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학년 연구실. 매년 이맘때쯤 되면 삼삼오오 선생님들이 모여 내년도 업무 분장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선생님, 내년에 몇 학년 희망하실 거예요?"
"저요? 음... 저는 1학년만 아니면 돼요. 1학년은 아직 엄두가 안 나서... 교감선생님께서 정해주시는 대로 받으려고요."
"에엥? 그렇게 말하면 보나 마나 6학년 주실걸요?"
"아, 그런가요? 근데 저는 거의 6학년만 맡아왔어서 또 6학년 맡아도 괜찮아요."
"이번 애들은 다를 텐데... 5학년 담임선생님들께서 이렇게 말 안 듣는 애들은 처음 본다고 다들 혀를 끌끌 차셨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거죠. 6학년으로 올라가면 얼마나 더 심해질지 상상만 해도 겁나네요."
5학년 애들이 그렇게 악명 높은 애들인지 몰랐다. 그동안 우리 학년 애들만 신경 쓰느라 다른 학년 애들의 생활태도가 어떤지 너무 무관심했나 보다.
나는 교실에 돌아와 의자에 털 썩 앉았다.
'올해는 3, 4학년에 지원해볼까...'
회전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며 내년도 업무 분장 희망서를 어떻게 작성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 교무 부장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5학년 2반 담임선생님 공가로 5교시 보결수업 부탁드립니다.]
'5학년 2반이라...'
메시지를 읽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때마침 5학년 애들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팀 게임을 하면서 반 분위기가 어떤지, 서로 잘 협력하는지, 수업에 집중하는지 알아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랴부랴 수업 준비를 하고 곧바로 5학년 교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6학년 선생님이시네?"
내가 교실에 발을 내밀자 5학년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순식간에 아이들의 얼굴을 쫙 훑어봤다.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차분한 편이었고 문제아는 없어 보였다.
"이번 시간은 나랑 같이 공부할 거야. 퀴즈게임 한 판 할래?"
"와아! 좋아요!"
나는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눠 상식 퀴즈를 풀게 했다. 아이들은 게임에 푹 빠져 퀴즈를 열심히 풀었다.
'어라? 생각보다 괜찮은데?'
비록 아이들이 대체로 승부욕이 넘쳐서 점수에 따라 기분이 급격히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지도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아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화자찬했다.
'역시 내 강렬한 카리스마가 아이들을 휘어잡은 게야. 후훗."
하지만 교실 한 구석에서 곧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으엥에에에! 으아아~~~!"
내 머릿속에 삐뽀 삐뽀 사이렌이 들어왔다. 나는 울고 있던 남학생에게 달려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선생님한테 말해봐. 누가 널 괴롭힌 거야?"
하지만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더 큰 괴성을 질렀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아이를 잡고 계속 물었다.
"괜찮아. 선생님한테 말해봐. 무슨 일이야? 잠깐 복도로 같이 나갈까?"
나는 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나를 피해 몸부림쳤다. 돌발적인 응급상황이었다. 잔뜩 긴장한 나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
"애들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몰라요. 화면에 뜬 퀴즈 문제가 잘 안 보여서 틀렸다고 투덜대더니 혼자 저래요."
"에이, 설마... 문제를 못 풀어서 우는 거라고?"
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작 퀴즈게임 문제를 못 풀었다고 저 난리를 치며 울 일인가 싶었다. 그래서 계속 아이에게 캐물었다.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해. 무슨 일이야?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 나랑 다시 얘기할래?"
"으에에앙!! 아악!!! 아아아아!!!!"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교실을 떠나가라 질러대는 괴성 때문에 더이 상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친구들이 공부를 할 수 없어. 무슨 일인지 얘기도 안 해주면서 친구들 공부를 방해하는 건 안되는 거야!"
아이를 타이르던 내 목소리는 금세 야단 조로 바뀌었다.
"그만 울어! 그만!"
싱글벙글 시작한 5교시 수업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튿날, 학년 연구실.
"저 아무래도 3, 4학년 지원해야 할 것 같아요. 어제 5학년 수업 들어가 봤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컵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잘 생각했어. 만만치 않은 애들이야."
"좋은 조언 주셔서 감사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6학년 맡을 뻔했네요."
나는 컵을 탁 내려놓고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학년 2반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어제 보결 수업해줘서 고마워요. 근데 어제 우리 반 아이가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네. 울만한 일은 없었는데 계속 울더라고요. 에휴, 선생님 힘드시겠어요"
나는 5학년 2반 선생님을 위로해드리며 5학년애 문제아가 많다는 게 사실이었다고 얘기를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5학년 2반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게 사실은... 그 아이의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로 저렇게 방긋방긋 웃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을 터트리더라고요. 애들한테는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엊그제는 세상에 이 추운 날 반바지를 입고 온 게 아니겠어요. 가정에서도 잘 신경 써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파요. 지금 많이 힘들 거예요. 친구들의 위로도... 가족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있어서요. 그러니까 잘 이해해 주세요."
나는 5학년 2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머리가 띵해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5학년엔 문제아가 없었다. 문제아는 내 안에 있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업무 희망서를 제출했다. 희망 학년에는 하던 대로 이렇게 적었다.
'정해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내년에 만나게 될 6학년 아이들과의 첫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