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우리 아이. 문제일까?

소심한 우리 아이, 내가 잘 못 가르친 걸까?

by 다이앤선생님

Ⅰ 엄마의 고민) 선생님, 우리 아이가 너무 소심해서 답답해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지영아, 뭐해. 너도 인사드려야지."
"아.. 안녕.. 하세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물쭈물 이웃주민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지영이가 못마땅하다. 나는 항상 밝게 인사하는데 누굴 닮아서 이렇게 소심한지 속에서 고구마를 잔뜩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화도 내 보고 타일러 보기도 했다.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는 게 예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도무지 들어먹지 않는다.


"이따 친척들 오시면 큰 소리로 인사하는 거야, 알았지?"

" 으응.."


아버님 생신을 맞아 가족들이 모였다. 워낙 대가족이라서 시누가 세명이나 있다. 지영이 또래 조카들도 많이 모였다.


"지영이는 어때? 공부 잘하고 있지?"

"...."

"지영아, 얼른 말해야지. 큰엄마가 물어보시잖아."

"네.."

"에휴 참. 지영이가 좀 소심하긴 한데 공부는 잘해요. 수빈이는 어때요?"

"수빈이 이번에 학급회장 됐어. 공부는 뭐 잘 모르겠고. 친구들하고 노는 게 제일 좋나 봐. 애들을 우르르 이끌고 다닌다니까"


조카들 틈에서도 수빈이는 대장 역할을 하고 있고 지영이는 쓸쓸히 혼자 손장난을 하고 있다. 엄마 마음에는 천불이 난다.



소심한 우리 아이, 내가 잘 못 가르친 걸까?








Ⅱ 똑똑한 엄마들만 아는 비밀


(1) 소심한 성격은 왜 바뀌지 않을까.


아이들은 각자 다른 기질을 타고났다.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아이도 있고, 행동이 과격한 아이도 있고 있는가 하면 생각이 많고 조심스러운 아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 없다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성격을 바꿀 수 있다면 역사에 남는 위대한 연주가, 에너지 넘치는 축구선수, 탐구하는 철학자는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태생적으로 타고난 성격은 바꾸기 어렵다. 물론 훈련을 통해서 조금 달라질 순 있지만 타고난 기질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의 성격을 하얀 천으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하얀 천을 염색해서 다양한 무늬를 낼 순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천을 쇠로 바꿀 순 없지 않은가. 부모가 대장장이가 되어 열심히 두드린다고 한들, 천은 찢어질 뿐 쇠로 바뀌지 않는다. 다만 천을 여러 겹 쌓아 꿰매 준다면 쇠처럼 단단한 천 뭉치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성격이 바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땀 한 땀 천을 꿰매려면 참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 아이 성격이 변하려면 몇 년은 더 걸리겠거니. 생각하길 바란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기다리지 못하고 "너는 왜 이렇게 강하지 못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구나."라고 하며 천을 두들기려고 든다면 천은 찢어진다. 아이의 마음이 찢어진다.




아이들의 진심은 이렇다.

엄마. 사실은 나도 소심한 내가 싫어. 근데 그게 잘 안돼.




아이들의 일기장을 살펴보면 소심해서 발표를 잘 못하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아이들의 일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못났을까.'하고 말이다. 아이들을 몰아세우면 자존감 없는 아이로 자란다. 소심한 아이에게 억지로 회장 역할을 주면 아이는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비록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몇 번 더 얻게 되겠지만 그 순간 아이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그러니까. 기다려 주자. 우리 아이 성격이 변하려면 몇 년은 더 걸리겠거니.






(2) 소심 성격, 바꿔야 하는 걸까?


많은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사교성이 좋고 대범하며, 발표를 잘하고 어느 그룹에서든 리더 역할을 하길 바란다. 그래서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은 우리 아이들의 성격을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은 고쳐야 하는 나쁜 성격일까?


그렇지 않다. 소심한 아이들은 섬세하다. 그래서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듣곤 한다. 선생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다. 그리고 조심성이 많아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큰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다. 친구들 앞에서 나쁜 말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무리 안에서 튀지 않고 잘 섞여 지낸다. 소심한 성격은 좋은 성격이다.


소심한 성격의 어른이 되어도 괜찮다. 낯을 많이 가려도 괜찮다. 목소리 크기가 작아도 괜찮다. 즉석에서 잘 발표하지 못하더라도 글과 영상으로 나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오히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그 성격이 자연과학 및 예술분야에서 빛을 발하기도 한다. 또한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생활에 적합한 가면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뛰어난 연기실력을 가진 연예인들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사실 본인은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소심한 성격은 문제가 아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불편한 것을 개선해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잘 모르는 게 있는데도 선생님에게 알려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 급식을 먹을 때 밥을 더 먹고 싶은데 더 달라고 하지 못하는 것. 의자가 너무 낮아 불편한데도 꾹 참고 바꿔달라고 말하지 않는 것, 친구가 날 괴롭히고 놀리는데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 것은 대범한 성격과 소심한 성격과 관계없는 문제다. 앞에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도 결국 선생님의 눈치만 볼뿐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과 후에 조용히 선생님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불편하다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직접 말하는 것이 어렵다면 글로 써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 아이가 불편한 점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는 잘 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의 크기와 발표 횟수를 잣대로 '소심한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아이들을 상처 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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