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처음이라...
복순이는 내가 시골집에 살게 되면서 키우게 된 개다. 우리집 복덩어리가 되길 바라며 지었는데 그렇게 맑고 착할 수가 없다. 늘 모자란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어릴 때 한 번쯤은 집에 메리라 불리는 강아지 한마리쯤은 있었을 것 같다. 나도 마당에 메리란 이름을 가진 강아지를 세 마리 길렀는데, 그때는 강아지가 거저 크는 줄 알았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메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고, 난 그저 깡총거리며 뛰는 강아지랑 한두번 놀아주고 나면 끝이었다. 밥주는 것도 똥 치우는 것도 추우나 더우나 살펴주는 건 모두 부모님 일이라 강아지는 정말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그땐 강아지 산책시켜준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못했던 때고, 이집저집 모두 그러니 짧은 목줄을 달고 그 주변만 동동거리며 그저 사람 오기만을 기다리던 강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의 그 메리들이 한없이 가엾고, 미안하다.
어른이 돼서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키우던 강아지와 새끼들을 돌봐야 할 상황이 생겼는데, 집에서 키울 자신이 없어 모두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냈다. 사실 난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키우고 싶다거나 키워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해봤고, 새끼 강아지를 보면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중에 고양이 또기와 함께 살 게 된 건 참 대단한 인연이지 싶다. 덕분에 고양이와 함께 사는 기쁨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는데, 여전히 개를 키우는 일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5년 전 내가 마당 있는 시골집으로 이사간다 하니 주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개는 언제 키울 거냐고 물어왔다. 아마 주택, 정확히 말하면 전원주택을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이 내게 투영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그렇게 시골집이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조카는 당연히 개를 키운다고 생각했는지 유기견들이 입양자를 찾는 행사날을 알려주면서 언제 갈 거냐고 묻기까지 했다.
남편도 당연히 키워야지 하면서 거들었는데, 그 상황에서 싫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좀더 있다가. 자리 잡으면."
이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외면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지인 한 사람이 자기네 개가 새끼 12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를 가져가라는 거였다. 나는 괜찮다며 극구 사양했는데, 하루 건너 전화를 하며 새끼들 많을 때 예쁜 놈으로 가져가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한 마리씩 가져가고 있다며 다 없어지기 전에 오라는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개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한펀으로는 마당에서 뛰어오는 개를 상상해 보다가도 생명을 거두는 그 책임감이 물밀 듯 밀려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언제 데려가실 거예요? 이제 두 마리 남았는데. 안 가져가면 우리집 할아버지가 잡아먹을 지도 몰라요."
사실이 그랬다. 그 집 어르신들은 정말 옛날 사람들이라 보신탕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시고, 기르던 개던 닭이던 때가 되면 잡는 분들이셨다. 동물을 그저 가축일 뿐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분들이라 생명, 책임감 이런 건 생각지도 않는 분들이셨다.
그 말을 들으니 갈등이 일어났다. 이제 가져갈 동네 사람도 없단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하니 한 마리 데려오자고 한다. 난 키울 자신이 없으니 당신이 키워야 한다고 말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 놈은 데려와야 할 거 같아 날을 잡고 그 집으로 갔다.
검은색 강아지와 누런 강아지 두 마리가 있는데, 지인은 누런 강아지가 좀더 건강하니 그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지만 난 검은색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남편 의견이었다.
"검은 놈은 걷는 게 좀 이상한 거 같던데, 왜 건강한 애를 안 데려가고."
지인은 내 선택이 이상한 듯 얘기했지만 건강한 애는 어미랑 지내고 약한 애를 데려가는 게 오히려 나을 거 같았다. 예쁜 강아지를 줘서 고맙다고 소정의 돈봉투를 건네주자, 똥개 데려가면서 돈 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나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그 강아지를 그렇게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때가 생후 2개월 정도 지난 때였던 거 같다. 2017년 6월이었다.
도대체 강아지는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우선 베란다에 임시집으로 쓸 박스를 만들어 물과 사료를 주고 매트를 깔아주고 장난감을 안겨주었다. 병원에서는 일 주일 정도 적응기간을 주라며 목욕도 시키지 말라고 했다. 복순이는 잠자고 먹고 잠자고 먹고 싸면서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집에 온 지 3일째 쯤인가,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해가 반짝 뜨더니 햇살 뜨겁기가 한여름 땡볕같았다.
"우리집 강아지 베란다에 놔두고 왔는데 괜찮을까요?"
"몇 개월 됐는데?"
"2개월쯤?"
"창문 열어놨어?"
"음..아니요."
그 말을 들은 동료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었는데, 강아지가 너무 어려서 이 땡볕에 위험할 거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때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조퇴를 하고 집으로 달려갔는데, 집으로 가는 한 시간이 천리 만리 길처럼 길기만 했다. 그 어린 것이 땡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을 생각을 하니 그 답답함이 전해져 고통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집에 들어가자마자 베란다문을 열었다. 다행히 복순이는 생기를 잃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얼른 집안으로 데려와 부채로 바람을 쐬어주었다. 복순이는 기분이 좋은지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똥오줌은 아무데나 쌌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복순이가 무사했으니까.
복순이를 1층 방에 고양이와 함께 있게 했다. 함께 살 아이들이라 어려서 익숙해지면 좋을 듯 싶어서였다. 복순이는 고양이가 무섭지 않은가보다. 장난치는 줄 알고 쫓아다닌다. 고양이 앞발에 맞고도 헤헤거린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버리면 아쉬운 듯 낑낑거리며 발만 동동거린다. 청소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그네 타듯이 왔다갔다 하는 게 귀여워 미치겠다. 다만 대소변 훈련이 안 돼 사방에 오줌과 똥을 싸고 다녀, 한동안 그 훈련을 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처음으로 개 훈련 프로그램을 보았다. 노하우가 필요했다.
북순이는 앞다리 한쪽이 휘었다. 아마 걷는 게 이상하다고 한 게 그 이유였던 것 같다. 병원에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일단 각목을 대 교정해보자고 했는데, 복순이가 자꾸 물어뜯어서 효과를 볼 수가 없었다. 병원에선 선천성 기형이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선천성 기형..그 천진난만한 복순이가 그 다리로 자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복순이의 휜 다리가 쭈-욱 펴졌다.
"어, 복순이 다리가 펴졌어!"
나와 남편은 놀랍고 기뻐 환호성을 쳤는데, 그뒤로 다시 휘었다가 펴졌다가를 몇 번 반복하다가 지금은 완전히 늘씬하게 꼿꼿하게 쭉 펴졌다. 이유는 선천성 기형이 아니라 영양실조였던 거였다. 쭉 펴진 다리를 보며 만세를 불렀다.
복순이는 한쪽 귀가 접혔다. 귀가 쭉 펴져 있지 않으면 용맹스럽지 않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그렇다. 어떤 개하고도 겨누질 못한다. 아니 싸움 자체를 아예 못한다. 낯선 사람이 오면 집으로 들어간다. 나나 남편이 있을 때는 무섭게 짖는다.
"너는 주인 있을 때만 나와서 짖냐?"
택배 기사 아저씨가 말한다.
복순이에게 집을 맡기는 건 포기해야 할 거 같다. 하지만 난 순하고 싸움할 줄 모르는 복순이가 더 좋다. 우리 곁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