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웃을 수 있는 능력

by 혜랑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해봐야 안다. 수학 문제도 풀어봐야 하고, 글도 써봐야 하고, 피아노도 쳐봐야 한다. 두 다리가 있다고 모두가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접 걸어보고 뛰어봐야 한다. 종이접기도 해봐야 하고, 요리도 해봐야 안다. 내가 얼마큼 할 수 있는지 알려면 해봐야 한다.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주는 그 자체다.


그런데 능력에 ‘잘’이라는 단어를 결합하면 능력에도 계급이 매겨진다. 시험 성적을 잘 받아야 공부 능력이 있고, 등단해야 글 쓰는 능력이 있으며, 국가선수 정도는 돼야 운동 능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능력은 누구나 ‘해 볼 수 있는 힘’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잘하는 것만이 능력이라 불리는 순간, 삶은 재미가 없어진다.


15년 전 영국에 있는 지인 집에 18일 정도 머문 적이 있는데, 쇼핑도 하고 음식점도 가고 서점가도 들러보고 런던아이도 타보는 등 즐겁게 보냈지만 아쉬운 게 하나 있었다. 나 혼자 여행을 다녀보는 거였다. 대영박물관을 가보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걸어서 그곳을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 네비도 없고 영어도 어렵고 소매치기도 많다는데 여자 혼자, 나 혼자 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만약 이대로 귀국하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 같아, 귀국 전날 머릿속으로 종이지도를 외워가며 새벽에 여행길을 나섰다. 그리고 해냈다. 짧은 영어로 수없이 물어가면서 찾은 대영박물관 앞에서 내가 느낀 건 ‘자유’였다. 대영박물관을 방문한 수천만 명의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내 다리로 내 의지로, 내 머리와 손짓으로 그걸 해냈다는 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기도문 내용 중에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란 문장이 있다. 고통 속에서 웃어본 사람은 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우리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1화반복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