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담임이 1학년을 가르치면 생기는 일
6학년 교실은 언제나 전쟁통이다. 나보다 키가 큰 남자아이들이 서로 수시로 몸싸움을 하고 논다.
"으악! 안 돼! 서로 떨어져. 떨어져!"
나는 부리나케 두 손을 휘저으며 서로 헤드락을 걸며 노는 남자 애들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하지만 작고 가녀린 나는 그들의 몸통에 부딪혀 풍선처럼 통통 튕겨져 나와 쓰러지곤 한다. 한 번은 남자아이 한 명이 나를 반 친구인 줄 알고 확 밀어버린 적이 있는데 나는 그대로 장풍을 맞은 거 마냥 멀리 날아간 적이 있다.
하...... 늙어서 초등학교 다니려니 참 힘들다.
그에 비해 1학년 교실은 작은 마을 동산 같다. 아이들은 병아리 떼처럼 쫑알쫑알거리고 작게 몸을 움직인다. 일단 아이들의 체구가 작다 보니 안전해지는 느낌(?)이랄까.
1학년 5반 보결 마지막 시간. 4교시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험지를 돌렸다. 교사에게 시험 보는 시간은 마냥 즐겁지는 않다. 매의 눈을 하고 아이들이 커닝을 하는지 안 하는지 한 시간 내내 지켜보고 서있는 건 너무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전쟁통 같았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마법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주 가끔 온종일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아이들의 침묵이 반가울 때도 있다.
1학년 아이들은 시험지를 받아 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똘똘하고 빠른 아이들은 시험지를 받자마자 5분 만에 뚝딱 문제를 다 풀어버리는 반면 느린 아이들은 문제를 붙잡고 한참을 고민하고 씨름했다. 동그란 안경에 세미 정장을 입은 아이가 시험지를 교탁에 가져와 남는 시간에 책을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시험문제를 빨리 푼 학생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 학생은 자리로 돌아가 정 자세로 동화책을 읽었다. 1학년인데도 점잖은 포스가 느껴지는 아이였다.
이윽고 너도 나도 시험지를 제출했다. 아이들은 각자 종이접기를 하거나 색칠놀이를 하거나 독서를 했다. 그런데 아직 시험지를 내지 못한 아이 한 명이 약간 불안했는지 혼잣말로 쫑알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어쩌지. 나 4번 모르겠는데......"
그러자 앞 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답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내가 알려줄까?"
"그거 답 2번이야."
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이건 시험이에요. 서로 답을 알려주면 안 되는 거예요."
아이들은 잠시 멈칫하는 듯했으나 시험지를 내지 못한 아이가 다시 쫑알거리자 그 아이에게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잉, 나 5번도 모르겠는데......"
"내가 알려줄게!"
"그거 답 3번이야."
"내가 내 시험지 보여줄까?"
"6번은 답이 1번이야!"
나는 쫑알쫑알 대는 병아리들을 보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여러분! 이건 시험이라 답을 알려주면 안 되는 거라니까요!"
나는 쓰읍~하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 주름을 한껏 만들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눈을 그렁그렁 뜨고 말했다.
"그래도 친구가 잘 모른다고 하니까 알려주고 싶어요."
"그래도 이건 시험..... 이니까...."
나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1학년이 어른들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내 배꼽시계는 꾸르륵 소리를 내며 점심시간 1분 전이라고 알림을 울려대는데 1학년 아이들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6학년 담임에겐 매우 낯선 장면이었다. 왜냐하면 점심시간이 모래알 같았던 6학년들이 유일하게 대동 단결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 밥 먹으러 복도에 줄...."
내가 복도에 줄을 서라고 미처 말을 다 하기도 전에 6학년 아이들은 총알처럼 튀어나가 줄을 섰다. 그리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계단을 내려가 총총걸음으로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고 화단을 지나 매끄럽게 급식실로 입장하곤 했다.
하지만 1학년에게 점심밥은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닌 듯했다.
'이 녀석들...... 내공이 장난이 아니구먼.'
나는 1학년 병아리들을 한 줄로 세우고 사뿐사뿐 급식실로 내려갔다. 아이들은 다소곳하게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고, 화단을 지나, 급식실에 입장......
하지 못했다. 그건 화단에 있던 달팽이 한 마리 때문이었다.
"선생님, 여기 달팽이 있어요!"
한 아이가 달팽이를 가리키자 모든 아이들이 우르르 달팽이 곁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을 줄 세우며 말했다.
"응, 그래. 원래 화단에는 달팽이가 살아. 이제 밥 먹어야지. 배고프지 않니?"
아마 배고픈 사람은 나뿐이었나보다. 다들 달팽이 곁에 정신을 뺏겨 급식실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보채며 화단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훠이 훠이 손짓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불쌍한 눈썹을 한 채로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이제 가자. 응?"
"선생님, 그런데 이 달팽이는 엄마가 없나 봐요. 혼자인 것 같은데 이대로 놔뒀다가 나뭇잎에서 떨어지거나 죽게 되면 어떡해요."
아이들은 일동 발을 동동 구르며 달팽이를 걱정했다. 아이들에게 얼른 밥을 먹일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에이, 달팽이는 안 죽어. 그리고 원래 저렇게 혼자 사는 거야. 걱정 마. 이제 우리는 갈 길을 가자."
"선생님, 그래도... 그래도... 흐엉 달팽이가 걱정돼!"
"선생님이 다시 돌아와서 달팽이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잘 봐줄게. 그러니까 이제 가자."
아이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급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아이들은 달팽이가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나는 뒤돌아서서 자꾸 달팽이를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1학년이 어른들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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