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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맞는다는 건

by 혜랑

살면서 수없이 맞은 아침 중에,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아침은 뭐니 뭐니 해도 어린 시절의 성탄절 아침이었다. 교회를 다닌 것도,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린 것도 아닌데, 성탄절만 되면 마냥 신이 났다.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뒹굴뒹굴할 수 있었고,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만화영화, 즉 눈사람이 말을 하고, 산타클로스가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며 선물을 나눠주는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성탄절만 되면 엄마가 특별한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말린 귤껍질로 우려낸 귤차 한 잔과 당근과 오이를 작게 썰어 고명으로 올려 만든 쿠키였다. 우리 오 남매는 안방 아랫목에 앉아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성탄절 아침을 보냈다.


반대로 오지 않기를 바랐던 아침들도 있다. 거짓말을 한 다음 날이거나, 술을 진탕 먹은 상태로 출근해야 하는 다음 날, 중대한 시험이나 발표를 앞둔 다음 날은 밤이 오래 지속되길 바랐다. 가장 최악의 아침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던 날의 아침이었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아침과, 반려견과 반려묘를 떠나보내야 했던 모든 아침은 지워버릴 수 없는 슬픈 아침으로 남았다. 그렇게 운명을 가르고 때론 기적을 만드는 아침은, 좋은 아니든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다. 지구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전과 공전을 반복함으로써 다가오는 시간이다.


아침이 오려면 온 우주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리를 유지하고 온도를 유지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이 ‘온다’라고 표현한다. 점심과 저녁에는 온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말이다. 아침은 단순히 해가 뜨는 시간을 뜻하는 게 아니라, 하루의 시작이고, 우주의 견고함이며, 새로운 삶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침을 ‘맞이한다’ 고 표현한다. ‘맞이한다’에는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또한 점심과 저녁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새로운 삶의 시작인 아침이기에, 어떤 아침이든 받아들일 자세를 갖기는 그래서 어렵다. 그래도 매일 찾아오는 아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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