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불러온 급식실과의 냉전
'꼬르르르륵~~~~'
아침자습시간. 천둥처럼 꼬르륵 울리는 배를 움켜잡는다. 아침을 안 먹어서 너무 배가 고프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꼬르륵 소리를 낼 순 없다. 그건 너무 창피하니까.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좀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꾸에으꼬르르르를~~~~~'
더 큰 꼬르륵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진다. 물을 한 잔 더 벌컥벌컥 마신다.
안 되겠다. 뭘 좀 배에 채워 넣어야겠다. 아이들이 괜찮은지 쭉 둘러본 뒤 급히 연구실로 뛰어간다.
연구실 캐비닛을 열어 한 줌 견과를 입안에 털어 넣는다. 다시 쏜살같은 걸음으로 교실로 복귀한다. 아이들 몰래 조용히 아몬드를 오물오물 거리며 먹는다. 이때 한 아이가 내 곁에 쓱 다가온다.
"선생님, 저 가위질하다가 다쳤어요. 손가락에서 피나요."
큰일 났다. 입에 먹을걸 물고 있다는 걸 들키면 이게 무슨 망신인가. 햄스터처럼 야금야금 씹어보지만 이미 늦었다. 햄스터처럼 웅얼거리며 대답한다.
"마닝 아 푸게 꾸나. 어룬 보건 실에 가야겠다'
아이는 내 모습을 보고 갸우뚱하더니 보건실로 달려간다.
'휴... 눈치채진 않았겠지? 그러게 아침밥을 먹고 올걸...'
후회해봤자 어차피 내일도 출근 전엔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고, 간헐적 단식을 한다며 그냥 출근할 것이고, 아침자습 시간에 꼬르륵 거리며 배를 움켜쥘 것이고, 아이들이 볼 새라 허겁지겁 연구실에서 과자를 입에 털어 넣고 있을게 분명하다.
출근 전엔 괜찮은데, 왜 출근만 하면 허기가 지고 배가 고픈 걸까.
쉬는 시간. 연구실에 가보니 옆반 선생님이 싱글벙글한 웃음으로 커피를 타고 있다.
"오늘 점심은 *김떡순이라고 애들이 신나 있더라고."
(김떡순: 김밥, 떡볶이, 순대)
옆반 선생님도 애들만큼이나 김떡순을 좋아하시나 보다. 종이컵에 커피를 타는 손놀림이 경쾌하다.
"오늘따라 배고프네요. 꼬르륵 소리 나서 죽는 줄 알았어요.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느려요."
"그러게. 그래도 얼마 안 남았어. 파이팅이야!"
교실로 돌아와 물을 한 컵 더 마시고 수업을 한다. 격렬했던 허기가 가라앉은 듯하다. 그래도 밥이 먹고 싶다.
12시 20분 땡 하지 마자 줄을 세우고 급식실로 이동한다.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꿈틀대며 너희적 대는 학생은 가장 늦게 밥을 배식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급식을 늦게 먹는다. 어느 반보다도 빠르게 줄지어 이동한다.
뒤늦게 줄을 서고 있는 4반을 추월해서 걷는다.
'미안해요 4반 선생님~ 빠르게 준비한 저희 먼저 갑니다~~~'
급식실에 도착해보니 우리 반이 1등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아이들을 자리에 앉힌 후 한 바퀴 휘돌며 거리두기를 잘 지키는지, 친구와 말하진 않는지 재차 확인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이 들면 급식판을 집어 들어 점심밥을 받는다. 모락모락 김이나는 흰밥이 나를 반긴다. 붉은 떡볶이가 어서 날 먹어달라며 지들끼리 다투고 있다. 냠냠 내가 간다!
"순대 더 주세요."
배식받은 떡볶이 양이 시원치 않아 더 달라고 요청한다. 그랬더니 얇게 썰린 순대 두 개를 더 얹어주신다. 더 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는다.
다 먹긴 했는데 김떡순 양이 살짝 아쉽다. 더 받으러 갈까 하다가 음식에 집착하는 것 같아 교실로 돌아간다.
연구실에 가 보니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화가 나있다.
"아니, 내가 김말이 좀 더 달라고 했더니 김말이를 딱 하나만 주는 거 있지?"
"저한테는 다 먹고 다시 받으랬어요."
"아니 우리는 무상급식도 아니고 당당히 돈 내고 먹는데 너무 기분이 나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교직원 급식 양이 너무 적어. 회의 때 당당히 건의해야겠어.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성인인데.... 각자 먹을 수 있는 양은 다 알잖아. 안 그래?"
김떡순을 계기로 선생님들이 단단히 뿔이 나 계셨다. 나도 그 옆에 앉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사실 저도 하나 더 먹고 싶어요."
결국 부장회의에 교직원 급식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다. 그런데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서운함은 더 깊어졌다.
"교장선생님께서 더 달라고 하기 전에 남기는 음식의 양을 줄이라고 하셨어."
"맞는 말이긴 한데... 그 말씀도 너무 서운하네. 교장선생님은 산더미처럼 받으시잖아."
"맞아. 우리가 얼마나 받는지 모르시는 거 아냐?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엄청 날씬하시잖아.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으신 것 같던데?"
"그러게. 우리가 얼마나 속상한지 모르시는 듯."
결국 떡볶이가 쏜 작은 공은 급식실, 교사, 교장 사이의 냉전을 불러왔다. 급식 대신 도시락을 먹는 선생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떡볶이 때문에 그렇다고 콕 집어서 말하긴 그렇지만 이외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면서 급식실과 멀어졌다. 급식실과의 냉전은 꽤 오래가는 듯했다.
어느 날 급식을 받는데 배식받는 반찬 양이 늘었다는 걸 직감했다.
"선생님, 더 드릴까요?"
"네? 아... 아니요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더 드릴까요?'라는 한마디에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급식실이 더 친절해졌다. 아주 간단하고 허무하게도 이 한마디에 선생님들의 서운함이 풀리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먹던 선생님들도 하나둘씩 급식실로 돌아왔다.
배려가 담긴 한마디는 빙하기 같던 인간관계도 사르르 녹이는 힘이 있다.
넉넉한 반찬을 보면서 마음까지 넉넉해졌다. 그러나 배식 양이 늘면서 남기는 음식이 꽤 생겼다. 여느 회사원 같았더라면 아무 생각하지 않고 남는 음식을 버렸겠지만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서 음식을 많이 남기는 건 안될 일이다.
급식을 받는데 머뭇거리다가 말씀드렸다.
"이건 조금만 주세요."
받은 급식을 다 먹고 다시 배식대로 갔다.
"더 주세요."
처음에는 음식을 더 받으러 가는 게 민망했는데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니 괜찮아졌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서상 음식을 더 가져다 먹으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혹시 흉보진 않을까 걱정되기 마련이다. 내가 만약 정말 뚱뚱했다면 어땠을까?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음식을 더 먹을 수 있었을까?
떡볶이가 가득찬 급식판에서 젓가락으로 순대를 쿡 찔러 입안에 넣어 오물거리며 생각한다.
'자유롭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더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