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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발 May 02. 2023

너를 사랑해

그루밍성범죄

* 사건의 대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으며, 피해자의 이름은 연합뉴스의 22년 9월 11일 기사 "[10년전N] 60년 통틀어 남자·여자 가장 인기있던 이름은?"에서 무작위로 따왔음을 알립니다.


* 그루밍 성범죄 과정에 대한 묘사가 있으므로 관련하여 주의를 요합니다.



얼마 전에 화제가 되었던 KBS ‘시사기획 창‘의 ’너를 사랑해‘ 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미성년자 대상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보는 내내 성인 연기자가 미성년 피해자 역할을 하면서 불편감을 느끼는 게 보여서 몹시 힘들었다. 연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힘든데 실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 대상이 미성년자라면 더더욱 어땠을까.


얼마 전에 만난 21살의 범죄피해자는 스스로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럼 고등학교도 졸업 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떤 존재일까?


누누히 배웠고 경험한 것처럼 청소년기는 보호자와 당사자 모두에게 혹독하다. 간혹 피해자의 부모에게 청소년기를 설명해야 할 때가 있을 때 ‘쩜오’에서 온전한 ‘1’이 되는 과정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존재에서 부모와 떨어져 나와 독립된 존재가 되는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분리의 고통과 외로움, 혼란을 겪는다고.

 

서연이에게도 이 과정은 예외가 아니었다. 엄마 아빠보다 친구가 좋았고, 엄마 아빠는 자신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또 서연이 스스로도 자신의 세계를 엄마 아빠와 공유하기 싫었다. 친구들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외로웠다. 아무도 자신의 속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고 오히려 가족이 자신을 몰라주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이 채팅어플을 알려줬다. 채팅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고 했다. 마침 용돈도 부족했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채팅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했다. 보통 다양하게 이상했다. 대뜸 얼마면 자신과 성관계를 할 거냐고 묻기도 하고, 자위하는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래 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참았다.


그러던 중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다정했고 서연이의 외로움을 공감해줬다. 어른들 중에서 처음으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알게 됐고 그런 사람이 자신을 어른처럼 대우해줘서 서연이는 깊이 감동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서연이가 찾을 때면 늘 따뜻하게 대답해줬다. 서연이는 아저씨를 좋아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저씨도 서연이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서연이는 너무 기뻤다!


성인 남자와 사귀게 됐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는 너무 부럽다고 했다. 어른하고 사귀면 어떤 느낌이냐고 물으며 또래 남자애들은 너무 별로라고 푸념도 했다. 서연이는 으쓱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하고 매일 1시간이 넘게 통화를 하고, 종일 카톡을 했다. 아저씨는 서연이가 어디 사는지, 학교는 어딘지, 몇 학년 몇 반인지, 학원은 어디로 다니는지 물어봤다. 자신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아서 서연이는 좋았다. 아저씨의 일이 바쁘고 시연이의 학원이 늦게 끝나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서연이는 아저씨가 많이 좋았다. 그래서 아저씨를 잃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는 서연이가 보고 싶다고 했다. 서연이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일하느라 만나지 못한다며, 얼굴도, 가슴도, 성기도 보고 싶다고 했다. 어른의 연애를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서연이는 당황스러웠고 창피했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도 되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자신을 못 믿는 거냐고 사랑하는 사이에 그 정도의 믿음도 없으면 헤어지는 게 맞다며 화를 냈다. 그것도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저씨를 잃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잃는다면 서연이는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아저씨가 기뻐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달라졌다.


아저씨는 그 후부터 영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학교에 있는 서연이에게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거절하자 협박이 이어졌다. 너희 부모에게, 너희 학교에 니가 보낸 사진과 영상을 모두 보내겠다. 인터넷에 올리겠다. 너희 집에 편지로 보내겠다. 너희 부모님이 아시면 어떨 것 같으냐 등등등.


서연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 만난 서연이는 누가 봐도 지쳐보였다. 두 시간 정도 동안 이어진 진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잠도 잘 못 잔다고 하였다. 진술 내내 엄마가 신뢰관계인으로 서연이 옆에 앉아있었다. 서연이에겐 그것조차 너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연이의 어머니에게 잠깐 둘이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어머니를 상담실에서 내보낸 후 서연이에게 엄마가 나가셔서 불안하냐고 물었다. 서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문틈으로 엄마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사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는 유형이 있듯이 나도 그렇다. 나는 특히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그런 편이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가장 힘든 점은 타인의 고의로 자기 신체에 대해서 침범을 당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 안전감이 무너지고 자신에 대한 자책은 매우 날카롭다.

             

성인의 경우에도 회복이 어려운데 미성년인 경우엔 혼자 힘으로 이걸 이겨내라면 힘들 수밖에 없다. 부모, 학교와 같은 사회적 지지 기반이 너무 중요한데 그 지지 기반이 약한 아이들 보면, 마음이 더 쓰일 수 밖에 없다.


그럴 때면 좀 오만하더라도 내가 저 아이의 지지기반 중 하나가 됐으면 싶다. 나로 인해서 세상이 그렇게 더럽지만은 않음을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싶다. 내 명함은 그럴 때를 위해 만들어졌다.


서연이를 상담하고 함께 지원 계획을 세운 후, 밖에서 기다리던 서연이 어머니에게 서연이가 심리상담과 정신의학과 진료가 필요할 수 있음을, 해당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안내했을 때 서연이 어머니가 했던 말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얘가 벌써부터 남자를 좋아해서 큰일이에요. 근데 정신과는 안 가면 안 되나요?


한 번씩 서연이 때와 비슷한 사건이 접수될 때마다 서연이를 마음 속으로 응원한다. 좋은 어른이 되기를.


반대로 사회적 지지 기반이 있어보였던 경우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피해자는 2명이었다. 유진이와 지혜는 둘의 사이를 절친이라고 했다. 유진이는 채팅어플로 어른 남자친구를 갖게 됐다. 그는 유진이를 시간만 나면 만났다. 유진이가 있는 곳으로 직접 데리러 갔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엔 집 안에서 밥도 먹고, 술도 같이 먹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성인물을 같이 보기도 했고, 성관계를 하게 됐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싫지는 않았다고 유진이는 말했다.


그리고 유진이의 남자친구는 다음에 놀러올 때는 친구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유진이는 '절친한' 지혜를 데리고 갔다. 그날 둘은 강간 피해자가 되었다.


사건이 접수되고 유진이와 지혜가 함께 진술을 하러 왔다고 했을 때 처음 둘을 만났다. 


유진이는 아빠가 같이 왔는데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며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유진이와 주차장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대화를 했고 해바라기 센터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유진이가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고 꽉 안아주는 유진이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아, 유진이는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지혜의 아빠는 달랐다. 지혜는 아빠가 무섭다고 했다. 실제로 지혜의 아빠는 아동학대로 신고된 적이 있는 사람이었고 지혜의 엄마도 지혜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전력을 다했다. 아이가 다친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장기적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여기저기서 경제적인 지원을 끌어오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겠다고 해서 복용을 잘 하고 있는지도 모니터링했다. 증인으로 소환된 재판에도 함께 갔다. 


그렇게 지원이 마무리 될 쯤에 둘 모두에게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어떤 식으로든 여긴 다시 안 오는 게 좋겠다며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래도 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다. 유진이를 만난 곳은 소년범을 면담하는 자리였다. 유진이는 술을 사다가 걸렸다고 했다.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고 하지 않았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아이는 해맑게 웃었다. 나는 혹시 아이가 범죄 피해로 인한 고통으로 술을 마시게 된 건지 궁금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언제부터 술을 마셨는지 물어봤다. 


어릴 때부터 아빠랑 밥 먹으면서 마셨어요.


오 마이 갓. 나는 그때부터 모든 미성년 피해자의 부모를 '일단은' 신뢰하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이 그렇게 된 데는 잘못된 어른들의 반응과 무교육이 있었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또 잃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늘 믿는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꼭 스스로를 어른들이 사랑한다는 것보다 사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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