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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Jul 11. 2021

못다 한이야기

자세히 볼수록 예쁘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산이는 2학년이다. 자그마한 키에 귀엽고 똘똘하게 생겼다. 내가 이곳에 온 후, 도서관에 자주 들르곤 하지만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학년 교실이 도서관과 같은 2층이라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뛰어와선 놀기에 바쁘다. 방과 후엔 누나와 형을 기다리느라 3월 초엔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그저 서가를 왔다 갔다 할 뿐 책 한 권 손에 들고 읽는 일이 없다. 모양새를 보니 발걸음부터 얼굴 표정까지 심심하다고 써져 있다.


하루는 내가 같은 또래 두세 명을 앞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겠다고 했다. <고래들의 노래>였는데, 다행히도 친구 따라 내 앞에 앉아 그림을 본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 그 아이의 눈동자가 또릿또릿 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한 번 더 산이를 데려다 놓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책을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워낙 글자가 적기 때문에 술술 넘어갔는데, 뒤로 갈수록 글자가 많아지자 자꾸만 책장을 넘기려고 했다. 난 따분한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아이는 내용이 궁금했던 것이다.

3분의 2 읽었을까.. 갑자기 자기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그때서야  아이가 책을 읽지 않은 이유를   있었다.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산이는 열심히 책을 읽어나갔다. 끝까지... 재미있다며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에 괜스레 뿌듯함이 느껴졌다.   산이는 내게 자신들-초등학교 저학년-만이 즐겨먹는 군것질 거리를 나한테 갖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꼈을 무렵,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그날따라 방과 후에 몰려온 저학년 학생들이 운동장인냥 도서실을 뛰어다니는데, 10분, 20분이 지나도 자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타일러도 소귀에 경읽기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싶어, 도서실 분위기 기강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두 아이를 불러세웠다. 그 중에 산이도 껴 있었다.

"00, 그리고 산이도 이리와!"

엄한 내 목소리에 순간 조용해지더니 다른 아이들은 잽싸게 자리에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떠든 두 아이도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래도 이름을 부르자, 한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내 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산이는 아니었다.

"싫어요!"

앙칼진 목소리로 이렇게 한 마디 내뱉더니 그냥 다른 데로 가 버리는 게 아닌가. 어서 오라고 다시 얘기하자 또 한번 "싫어요!"를 외치더니 볼멘 표정으로 도서실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참기로 하고, 다른 한 명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쯤인가, 애들이 모두 돌아간 조용한 도서실에 산이가 어슬렁 어슬렁 걸어들어왔다.

난 다정한 목소리로 "산아, 이리 좀 와 볼래?"라고 물었다. 그러나 단단히 삐쳤는지, 대답도 없이 다시 도서실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아무말없이 도서실에 들락달락하기를 두서 차례. 안 되겠다싶어 화제를 바꾸기로 마음먹고,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산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지금 책 정리하는데 좀 도와줄래?"

그리고 정리중이던 책을 두 권 주며 서가에 꽂아달라고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렇게 그 날은 지나갔다.


다음날이었다. 산이가 쉬는 시간에 도서실에 들어왔다. 이름을 불러도 여전히 대답이 없다. 마치 자기 이름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왔다갔다하기만 한다. 이미 1학년 아이들이 내 책상 앞을 점령하고 있는 상태라 나도 더이상은 산이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 산이가 빈틈을 타고 내 책상 앞에 오더니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웅큼 꺼내들고 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초콜릿이었다.

나는"산아, 고마워."하고 말했지만 역시나 무표정으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도서실을 나갔다. 나는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2-3분 뒤에 다시 들어오더니 또 내앞을 얼쩡거린다. 나는 책을 정리하는 척 하며 산이를 주시했다. 그 아이는 내 책상 위에 또다시 무언가를 내려놓고 잽싸게 도서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얼른 무언가 하고 들여다보았는데, 역시나 초콜릿이었다. "산아!"하고 불러도 그냥 가버리는 걸 얼른 세우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 뒤로도 산이와는 여러 일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화해를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산이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로 방과 후에 도서관에 오질 않아 예전처럼 책읽어주며 이야기할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초콜릿으로 수줍게 화해의 손을 내밀던 산이가 잘 자라주길 그저 바랄 뿐이었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도서관이 오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마음 둘 곳이 없어서이다.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공부도 재미없고, 집에 가서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찾는 곳이 도서관이다. 상담실이 있으면 그나마 분산되지만 그게 없으면 도서관으로 몰린다. 보건실로 가는 경우도 많지만 특별한 이상 증세가 없으면 도서관으로 온다. 그래서 대부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장난치고 다투다 혼이 나기 마련이다. 이런 아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이 아이들과 소통할 시간이 생기면 다행이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아이들도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요즘처럼 코로나 때문에 이용이 어려워진 탓도 있다. 나도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마음 둘 곳 없는 어른도 많지만 아이들은 더 많다.


* 이미지는 <부르노를 위한 책>(니콜라우스 하우데바흐 지음, 김경연 옮김/풀빛)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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