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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님 Oct 14. 2024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 읽어보기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문장과 간단한 감상평을 남겨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말과 글의 맥락을 잘 찾아내지 못하는 적이 많습니다. 내가 꽂힌 어느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중심문장이나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왜 저렇게 생각하지? 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제 이해력이 떨어져 약간 비껴가는구나 생각해 주세요.


- 물질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치 심판을 받는 것 같다. (18쪽)


- 너희 둘은 마치 모든 것을 움켜잡지 않으면 그것을 놓쳐버릴 거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구나 (23쪽)


-그녀는 가족생활을 위해 벤을 재교육시키면서 자신이 벤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녀가 자기들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벤과 함께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느낀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 (121쪽)


비정상적인 다섯째 아이 벤.

태아 때부터 너무 강렬한 생존본능으로 해리엇을 미칠 지경까지 몰고 간다. 고대의 유전자가 어딘가에 남아있다가 태어난 것 같은 외모와 지적 수준, 감정에 대한 결손을 가족 구성원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엄마인 해리엇마저도... 하지만 해리엇은 벤을 죽게 놔둘 수 없었다. 그것은 벤의 생존 본능처럼 여성에게는 최후의 순간까지 남아있을 모성애 때문일까, 혹은 인간사회에서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엄마'에게 '강요되는 모성애' 때문일까.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낳은 것이 모성만의 잘못일까. 등장인물 모두 회피하려고만 한다. 마지막 결정은 제일 죄인인 사람에게 미루려고..

그 죄인이 엄마인 것이다.


해리엇은 결국 죄책감, 모성애, 양심 등등 인류보편의 감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요양원에 찾아간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본 이상 데려오지 않을 수도 없다.


벤을 데려오는 해리엇이 답답하고 틀렸다고 나 자신도 소설 속 다른 가족들에게 은근히 동조하게 되는 기분이 들어 순간적으로 쭈뼛하고 어딘가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나 역시 어딘가에 애를 가둬두고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겠지.  그 애가 벤이라 해도 그럴 수 있을까.

해리엇은 누구라도 이 상황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길 바랐다.


벤이라는 인물을 인간으로 보느냐 감정의 진화가 덜 된 인간과 닮은 짐승으로 봐야 하느냐.

그는 분명히 태어났고 문제가 있는 것만으로 인간임을 거부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인간사회에의  갖가지 규범을 지키지 못하며 생명에 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데 사회에서 교화시키고 보듬어 살아야하는가. 결손된 감정과 특유의 기질에 교화라는것이 가능한것인가. 이런생각을 하면서 나도 너무나 폭력적인것이 아닌가 너무 위험한 생각이 아닌가 나에 대해서도 복잡한 마음을 갖게 한다.


1988년에 쓰인 이 책에서 벤은 독자에게도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지만 2000년에 발표된 후속작에서 벤의 모습은 해리엇이나 내가 걱정한 것만큼의 괴물은 아닌 것으로 그려졌나 보다.

'세상 속의 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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