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그림책 중에 『할머니의 조각보』란 책이 있다. 작가의 경험을 쓴 책으로, 할머니의 조각보를 통해 가족의 역사를 보여준다. 증조할머니가 쓰던 조각보는 세대로 이어져 아기의 이불이 되고, 식탁보가 되고 천막과 깔개로 사용되면서 가족만의 추억을 담아 1세기를 함께한다. 문득 나에게도 이런 물건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쉽게도 없었다.
어려서는 물려받는 것보다 새것이 좋았다. 새 학용품, 새 옷, 새 신발 등 아무도 쓰지 않은 새 물건을 제일 먼저 가지고 싶었지만, 오 남매다 보니 교과서와 참고서는 오빠, 언니 것을 물려받았고, 언니에게 작아서 못 입는 옷은 내 것이 되는 게 당연했다. 그래야만 먹고 살 수 있고, 학교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놓고 간 연필과 지우개가 넘쳐난다. 유명브랜드 옷도 벗어놓고 간 후 찾아가지 않는다. 텀블러를 비롯해 학생들이 놓고 간 물건은 주인을 잃은 채 버려졌다. 집안에도 안 쓰는 물건이 차곡차곡 쌓이고 같은 용도의 물건이 디자인을 달리해 늘어서 있다. 절약한다 해도 소비를 줄이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물건들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이불이 자꾸 생각난다. 자투리 헝겊을 이어 만든 이불은 할머니가 직접 지어 입으시던 한복과 아버지가 입던 옷, 우리가 입던 옷의 한 조각이었고, 어느 날은 베개가 되고 어느 날은 치마가 되고 어느 날은 이불이 되어 우리와 시간을 함께했다. 여섯 살 때 입던 털바지는 초등학생이 되면 내 스웨터가 되었고, 중학생이 되면 양말이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쓰시던 그릇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선물한 간장 종지거나 수십 년을 크리스마스만 되면 꺼내 쓰던 찻잔이었다. 그것은 낡았지만 대체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만약 내가 추억과 사랑의 가치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절약은 단순히 아껴 쓴다는 의미를 넘어 가치를 공유할 때 실천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