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담임 vs 1학년 꼬맹이들

6학년 담임이 1학년을 가르칠 때 벌어지는 일

by 다이앤선생님

나는 6학년 선생님이다. 오늘은 특별히 1학년 보결수업을 맡아 1학년 교실에 들어왔다. 1학년 교실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쾌적하고 안락했다. 나는 아이들의 보송보송한 아기 파우더 냄새를 맡으며 교탁 위에 섰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순수하고 깨끗한 공기가 느껴졌다. 어제 6학년 교실에서 맡았던 꿉꿉한 냄새가 모두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매일 6학년 교실에서는 나는 덜 마른빨래 냄새를 맡고 산다. 그 냄새의 원인은 바로.

"아~ 덥다 더워. 땀나. 선생님, 선풍기 틀면 안 돼요?"

6학년 애들이 체육을 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나는 입이 딱 벌어져서 열심히 손부채질을 하고 있는 6학년 남자 애들을 쳐다봤다. 너무 추워서 내복과 수면양말로 중무장한 것도 모자라 작은 핫팩에 손을 호호 녹이고 있는 내 앞에서 선풍기 틀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냔 말이다.

"응, 안돼."

나는 고개를 딱 잘라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겨울에 얼어 죽을 일 있나 무슨 선풍기란 말인가. 역시 청춘은 청춘이구나 싶었다. 반대로 난 늙었고...

그런데 그때 한 아이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칼바람이 불어와 내 볼에 싸대기를 날렸다. 차라리 꼬릿 한 덜 마른빨래 냄새를 맡는 편이 백배 나았다. 나는 순식간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 안.... 돼...'

나는 덜덜거리며 얼어붙은 손을 들어 교실 창문을 향해 손짓했다.

"닫... 닫아줘..."

(시끌 시끌 #%$#@%!)

애들은 선생님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지들끼리 킥킥대며 교실을 떠나가라 휘젓고 다녔다. 차갑고 축축한 꼬랑내가 교실을 에워쌌다. 나는 잠결에 아빠 양말냄새를 맡고 정신을 잃은 아이처럼 장렬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떴다. 깨끗한 공기로 정화된 몸과 마음으로 1학년 아이들을 바라봤다. 작은 몸집 때문에 교실이 더욱 넓고 쾌적해 보였다.

'귀여운 녀석들. 으헤헤. 너희들을 다루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지'

나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처럼 씩 웃었다. 그리고 안전한 생활 책을 펴고 근엄하게 말했다.

"자, 2교시는 안전한 생활이에요. 모두 72쪽을 펴세요."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안전한 생활이란 과목은 없었다. 만약에 내가 1학년 때부터 안전한 생활을 배웠다면 조금 더 안전하게 학교를 다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6학년들로부터 안전하진 않지만...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내 말을 따라 착착 책을 폈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계절별 안전한 생활에 대해 알아볼게요. 눈이 많이 오고 추울 때 안전하게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봅시다. 추울 때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 않으면 기침이나 콧물이 나고 비염에 걸릴 수 있어요."

"어, 선생님 저 B형이에요."

"응? 뭐라고?"

어떤 아이가 '비염'을 'B형'으로 잘 못 들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때부터 두더지 게임처럼 여기저기서 혈액형에 관한 얘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 난 O형인데!"

"난 A형인데!"

"우리 아빠는 O형이고 난 B형이야."

"엄마가 그러는데 O형이 제일 좋대."

"나도 형 있어."

"나는 동생 있는데!"

"난 어제 이마트 다녀왔다!"

"나는 어제 생일이었어."

여기저기서 아무 말이 튀어나왔다. 아무 의미도 없고 맥락도 없는 말들이었다. 정말 놀라운 점은 서로 자기 말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거였다. 이 기이한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뭐지? 이 녀석들은 대체 뭐지?'


낯설면서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버스 앞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스쳐갔다. 그들도 그랬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온 마이 웨이 서로 자기 말만 하는데도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조용! 조용! 이제 그만."

다행히 아이들은 금세 조용해졌다.


"한 사람씩 발표합시다. 추운 날에 어떻게 안전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말해 볼 사람? 좋아, 현우가 말해볼까."

"추운 날에는 목도리를 합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 외 다른 생각이 있으면 말해볼까."

첫 발표는 썩 괜찮았다. 그런데 그 이후.


"선생님, 저도 목도리 있어요!"

"선생님, 저는 장갑 있어요!"

"나 엊그제 엄마랑 백화점 가서 머리띠 샀다~."

"나는 색종이가 많아."

"&%$#@^*"


또다시 아무 말 발표가 이어졌다. 나는 1학년들의 아무 말 공격에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중심을 잃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K.O. 펀치 게임 끝.

6학년 선생님은 2교시에도 1학년에게 밀리고 말았다.









* 이전 글) 첫인상부터 1교시 이야기

https://brunch.co.kr/@r-teacher/140


* 다음에 3교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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