굳은 상태가 되었다. 마당에 있는 작은 고양이 때문인지 또기는 아침마다 문 앞에서 울어댔다. 혹시 잃어버릴까 봐, 잘못될까 봐 불안하긴 했지만 아직 6개월도 안 되었기에 멀리는 못 갈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문을 열어주어 혼자 놀게 해두기도 했는데, 집 마당을 벗어나지 않고 노는 거 같아 조금 맘을 놓고 말았다. 고양이가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 그땐 알지 못했던 거다.


하루는 그렇게 현관문을 열어두어 나가게 해 주었는데 조금 있다 마당에 나가보니 또기가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단독주택 단지라 이집저집 마당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그 어디에도 또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도 찾지 못하자 도로 위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요즘 말로 멘붕이 되기 시작했는데 흔들리지 않으려고 계속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또기는 똑똑하니까 잘 피해서 다시 올 거야."

더 찾고싶었지만 난 외출을 해야만 했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간신히 맘을 부여잡고 난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 그때까지 또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편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지만 더 이상은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이게 또기와 마지막이라면...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또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만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더이상 희망은 갖는 건 어려운 일인가 싶을 때, 어디선가 이야옹 이야옹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이야옹, 이야옹~ 맞다 고양이다. 남편과 내가 동시에 또기다! 외쳤다. 소리 나는 쪽을 찾아 가보니, 또기가 안방 창문틀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집안으로 올라오려고 뛰어올랐는데 문이 잠겨 있으니 창문틀에 앞발로 매달려 울고 있었던 거였다. 용케 집을 찾아왔다.

나는 얼른 마당으로 나가 또기를 안았다.

"또기야, 또기야, 또기야..."

가슴에 안고 얼마나 부르짖었던지... 시간은 밤 12시를 조금 넘겼고, 우린 마당에서 달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이제 다시는 또기를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그렇게 내 생애 첫 고양이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