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마다 성격이 다른 걸 알게 되었네
샛별이는 집에 오던 날 밤부터 화장실에서 자기가 눈 똥덩어리를 갖고 놀아 날 놀라게 했는데 그 뒤로도 어찌나 천방지축이던지, 해맑고 얌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샛별'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샛별이는 매우 여린 감성을 갖고 있었고, 또기가 떠난 이후부터 부쩍 그 성향이 강해지는 거 같다.
또기를 키울 때, 또기가 첫 번째이자 마지막 고양이가 될 거라 생각했다. 동물과 산다는 건 우아한 생활을 포기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아한 생활은 그저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소파나 이불, 벽지를 온전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고, 검은색 옷을 편하게 입을 수 있으며, 손과 발에 긁힌 상처가 없고, 편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생활의 여유 정도를 말한다.
또기가 생후 6개월이 지나자 눈에 띄게 몸집이 커지더니 털이 날리기 시작했고, 놀아주거나 안아주다가 손과 어깨, 목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생기고, 소파나 쿠션은 즉시 망가지기 시작하고, 검은색 옷은 거의 입지 않게 되었으며, 여행은 정말 큰 맘먹고 2박 3일 갔다 오는 게 전부인 생활이 되었다. 물론 그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난 또기가 좋았지만.
그러나 이 모든 건 또기로 족하다는 게 결론이었다. 불편함보다 사실은 생명을 책임지는 그 무게감 때문에, 나중에 겪을 이별을 감내해야 하는 슬픔 때문에 더는 다른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게 내 확고한 신념이었다. 그런데 또기가 온 지 8년이 지난 어느 날 샛별이가 왔다. 인연은 내가 거부한다고 되는 건 아닌가 보다.
한 번도 또기가 외로울 거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는데, 내가 외로워서였을까? 어느 날부턴가 내가 출근하고 난 뒤 혼자 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또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용맹하고 따뜻한 심성의 또기가 나이가 드는 게 느껴져서일까. 언젠가부터 또기가 무릎 위에 올라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몸집이 커져 움직임도 줄어들어서인지 자꾸만 내 맘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또기를 움직이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또기가 위로받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결정해야 했다. 그래, 또기의 친구를 만들어주자. 그런데 어떻게?
난 돈 주고 동물을 데려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한 동안 아파트 단지 내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있으면 무조건 데려오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렇게도 자주 보이던 고양이들이 이상하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느닷없이 고양이 한 마리 더 입양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예전 같으면 단번에 거절했을 텐데,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제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라온 걸 알려줬는데, 어떤 사람이 관악산에서 상처 입은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대요. 자기가 키우려고 했던 거 같은데 아빠가 너무 반대하셔서 결국 입양할 사람을 찾는다고 사진을 올렸다고 하는데, 한 번 보실래요?"
사진 속 고양이는 흰 털에 검정 무늬를 가진 새끼 고양이가 웅덩이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진이었다. 보자마자 털 색깔이 맘에 들지 않아 조금 망설였는데, 거절할 이유가 되지는 못할 거 같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너무 귀여워 너무 귀여워하는데 혼자서 별로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2011년 11월 1일 저녁, 샛별이를 만나러 서울로 나갔다. 샛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젊은 아가씨 둘이었는데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그 짧은 시간에도 느껴졌다. 어떤 동물도 공짜로 데려오면 안 된다는 옛말이 생각나서 빵을 한 가득 건네고 샛별이를 건네받았다. 가방 속 아기 고양이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는데 손가락으로 배를 간지럽히자 앞발 뒷발로 꽉 잡는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집으로 오는 내내 쓰다듬어주었다.
아기 고양이는 낯가림이 없어서 좋다. 무서운 것도 없고 그래서 피할 것도 없다. 만져주면 좋아서 갸릉거리고 앙앙 물고 앞발 뒷발로 장난을 친다. 팔, 다리, 어깨, 심지어 얼굴까지 가리지 않고 타고 다닌다. 물론 또기는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샛별이는 사람 손을 타서인지 아직 철 모르는 아이처럼 날뛴다. 게다가 힘이 장사다.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힘은 감당할 수가 없다.
샛별이가 집에 온 첫날, 또기와의 첫 대면을 잊을 수가 없다. 방문을 경계로 안쪽엔 샛별이가 숨어 있고, 또기가 밖에서 그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샛별이 입장에서 자기보다 10배는 커 보이는 또기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기는 늘 그렇듯 경계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았다 둘 다 울지도 않고 하악 거리지도 않고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탐색하듯 대치하고 있다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샛별이는 뛰어다니고 또기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둘은 별 탈 없이 잘 지낼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탁탁탁! 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샛별이가 화장실에서 자기가 눈 똥덩어리를 갖고 놀고 있는 게 아닌가. 플라스틱 화장실이나 똥덩어리가 부딪칠 때마다 탁탁 소리가 나고 있었다. 똥 누고 모래 안 덮고 나오는 고양이는 봤어도, 하키 하듯이 놀고 있는 아이는 처음이라 웃어야 할지 놀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샛별이는 안방 옷장 위로 올라가 밤새 뛰어다녔다. 창문 난간을 디딤대 삼아 옷장으로 점프한 후 혼자서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노는데, 쫓을 것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녔다.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커서 참다 참다 소리를 질러야 했는데, 샛별이를 내려오게 할 방법이 없어 난 그저 속수무책으로 그 난동을 다 겪어내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또기는 밖에 나간다고 문 앞에서 운 거 외에, 집안에서 뛰거나 점프하거나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샛별이 행동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양이가 다 똑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름 평온했던 집안 분위기는 샛별이로 인해 난리법석이 되었다. 위험한 물건들 다 집어넣기, 선반 위 물건 치우기, 양말 꼭 신기(샛별이는 이상하게 내 발을 갖고 노는 걸 좋아해 순식간에 발톱에 긁혔다), 밤에 잠다가 얼굴 다치지 않게 조심하기(옷장 위에 올라갈 때는 창문 난간을 디딤대 삼아 올라가는데, 내려올 때는 침대로 곧장 떨어져 한 번은 얼굴을 직통으로 맞은 적이 있다.ㅠㅠ) 등 산만하고 긴장감 넘치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샛별이는 또기를 어미처럼 따랐다. 항상 또기를 핥아주고 몸에 딱 달라붙어 잔다. 또기는 늘 그랬듯 제 자식처럼 샛별이를 품었다. 핥아주고 안아주고 지켜보고. 샛별이 덕분에 또기가 뛰어놀았다 샛별이 에너지가 또기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았다.
샛별이와의 동거는 그야말로 파이팅!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