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또또는 아픈 손가락이다
또기를 아주 많이 닮은 듯한 또또는 또기의 환생 같아 붙여준 이름이다. 또또는 또기를 잃은 나와 샛별이를 위해 찾아온 치유의 고양이였다.
또기가 2014년 4월 하루아침에 내 곁을 떠나고 난 뒤, 나는 한동안 깡소주를 마셔댔다. 그러는 사이 샛별이가 스트레스로 머리털이 빠지고 상처가 난 것도 몰랐다. 나만 슬픈 게 아니라 샛별이도 똑같이 아팠는데 그걸 보지 못했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다고 했던가.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겠다던 결심을 깨고 샛별이를 맞이한 후 세 번째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또기를 잃고 난 후, 다시는 죽는 걸 지켜보는 일 따위나, 사랑하는 아이를 잃는다는 슬픔과 두려움 같은 걱정보다는 혼자 남은 샛별이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생겼다.
샛별이는 확실히 달라졌다. 혼자서 쌩쌩거리며 뛰어다니거나 나보다는 또기랑 같이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샛별이는, 또기가 떠난 후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조금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울어대 화장실에서 맘 놓고 볼일조차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샛별, 엄마 여기 있어. 걱정 마."
그렇게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일을 봐야 했고,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옆에 앉아 있거나 심지어 내 무릎에까지 올라왔다. 퇴근 후 1층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면 3층 우리 집에서 샛별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발자국 소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그때부터 울어댔던 것이다. 고양이도 우울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든 함께 있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았다.
나도 한 동안은 또기와 함께 자던 침대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다른 방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워낙 충격이 커서 내 마음 추스르는 것도 어려운 때였다. 집안은 그냥 어둡고 우울했다.
그때 내가 일하던 학교에 졸업생 하나가 찾아왔는데, 자기네 아파트 단지에 새끼 고양이가 있는데 경비실 아저씨가 밥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근데요 얼마 전에 새끼 고양이가 차에 치일 뻔해서 동네 아줌마가 병원에 데려갔거든요. 경비실 아저씨가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건 위험하다면서 누가 데려갈 사람 있으면 데려갔으면 좋겠대요."
내가 혹시 그 고양이를 볼 수 있겠냐고 묻자, 경비실 아저씨한테 말씀드려보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고양이를 보러 가기로 한 날, 퇴근 전에 그 학생이 박스에 고양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경비실 아저씨가 데려가도 된대요."
완전히 결정한 것도 아니고 한번 보겠다는 말이었는데, 고양이는 이미 내게 와 버리고 말았다. 박스 안에 있는 고양이는 갈색 털에 하얀 발을 가진 고양이었다. 보자마자 맘에 쏙 들었다. 마치 또기를 보는 거 같았다. 경비실 아저씨랑 그 학생에게 사례를 하려고 언제 찾아오라고 말해놨는데 그 뒤로 그 학생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난 또또와 살게 되었다.
샛별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한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새로운 아이를 입양할 때 먼저 있던 아이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또기가 워낙 모든 고양이를 보듬어 안은 탓에 큰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를 그냥 다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 무지한 나 때문에 샛별이는 한때 나에게 등을 돌렸었다.
먼저 또또는 샛별이보다 더 에너자이저였다. 캣타워에 매달린 장난감 볼을 치며 노는데, 거짓말 없이 30분을 쉬지 않고 쳐댔다. 지금까지 아기 고양이를 여럿 봐 왔지만 한 가지 장난감을 그토록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자기 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노는 아이는 처음이다. 아, 이런 고양이도 있구나. 싶었다.
무서운 것도 없었다. 샛별이는 처음 왔을 때 그래도 얼마 동안은 또기와 대치 상태를 유지했는데, 또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샛별이를 무조건 쫓아다녔는데, 샛별이가 아무리 하악 거리고 경계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샛별이는 결국 또또가 올라올 수 없는 침대 위에서 거의 대부분을 생활했다.
마치 겁에 질린 샛별이를 놀리기라도 하듯 낮은 의자 난간을 앞발로 매달려선 앞뒤로 흔들며 놀기도 하고, 집안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제 것인 양 갖고 놀고, 하악 거리는 샛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침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이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는데... 그제야 뭔가 내가 섣부른 결정을 했다는 걸 알았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샛별이와 또또가 사이좋아지게 해야 하는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기운 넘치는 또또 때문에 난 그래도 웃을 수 있었지만 샛별이는 아니었다. 놀지도 않고 자꾸 구석진 곳만 찾아들었다. 그리고 점점 나에게 오지 않더니 결국은 옷장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랑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다. 사실 그전까지는 샛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거란 안이한 생각도 했고, 샛별이가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던 거였다.
TV에서 동물과 대화를 한다는 한 여자의 방송을 본 게 기억났다. 그게 맞다면 나도 한 번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정말 샛별이에게 미안했다. 또기를 잃고 무섭고 외로웠을 텐데 그 시간을 그저 다른 대체물로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서둘러 덮은 슬픔은 언젠가 폭발한다 살면서 깨달았다.
"샛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에게 미리 말 안 하고 또또를 데려와서 정말 미안해. 네가 이렇게 상처 받을 줄 정말 몰랐어. 난 그냥 너 외롭지 말라고 친구 만들어주려고 한 건데 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네가 다시 활발해졌으면 좋겠어. 엄마랑 같이 행복하게 살자. 엄마 용서해줘."
눈물이 흘렀다. 정말 미안하고 아팠다.
그렇게 한참을 울며 이야기를 했는데, 샛별이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샛별이가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알아들은 걸까. 난 알아들었다고 확신한다.
그 뒤로도 샛별이는 또또와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숨지는 않았다. 밥도 잘 먹고 내가 부르면 소리로 응답했다. 하지만 조용히 지냈다.
또또도 시간이 지나자 천진난만하게 샛별이를 따르진 않았다. 나름 주관이 생겼는지 샛별이를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과 기름처럼 전혀 친해질 것 같지 않던 둘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같이 뛰어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턴 서로 껴안고 잠을 자기도 했다.
집안에 다시 평화는 찾아왔지만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나는 반성한다. 또또를 또기를 잊기 위한 또는 샛별이의 외로움을 어루만져주기 위한 의도로 데려와선 안 되는 거였다. 또또는 그냥 또또일 뿐이다. 명랑하고 호기심 많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고양이일 뿐이다. 또또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만 미처 준비되지 못한 나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 샛별이도. 심지어 또기조차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채.
또또와의 만남은 고양이 집사로서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