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22]
[22] 클럽에서 외쳐! 해피 뉴이어!
‘이게 뭐야..’
페라와 함께 간 클럽은
내 인생 첫 클럽이었다.
대학생 때도 클럽 한 번 가본 적이 없던 내가
인생 첫 클럽이
유부녀가 되고 나서 일 줄은..
그리고 이렇게 재미없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
–
12월 31일, 저녁.
“나 클럽은 인생 처음이야, 페라”
클럽으로 향하는 우버에서
페라에게 말했다.
“나도 얼마나 오랜만에 가는지 몰라.
근데 우리 둘은 혼자 살잖아.”
페라는 10여 년 전에
혼자 이란에서 캐나다로 온 이민자였다.
“새해에 남들은 다 가족들과 보내는데,
우리만 혼자 방에 있을 순 없지!
클럽에서 같이 1월 1일을 맞이하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못 믿던 페라가,
함께 새해를 보내자고 할 정도로 가까워지다니..
고작 8개월 만에
페라와 나 사이엔 신뢰와 우정으로 가득 찼다.
페라와 함께 클럽으로 가는 길은
뿌듯함이었다.
–
–
12월 31일이라 그런지
클럽은 사람들로 뉘어터졌다.
‘워….’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오늘 무조건 한 명은
침대로 데려갈 마냥 작정을 했나 본데?”
페라가 클럽을 둘러보며 말했다.
입이 떡 벌어지게 핫하게 입은
쭉쭉 빵빵한 서양 언니들 사이에서
내 몰골을 내려봤다.
청바지에 티셔츠.
뭐 남자 꼬실 것도 아닌데,
굳이 꾸며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나는 아니야...
만약에 너가 다른 남자랑 갈 거라면
나한테 얘기는 해주고 가”
페라에게 맥주캔을 건네며 말했다.
“꿈뀨.. 나를 봐..”
페라가 내가 건넨 맥주캔을 받아들고
본인의 옷을 가리켰다.
청바지에 티셔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우리에게 번호조차 묻지 않을걸?”
“누군가 우리 둘 중 한 명에게라도
작업 걸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ㅋㅋㅋㅋ”
우리 둘 다 키득대며
맥주캔을 부딪혔다.
“Cheers!”
–
–
‘와씨… 손에 장을 지져야 하나….’
한 이란계 남자가
페라 옆으로 다가오더니
페라에게 엉덩이춤을 들이댔다.
징그러운 춤이었지만,
구애의 표시인 것 같긴 했다.
페라도 나쁘지 않았는지
그 엉덩이춤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뭐야.. 저 형편없는 춤을 왜 받아줘..?’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곧 걱정이 밀려왔다.
‘이 새벽에 혼자 우버 타고
돌아가야 하는 건가..?’
이란계 남자가 페라 귀에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페라도 그 남자 귀에다 대고 대답을 했다.
클럽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무슨 얘길 하고 있을까..
클럽에서 혼자 우두커니
맥주캔 하나 들고
페라와 엉덩이춤 남자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현타가 왔다.
내가 이 꼴 보자고
12월 31일에 클럽을 왔나 싶었다.
그것도 인생 첫 클럽을..
둘은 서로의 귀에 무언가 말하더니
이내 엉덩이춤 남자가 사라졌다.
페라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페라 팔을 낚아채듯이 잡아챘다.
“페라!! 뭐야!”
“꿈끀ㅋㅋㅋ 진정해!!”
페라가 내 반응이 웃기다는 듯이 깔깔댔다.
“뭔데!!
저 엉덩이 흔들어재끼는 남자가
뭐라 했는데?!”
그저 웃기만 하는 페라가 원망스러워서
더욱 대답을 보챘다.
페라 본인이 같이 오재서 같이 왔는데,
본인은 홀라당 다른 남자랑 떠나버리고
1월 1일에 나 혼자 우버 타고 돌아갈 상상을 하니
원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저 남자, 나처럼 이란 사람이야.
그래서 나한테 말 걸더라고”
페라가 차분히 말했지만,
나는 차분함 따윈 없었다.
아니.. 우정이란 게 뭐 있나.
같이 들어왔으면, 같이 나가야지!
본인이 딴 남자랑 나가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저 남자가 말 걸은 건 나도 알아!
근데 내 요점은
저 남자가 무슨 말을 했냐는 거야!
나는 방금 전까지
1월 1일에 혼자 우버 타고 돌아가야 하나 싶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클럽의 빵빵한 음악 소리에
힘껏 소리 질렀다.
씩씩거리는 내가 웃겼는지
페라가 깔깔댔다.
“ㅋㅋㅋㅋ꿈뀨!!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이란 사람이란 아니까,
이란 말로 나한테 약을 권유하더라고”
예…?
전혀 상상치 못했다.
물론 캐나다는 우리나라에 비해
약물에 대해 관대하긴 하지만,
클럽에서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헐…?”
“저 남자가 권한 건
캐나다에서도 불법인 약물이야.
그리고 내가 볼 땐
저 남자는 이미 취해 있는 것 같았어”
페라가 충격 받은 나에게 얘기해 줬다.
“그래서.. 넌 뭐라 했는데..?”
황당한 나를 보고
페라가 씨익 웃더니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이란어로 닥치고 꺼지라 했어^^”
–
–
“Ladies and Gentlemen!”
DJ가 마이크를 잡고 크게 외쳤다.
“새해가 오고 있습니다!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10!!!
9!!!
8!!!”
정말 재미없고,
충격적인 클럽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타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보내는 게 어디인가..
이렇게 캐나다에서 보내는
한 해의 마지막이 가고 있었다.
“7!!!
6!!!”
올해 초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던 내가,
연말에 캐나다까지 와서 홀로 자리 잡으며
캐나다에서 보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관두고 내 커리어는 멈추었지만,
오직 젊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도전을 한 결과,
나는 더 단단해졌다.
퇴사를 무서워했다면,
절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없었을 거다.
“5!!!”
4!!!”
내년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3!!!”
분명한 건 내년의 나는 더더욱 빛날 것이란 것.
“2!!!”
내년에 더 성장해 있을 내 모습이 기대됐다.
“1!!!”
그래,
나는 날이 갈수록 빛날 것이다.
“HAPPY NEW YEAR!!!”
그렇게 나는
오지게 재미없는 클럽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과거의 나를 보듬으며
오늘의 나를 고마워하고,
미래의 나를 믿으며….
TO BE CONTINUED