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는 다섯 살로, 평소 거의 매일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습니다. 나이에 비해 집중해서 책도 잘 읽고 말도 야무지게 잘하는 아이입니다. 오늘은 엄마를 집에 가시라 하고 혼자 책을 보겠다고 합니다.
연지가 제일 먼저 중국 신화를 집어 들어서 저도 중국 신화를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계속 아이들에게 읽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고, 왜 이 책을 그리도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연지가 묻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책 봐요?"
"그럼!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 책인지 선생님이 알아야 너희들이 계속 읽어도 될지 알 수 있잖아."
그러자 연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 근데 그 책은 재미있는 책인데 나쁜 책이기도 한 거 같아요."
"아, 그래? 이 책이 왜 나쁜 책인 거 같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요."
흠... 아이들도 양서를 가릴 줄은 아는 거 같아요. 단지, 재미를 놓칠 수는 없었던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재미있는 책과 나쁜 책 사이의 거리는 어느 만큼일까요?
책을 열심히 보던 연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얘는 아빠랑 결혼하겠대요. 근데 아빠... 아빠랑 결혼하려고 하면 아빠는 폭삭 늙어서 죽어버리잖아요."
다섯 살 아이의 표현이 어찌나 직접적이던지 웃음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2학년 정호가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책을 들고 와 내 앞에서 열심히 읽습니다.
"선생님은 장수풍뎅이랑 사슴벌레랑 누가 더 잘 생긴 거 같아요?"
"선생님, 암수가 뭐예요?"
"선생님, 여기는 벌레를 핀으로 꽂아놨어요."
"허물을 벗으면 바로 어른벌레가 되나요?"
책을 읽는 건지 나랑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더니 "아, 부모님이 보고 싶다." 그럽니다.
정호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이 또 있어요."
"누군데?"
"사서 선생님이요."
이래서 제가 진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힘듦 속에서도 보람을 느끼나 봅니다.
오늘 잠시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코팅을 하러 1층에 내려갔습니다.
쉬는 시간인 줄 모르고 계속 일하다 교무실 문이 열리더니
"여깄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1학년 아이들이 도서관 문이 닫힌 걸 보고 우르르 내려와 나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난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실로 올라갔는데, 이미 문 입구에 아이들이 몰려 있습니다.
"선생님, 문 열어주세요~"
아이들은 왜 문을 닫았느냐며 성화입니다.
방과 후에 1학년 소현이가 내게 묻습니다.
"선생님, 도서실 문은 왜 닫었어요?"
"선생님이 1층에 일하러 가느라고. 아무나 들어와서 물건을 만지면 안 되잖아. 선생님이 없어진 줄 알았지?"
'아뇨. 다른 데 계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왜 늦게 올라오셨어요?"
"선생님이 일하느라 시간이 그만큼 흐른 줄 몰랐거든."
"쉬는 시간이었잖아요."
난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겐 내 변명이 통할 리 없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규칙에 참 민감합니다.
* 이미지는 <도서관>(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시공주니어)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